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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한숨부터 나오는 농사철…풍년 기대 보다 생산비 걱정
15일 광주시 광산구 임곡동의 한 양파밭. 최근 부쩍 더워진 날씨로 3000㎡ 농지 위에는 멀칭 비닐 사이로 잡초가 무성하게 올라와 있었다. 작업용 목장갑을 낀 대학생 20여명이 밭에 줄지어 서 발목까지 자란 잡초를 하나씩 쑤욱 잡아당겼다. 잡초를 뽑을 때마다 마른 땅에서 올라온 흙먼지가 코를 괴롭혔다. 밭 주인 기민석(54) 씨는 “건실한 친구들이 와줬다.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며 웃었다. 농협중앙회 광주지역본부는 이날 기씨의 양파 밭과 고추·감자 농가를 시작으로 올해 본격적인 영농철 일손 지원 활동에 들어갔다. 이날 지역농협 임직원과 행복농촌 봉사단, 고향·농가주부모임, 대학생 등 120여명이 농가를 돕는 일꾼으로 나섰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광주시 광산구 평동농협 본점에서 ‘범농협 광주본부 영농지원 발대식’도 열었다. 농협광주본부의 ‘행복농촌봉사단’은 이날부터 영농철이 마무리되는 6월 말까지 관내 농촌 현장을 돌아다니며 일손을 거들게 된다. 이철호 농협중앙회 광주본부장은 “농촌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기후위기 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단순한 일손 돕기를 넘어 농업인의 부담을 함께 나누는 영농지원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 전남본부도 이날 영광군 묘량면 양파밭에서 ‘풍년 기원제’를 시작으로 올해 영농 일손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농협 직원 등으로 구성된 ‘영농봉사단’은 고령화와 저출생, 탈 농촌 등으로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민들에게 꼭 필요한 일꾼이 된 지 오래다. 기 씨는 “농사에 사람이 가장 필요하고 중요하다. 인건비 부담이 날로 커지는데 이렇게 도와주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농민들이 풍년 기원제를 치르면서도 기대감보다 불안함으로 한 해 농사를 시작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끝없이 오르는 생산비 만큼 농산물 값은 오르지 않는 데다, 정부의 예측 실패와 불안한 수급 정책으로 폭락을 걱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국가데이터처가 내놓은 ‘2025년산 논벼(쌀) 생산비조사’ 결과, 20㎏당 쌀 생산비는 3만 4000원으로 전년도에 견줘 3.2%(1000원) 늘었다. 2만 9000원(2021년) 이던 쌀 생산비는 3만 2000원(2022~2023년)→3만 3000원(2024년)→ 3만 4000원 등으로 꾸준하게 올랐다. 그나마 산지 쌀값이 크게 오른 지난해 쌀 농가 수입이 다소 늘긴 했지만 소비자 물가 불안을 자극하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른 농산물값은 쌀값만큼 생산비 상승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인건비는 특히 올랐다. 국가데이터처가 연도별로 집계한 농가구입가격지수 중 노무비는 137.9로, 재료비(129.8), 경비(130.2), 자산구입비(106.0)보다도 높았다. 비료비도 전년 대비 5.6%, 농약비는 4.2% 올랐다. 기씨가 “재료비나 인건비는 계속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들쑥날쑥하다. 비용은 고정적으로 올라가는데 가격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니 올해 열심히 농사 지어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이유다. 기씨만 해도 장인·장모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농번기엔 인력사무소를 통해 하루 4~5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추가로 구해야만 해 ‘돈 나갈 걱정’이 앞서고 있다. 돈을 줘도 구하기 쉽지 않을 때도 많아 제 때 농사를 짓지 못할까 조마조마하다. 현행 계절근로자 제도는 사업장 이동이 허용되지 않아 농번기처럼 수요가 집중되는 시기에도 유연한 인력 배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일손을 채울 방법이 쉽지 않다보니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게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는 농민들도 많다. 이날 농협 영농지원단 50명의 도움을 밭아 감자 북돋기를 하던 홍정희(72) 씨도 “오늘도 남성 3명, 여성 4명을 총 7명이 추가로 오기로 했는데 남성 근로자 2명밖에 오지 않았다”며 “미등록 외국인으로 급하게 어제 강제출국조치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비료 가격 불안정과 원자재 수급 불안 때문에 걱정이 크다. 그는 또 “트랙터나 이앙기 작업을 맡기면 유류비에 임대료까지 올라 작업비 부담이 커진다. 영농자재도 지금까진 농협의 유기질 비료사업 지원사업이나 보조금 정책 덕분에 버티곤 있지만, 전쟁이 길어져 수급이 어려워질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시농민회도 이같은 점을 감안, 이날 광주시청 앞에서 영농발대식을 하며 “농업용 원유와 농자재 가격 급등으로 농민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정부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농업용 면세유 가격은 16.4% 올랐고 비료·멀칭비닐 등 농자재 가격도 30% 이상 올랐는데, 정부의 지원은 농촌 현장과 거리감이 있다는 것이다. 이준경 전농 광주시농민회장은 “농민들의 땀이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농민 정책이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권에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을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