제주일보는 오는 7월 1일 민선8기 제주특별자치도정 출범 1주년을 맞아 오영훈 지사와 특별대담을 가졌다. 제주지역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제주 제2공항 개발 사업과 관련해 오 지사는 “제주도의 명확한 입장을 마련해 국토교통부에 전달하겠다”고 밝혔고, 행정체제 개편 문제는 “민선 8기 제주도정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민선 8기 제주도정의 1주년을 맞은 소회는? ▲취임하면서 도민께 약속드린 위대한 도민시대를 열기 위해 시간을 쪼개서 바쁘게 지내왔다. 코로나19와 경기 침체로 인한 도민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당장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장기적으로 제주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미래 산업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 1년 제주에 변화와 혁신의 씨앗을 심었다. 남은 임기 동안 싹을 틔우고, 도민 행복이라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민선 8기 제주도정 1년 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는? ▲ 지난 1년의 성과는 소통, 경제, 미래,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첫 행보로 강정마을을 찾아 마을공동체 회복을 지원하고 해군과 마을회 간 상생을 이뤄냈다. 동부하수처리장 문제 해결,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농성
제주도에서 전해오는 설화를 기록한 ‘섬에 사는 거인의 꿈(2014년, 현길언)’ 등에서 대정현 관련 설화들을 발췌해 가감한 이야기를 2회로 나눠 싣는다. ▲대정고을 장사들 옛날 제주도는 제주목·정의현·대정현 등 세 곳으로 행정구역을 나눴다. 대정현은 지금의 중문·안덕·대정 지방이다. 특히 대정고을에는 힘센 장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 정운디·새샘이·오찰방·이좌수가 유명하다. 정운디와 새샘이는 상놈으로 태어나서 남의 집 종노릇을 했고 오찰방과 이좌수는 찰방과 좌수 벼슬을 지낸 양반이다. 실재의 인물인 오찰방과 이좌수처럼 정운디와 새샘이 역시 실재했던 인물로 보인다. 다만 제주백성들은 사리가 분명하고 민중을 생각하는 인물들을 기다렸고, 그런 인물들에게 초인적인 모습을 더하기도 했을 것이다. ▲닥밧 정운디 사계리 275번지 일대 넓은 밭으로 닥나무가 많아 불려진 지명이다. 안덕면 사계리 ‘닥밧’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던 정운디는 ‘닥밧 정운디’라고도 불렸다. 정운디는 몸집이 크고 힘이 장사였다. 어느 날 주인집에서 나무로 된 남방아를 만들어 오라고 하자, 정운디는 나막신을 신은 채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진 산방산에 올랐다. 조금 후 정운디는 나무를 베어 만든 남방아
‘주상절리’는 ‘마그마가 냉각되며 응고함에 따라 부피가 수축해 생기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금’이다. 국어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다. ‘주상(柱狀)‘은 ‘기둥 모습‘을, ‘절리(節理)’는 ‘바위 표면의 갈라진 틈새’를 말한다. 화산 폭발과 함께 분출된 뜨거운 마그마가 바닷물이나 대지의 찬 공기와 만나며 급속 냉각되고 이 과정이 지난 후 세월이 흐르며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균열이 일며 여기저기 틈(=절리)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수분이 증발해 부피가 수축하면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이런 틈과 균열들이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치다 보면 마치 수많은 돌기둥들을 겹겹이 정교하게 쌓아 놓은 듯 보이는 주상절리가 되는 것이다. 길쭉한 기둥 모양의 주상(柱狀) 절리 외에, 넓고 평평한 모양의 판상(板狀) 절리도 있다. 위로 솟은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 부채꼴 주상절리… 주상절리의 종류들도 제각각 다양하다. 부산 오륙도 앞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750㎞를 걷다 보면 경주 구간에서 이런 각양각색의 주상절리들과 조우한다. 경주 초입의 강동화암마을 해변에서 만나는 바위들은 인조 예술품과도 같다. 누워있는 주상절리이면서 부채꼴 주상절
