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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설화 품은 마을…삶의 이야기는 흘러간다

(144) 대정현과 관련된 설화(上)
힘이 센 장사 많았던 대정고을
영웅 기대 심리 초인적 모습 가미
닥밧 정운디, 몸집 크고 기운 세
도적 소굴 소탕 등 설화 전해져 
대식가 새샘이, 굶주림 못 견뎌
한라산으로 가 노략질 일삼아
서로를 향한 칼날, 운명 엇갈려

 

 

제주도에서 전해오는 설화를 기록한 ‘섬에 사는 거인의 꿈(2014년, 현길언)’ 등에서 대정현 관련 설화들을 발췌해 가감한 이야기를 2회로 나눠 싣는다.

▲대정고을 장사들

옛날 제주도는 제주목·정의현·대정현 등 세 곳으로 행정구역을 나눴다. 대정현은 지금의 중문·안덕·대정 지방이다. 특히 대정고을에는 힘센 장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 정운디·새샘이·오찰방·이좌수가 유명하다. 정운디와 새샘이는 상놈으로 태어나서 남의 집 종노릇을 했고 오찰방과 이좌수는 찰방과 좌수 벼슬을 지낸 양반이다. 실재의 인물인 오찰방과 이좌수처럼 정운디와 새샘이 역시 실재했던 인물로 보인다. 다만 제주백성들은 사리가 분명하고 민중을 생각하는 인물들을 기다렸고, 그런 인물들에게 초인적인 모습을 더하기도 했을 것이다.
 

 

▲닥밧 정운디

사계리 275번지 일대 넓은 밭으로 닥나무가 많아 불려진 지명이다.

안덕면 사계리 ‘닥밧’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던 정운디는 ‘닥밧 정운디’라고도 불렸다. 정운디는 몸집이 크고 힘이 장사였다.
 

 

 

어느 날 주인집에서 나무로 된 남방아를 만들어 오라고 하자, 정운디는 나막신을 신은 채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진 산방산에 올랐다. 조금 후 정운디는 나무를 베어 만든 남방아를 갓처럼 머리에 쓰고 산을 내려왔다.

마을에 이르러 쓰고 오던 방아를 울담 안으로 던져놓곤 집안으로 들어서는 정운디를 주인은 이제껏 뭐했냐는 듯 쳐다보았다. 이에 정운디가 ‘저기 보십서. 하나 만들어 놓아수다.’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주인집 사람들은 울담 안에 처박힌 남방아를 보곤 놀란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즈음 마을에선 커다란 못 가까이에 앉아 쉴 수 있는 ‘팡돌’을 옮겨 놓는 일로 야단법석이었다. 팡돌은 스무 사람 정도 힘을 합쳐야 옮겨 놓을 수 있을 만큼 큰 돌이었다. 밭일 나가던 정운디가 마을 청년들이 끙끙거리며 팡돌을 옮기고 있는 광경을 보고는, 청년들을 밀치며 팡돌로 향했다.

종놈이라 아니꼽기도 하지만 힘세다고 소문난 정운디라 함부로 대하지 못하던 청년들은 구석진 곳에 비켜섰다. 힘이 세면 얼마나 셀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정운디는 팡돌을 혼자서 굴려서는 제자리에 놓는 게 아닌가. 그 광경을 목도한 청년들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쳐다볼 뿐이었다.

▲도둑소굴에 잡혀간 정운디

그 시절 한라산에는 도둑떼들이 도처에 있어, 대정에서 제주로 오가는 사람들이 도둑들에게 당하곤 했으나 관아에서도 어쩌질 못했다.

어느 날 모슬진의 으뜸 벼슬아치인 조방장이 지역에서 생산한 쌀을 제주목 성안에 있는 본가에 보내는 일을 특별히 정운디에게 맡겼다. 정운디는 그 무거운 쌀을 지고 홀로 제주성안으로 떠났다. 얼마를 갔을까, 으슥한 숲길에 들어서니 도둑들이 나타나서는 시비를 걸었다.

정운디는 상대가 몇인지도 알 겸, 순순히 도적들이 하라는 대로 그들의 소굴로 따라갔다. 굴 안에는 많은 도둑이 있었다. 사정을 살핀 정운디는 죽을 사람 소원이니 들어달라는 듯 담뱃불을 빌려달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담뱃불을 붙이며 굴 안의 사정을 살피던 정운디는 소굴 안에 있던 장작불들을 이리저리 흩뜨려 놓았다. 낌새를 알아차린 도적들이 굴 밖으로 내달았다. 그러자 정운디는 굴 입구에 있는 소나무를 뽑아 들고는 굴 밖으로 나오는 도둑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나무 하나로 후려쳐 잡은 도적들이 50여 명이나 됐다 한다.

