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도심 한복판에서 1700~1800년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성(城) 일부가 발견됐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제주시 이도1동 오현단 맞은편 제주성지 석축 긴급 복구공사 과정에서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제주성 원형 일부를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번에 확인된 성곽은 전체 84m 구간 중 가운데 있는 5m 길이의 여장 시설이다. 여장은 성벽 위에서 병사들이 몸을 숨기며 활과 총을 쏘던 담장 형태의 방어시설이다.
절벽 아래 여장 시설이 확인되면서 제주성 방어 체계의 실제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제주성의 여장 시설은 그동안 사진 자료만 남았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형은 세계유산본부장은 “이번 발견은 제주성의 원형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며 “학술적 연구와 보존을 통해 제주성의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마중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제주성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408년(태종 8)이다. “큰 비가 내려 제주성에 물이 들어와 관아와 민가가 잠기고 곡식의 절반이 침수됐다”고 기록됐고, 보수한 기록이 나오면서 그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성이 오늘날의 성곽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565년 곽흘 목사 때였다. 곽 목사는 산지천을 성안으로 들이기 위해 동성(東城)을 뒤로 밀려서 지금의 제주지방기상청 일대까지 성곽을 확장했다.
1780년(정조 4) 김영수 목사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산지천변을 따라 성 사이에 성을 다시 쌓았다. 제방용 시설인 간성(間城)이 설치됐다.
제주성의 마지막 축조 기록은 1849년(헌종 15년)으로 장인식 목사가 대규모로 보수하고 고쳐 쌓았다.
조선시대 방어시설인 제주성은 여러 차례 증·개축되었으나, 이번에 발견된 성곽은 간성이 들어섰던 1700년대 후반에서 대규모로 보수를 한 1800년대 중반에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1653년 이원진의 탐라지에 따르면 제주성의 둘레는 6120척(2.04㎞)에 이르렀다고 기록됐다.
500년에 걸쳐 건립된 성곽은 일제강점기 제주항 개발(1925~1928) 과정에서 헐리기 시작됐다. 제주항의 방파제가 뻗어나가는 동안 성담은 바다를 메우기 위한 골재로 사용됐다. 일제는 전체 성곽의 3분의 2 상당을 헐어냈다.
제주지역 최대 항구를 건설하기 위해 제주성담을 맞바꾼 셈이다.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이도1동 오현단을 중심으로 남쪽의 성곽 170m 정도다. 제주성 성담인 제주성지(濟州城址)는 1971년 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