‘주상절리’는 ‘마그마가 냉각되며 응고함에 따라 부피가 수축해 생기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금’이다. 국어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다. ‘주상(柱狀)‘은 ‘기둥 모습‘을, ‘절리(節理)’는 ‘바위 표면의 갈라진 틈새’를 말한다. 화산 폭발과 함께 분출된 뜨거운 마그마가 바닷물이나 대지의 찬 공기와 만나며 급속 냉각되고 이 과정이 지난 후 세월이 흐르며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균열이 일며 여기저기 틈(=절리)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수분이 증발해 부피가 수축하면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이런 틈과 균열들이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치다 보면 마치 수많은 돌기둥들을 겹겹이 정교하게 쌓아 놓은 듯 보이는 주상절리가 되는 것이다. 길쭉한 기둥 모양의 주상(柱狀) 절리 외에, 넓고 평평한 모양의 판상(板狀) 절리도 있다. 위로 솟은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 부채꼴 주상절리… 주상절리의 종류들도 제각각 다양하다. 부산 오륙도 앞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750㎞를 걷다 보면 경주 구간에서 이런 각양각색의 주상절리들과 조우한다. 경주 초입의 강동화암마을 해변에서 만나는 바위들은 인조 예술품과도 같다. 누워있는 주상절리이면서 부채꼴 주상절
플루트연주를 듣는다. 플루티스트 이관홍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OST로 알려진 <형을 위한노래> 와 ‘나와 호랑이님’ OST고 <호랑수월가>를 연주했다. 1만8000 신들이 이 뜨락에 있다면 플루트의 소리에 맞춰 춤을 추지 않을까. 관객 중에서 연인이 나란히 앉아 있다면 두 손을 꼭 잡고 눈빛으로 사랑을 주고받을 만큼 아름다운 곡이다. 플루트 연주자의 모습이 연못에 반영으로 나타나니 마치 두 사람이 연주하는 것 같았다. 김정희 낭송가가 조영자 시 ‘반공일엔 물질 간다’ ‘강정 그 이후’ 두 편을 낭송했다. 토요일은 반공일 안경 대신 수경 쓰는 날 칠·팔순 이미 넘긴 테왁 무리에 나도 섞여 단단한 납덩이 시간 파도에 묶어본다 육지 날씬 상관마라 바당만 맑으면 된다 내 동생 학비마저 내어주는 바다 한켠 점심을 거른 낮달이 숨비소리 토한다 눈 들면 고향 바다 개군기지 깃발들 새별코지 끝자락에 테왁들 어디갔나 일강정 구럼비 바위, 그 바위는 어디갔나 꺄르르르 꺄르르르 봄 바다 저 윤슬아 하얀 교복 하얀 칼라 그리고 하얀 물소중이 중년의 아주망 되어 서성이는 붉은발말똥게 -조영자 시인의 ‘반공일엔 물질 간다’전문 그래도 고향이다, 강정은 고향
▲다시 찾아간 ‘하원동 탐라왕자묘’ 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54호인 하원동 탐라왕자묘를 다시 찾았다. 하원동(21번지)의 볕 바른 능선에 남북으로 위치한 고분 3기의 주인은 아직 누군지 모른다. 다만 제주도 유산본부에서 설치한 안내판에는 남평문씨 남제공파 종문회에서 성묘하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복성현 출신인 문착(호:南濟)이 입도하여 성주 고씨의 사위가 되었다고 전한다. 제주에서는 입도조 문착의 후예들을 남평문씨 남제공파라 일컫는다. 제주도는 1998년 남평문씨 남제공파 종문회의 청원에 따라 제주대학교 박물관팀으로 하여금 1999년부터 2차 정밀발굴조사를 시행케 하였다. 발굴결과 출토된 자기·지석좌대·갓석·향로대·문인석 등의 21점은 국립제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기 묘역 중 가장 먼저 들어선 3호분에서는 관정과 청동그릇 등이 수습되었다. 1914년 일본인에 의해 처음 발굴, 출토된 14세기경 제작된 백자병과 청동합 등 8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잘 다듬어진 석재로 구성된 묘역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인 13세기와 15세기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평가된다. 해발 220여 미터의 높은 능선에 일직선으로 조성된 분묘의 축대
▲천제연 공원에 세운 ‘제주4·3 중문면 희생자 위령비’ 오래전 소와 돼지 등을 도축했던 곳인 천제연 주차장 일대는 4·3 당시에는 수많은 주민이 집단학살을 당한 곳이다. 인근의 여러 마을에서 붙잡혀온 40여 명이 이곳에서 죽임을 당해야 했다. 무장대와 관련되었다는 죄목으로, 살려고 도피했다는 죄목 등으로 붙잡혀 와 희생되었다. 천제연이 품어내는 아름다운 경관 뒤에 숨어있는 4·3의 짙은 아픔으로 방문객의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곳이 이곳이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문지역 역시 밤에는 무장대 습격으로 낮에는 군경 특히 서북청년단에 의해 심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중문지역 희생자들을 기리고 넋을 위로하기 위해 2008년 봄 천제연 입구에 ‘제주4·3 中文面 희생자 위령비’와 함께, 국제적인 관광지임을 고려하여 4개국 언어로 쓰인 표지석이 세워졌다. 위령비 뒷면에는 희생자 786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18세기에 나온 제주삼현도와 제주목(지승) 등에는 이곳에 있던 중문원이 院舍(원사)로, 1872년 발간된 대정군 지도에는 仲文院(중문원)으로 표기되어 있고, 지금의 천제연이 천지연(天地淵)으로