▲장사 새샘이와 정운디의 엇갈린 운명

당시 정운디 만큼이나 힘이 세다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새샘이었다. 그는 남의 집 일이나 해 주면서 살아가는 딱한 신세였다.

그러나 양식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배가 큰 새샘이를 그 누구도 머슴으로 들이려 하지 않았다. 할 일이 없었기에 늘 배가 고팠던 새샘이는 할 수 없이 한라산에 올라가 도적이 됐다.

산에서 왕 노릇을 하는 새샘이를 누구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새샘이는 대정과 제주를 오가는 사람들의 재물을 마음대로 빼앗았다.

더구나 나라에 바칠 마소들을 마구 잡아 먹어치우는 새샘이 때문에 관아에서도 골치를 앓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정고을 형방이 밭일하는 정운디를 찾아와 새샘이를 잡아 달라 부탁했다.

하지만 정운디는 새샘이를 힘으로 당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형방이 다시 부탁하자 ‘그럼 한번 해 봅쥬. 대신 힘을 좀 길러야 하니 먹을 걸 하영 주셔야쿠다.’하고 청했다.

하지만 현감이 보내준 쌀 두 섬과 소 두 마리는 며칠 못 가 동이 났다. 이 정도 식량으로는 새샘이와 싸울 수 없음을 안 정운디는 현감을 찾아 가 사정을 아뢰었다. 다시 쌀 두 섬과 소 두 마리가 주어졌다. 정운디는 배불리 먹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새샘이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정운디는 현감에게 새샘이를 잡기 위해 힘이 센 장정 서른 명과 단단한 밧줄 서른 발을 더 요구했다. 현감의 지원을 받은 정운디는 밧줄을 갖고 장정들과 함께 한라산으로 떠났다. 정운디는 혼자 새샘이가 거처하는 굴로 들어갔다.

평소 아는 사이라 새샘이가 정운디를 반갑게 맞으며, 온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정운디는 ‘아무리 일을 해도 배가 고프니, 못 살쿠다. 성님과 힘을 모아 도적질이나 하며 살젠 와수다.’ 하고 둘러댔다. 자기만큼이나 힘이 센 정운디가 왔으니 이제 제주섬은 완전히 자기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무척 기뻤다.

소의 넓적다리를 뜯어먹으려 칼이 필요하다는 정운디의 말에 새샘이는 자기가 차고 있던 칼도 내줬다. 허를 찌르듯 정운디는 고기를 떼어 먹는 척 하다가 칼을 분질러 버렸다.

그리고 새샘이 오른팔을 사정없이 넓적다리로 후려쳤다. 그것을 신호로 새샘이에게 장정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의리 없는 자식, 곧 후회하게 될 거다.’ 하고 한 마디 남긴 새샘이는 결국 옥에 갇히게 됐다.

하지만 새샘이에게는 옥문 정도는 쉽게 부술 힘이 있음을 아는 정운디는, ‘새샘이를 바로 죽이지 않으시려거든 저를 죽여 주십서.’하고 현감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의아해하는 현감에게 정운디가 아뢰길, ‘나으리, 저놈은 옥에 가둬 둔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놈이 아니우다. 틀림없이 오늘 저녁에는 옥문을 부수고 나와서 저에게 복수 할 거우다. 이제 제 목숨은 도로 새샘이에게 달려수다.’라고 말하며 곧 처단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중죄인이라도 고을 현감이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다며, ‘엄연한 국법이 있으니 법대로 할 수 밖에 도리가 없다.’는 현감의 말을 들은 정운디는 먼저 수를 쓰기로 했다.

그날 밤 자정이 넘자 옥문이 우지끈 부서지더니 새샘이가 후다닥 뛰쳐나왔다. 졸던 옥사장 일행은 옥문을 나서는 새샘이를 그냥 쳐다볼 수밖에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숨어 있던 정운디가 칼을 휘둘렀다. ‘내 운이 다했구나, 내가 너 놈의 칼에 죽다니….’마지막 말을 남기는 새샘이에게 정운디는 ‘성님을 죽이지 않으면 저가 죽을 것을 알기에, 용서해 주십서 성님….’ 하고 응수하더란다.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