▲이의종李義宗:1893(고종30)~1920(일제강점기), 금성교회 창설자 이덕련의 차남, 평북 정주(定州)의 오산학교 학생, 본관은 전주, 제주 목사 제1호, 순교자(殉敎者) 제1호 이도종(李道宗)의 아우. 그의 선친 이덕련(李德連)은 12년 동안 금성리(목안: 모실-개) 구장(區長)을 하면서 양(梁)석봉의 집에서 부인 박열선(朴烈先)과 함께 예배를 봤다. 1911년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이 신민회(新民會) 사건으로 본도 조천리에 유배 왔을 때에 이덕련은 남강과 교분을 가져 첫째아들 이도종(李道宗)을 평양의 숭실(崇實)전문학교로, 또 차남 이의종(李義宗)은 평북 정주의 오산(五山)학교로 진학시켰다. 오산(五山)학교는 남강(南岡)이 세운 민족주의 교육장으로 알려진 명문학교였다. 일경(日警)에 체포된 이후의 소식은 끊어졌다. 그는 1908년 이기풍(李基豊) 목사에 의해 처음 세례를 받았다. 교회사 연구가 김형석(金亨錫)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금성(錦城)교회가 서문교회보다 앞섰으니 본도 최초의 교회임을 밝혔다. 1919년 3·1운동이 거족적으로 번지니 의협심이 강한 그는 일제당국에게 주목받았다. ▲이의형李義珩:1896(건양1)~?, 변호사, 신간회 지부 간사
▲천제연의 숨은 명소 ‘베릿내 관개수로 유적(星川沓灌漑水路遺跡)’ 천제연 계곡의 동남쪽에 위치한 나지막한 언덕을 베릿내 오름이라 부른다. 성천봉(星川峰)이라고도 부르는 오름 이름의 베릿내는 ‘별이 내리는 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제주어이다. 천제연 골짜기를 흐르는 폭포수가 마치 은하수처럼 흘러 바다에 이른다 하여 베릿내로 불리게 되었다 전한다. 베릿내의 발원지인 천제연의 맑고 깊은 연못을 보고나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성천봉과 계곡으로 이어지는 숲 터널로 들어선다. 몽환적인 숲 터널 주변을 감상하며 걷는 길은 흡사 별세계로 가는 길처럼 느껴진다. 베릿내 골짜기 동쪽에는 대포주상절리가, 오른쪽에는 색달해변이 있어서 별세계의 신비함과 청량감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숲 터널 사이로 또 하나의 숨은 길이 이어지는 데, 이 길이 바로 베릿내 관개수로(灌漑水路) 유적이다. 숲 터널을 따라가는 물길은 큰 바위를 만나도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집채만 한 바위가 두 동강 나고 그 사이로 물길이 지난다. 이렇듯 이곳 선인들은 성천봉 아래로 물길을 내어 지금의 제주국제컨벤션센터가 들어선 일대의 농지 5만여 평에 천제연의 물을 대어 논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베릿내 관개수로
▲옥황상제도 반한 천제연폭포 한여름 천제연폭포 일대에는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상록수림의 짙은 그늘이 도처에 드리우고 있었다. 이번 방문은 천제연 1단폭포 주변 암벽에 새긴 유배인 임관주의 마애명과 1단폭포 주변에서 솟아나는 물을 이용하여 논농사를 지었던 역사적 흔적인 도수로(導水路) 등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천제연(天帝淵)이란 지명은 오랜 옛날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일곱 선녀가 한밤중에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목욕과 빨래를 하던 연못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이러한 전설을 담아 최근 난대림이 들어찬 아름다운 계곡을 이어주는 칠선녀 다리인 ‘선임교’와 ‘천제루’라는 2층 한옥 정자가 시설되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또한, 천제연폭포 일대는 무태장어 서식지(천연기념물 제27호)이면서, 제주도에서도 가장 희귀한 솔잎난이 자생하는 난대림지대(제378호)로 보호되고 있는 국가지정 문화재 보호구역이자 동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제주에서는 서귀포 근교의 ‘엉또폭포’처럼, 비가 많이 와야 폭포수를 볼 수 있는 폭포를 일명 ‘비와사폭포’라 한다. 천제연 1단폭포 역시 비와사 폭포이다. 그럼에도 천제연 2단과 3단폭포에는 늘 폭포수가 흐른다. 바로 1단폭포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