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작나무 숲에서 쉬어가고 싶다. 박영하 화가가 그린 자작나무 숲은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연분홍, 연노랑, 연두색의 꽃잎과 나뭇잎이 우거진 자작나무 숲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쉼을 선사한다. 송정작은미술관에서 24일부터 3월 7일까지 열리는 ‘꽃을 피우는 자작나무’전. 흔히 자작나무는 철학자의 나무라 불린다. 눈 덮인 비탈진 산하에 의연하게 선 자작나무를 상상하기 십상이다. 추운 겨울 은백색으로 빛나는 자작나무는 인내와 사유, 예술 등과 연계된다. 그러나 박 작가의 자작나무는 ‘숨’, ‘쉼’, ‘숲’의 이미지를 발현한다. 눈에 보이는 자작나무가 아닌 심상에서 구현한 상상의 나무다. 꽃이 피어 있고 아늑하며 새와 고양이도 어우러진다. ‘꽃을 피우는 자작나무’는 보는 것만으로도 환한 기운이 전해진다. 꽃송이가 주렁주렁 열린, 마치 꽃등이 불을 밝힌 듯한 자작나무 아래 토끼 가족들이 오순도순 휴식을 즐기고 있다. 꽃잎으로 물든 지면은 푸른 풀들과 나뒹구는 꽃잎들로 환한 풍경을 연출한다. 작가는 자연이라는 형상을 빌려 감정과 기억을 색으로 풀어냈다. 반복되는 줄기와 겹겹의 색은 시간의 흔적이자 마음의 결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구상과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주인공 영순. 영순은 매일같이 무거운 식자재를 들어 옮기고 성인 여성의 팔 길이 남짓한 국자와 주걱을 휘젓는다. 반복되는 노동에 관절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에 시달렸지만 달리 방법도 없다. 최소한의 환경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급식 노동자의 일터. 이런 상황을 학교 측도 모를리 없지만, ‘예산 부족’이라는 핑계를 둘러대며 애써 외면하기 바쁘다. 그러던 어느날 영순의 동료인 미숙이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쓰러진다. 이를 계기로 급식 노동자의 살인적인 노동 환경이 공론화되기 시작한다. 이 사건은 산업 재해가 아니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학교와 쾌적함을 침해받았다며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 그리고 정성껏 밥을 해먹인 이들로부터 가해자로 지목 당하게 된 영순. 영순은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택하게 되는데… 학교 급식실에서 벌어지는 노동의 비극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아픈 연대를 담아낸 이상무 소설가의 ‘오븐이 켜지는 시간’ 중 일부다. 이 소설가는 올해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자다. ‘오븐이 켜지는 시간’은 당연하게 누리는 따뜻한 밥 한끼 뒤에 가려진 누군가의 사투를 드러낸다. 동시에 권리만을 내세우던 이들이 타인의 통증을 직시
40년 도자 연구 세월 쌓여 있는 김해 ‘정호요’ 젊은날 이도 사발 매력에 빠져 2000년 문 열어 전국 돌며 찾은 좋은 흙으로 만들고 깨기 반복 사발은 단순 용기 아닌 사람들의 세월 담아와 요즘은 삶의 고단함 녹여줄 ‘보듬이’ 제작중 “도자기는 결국 자연, 전통·근본으로 가고파” “도자기의 꽃은 사발이고, 사발의 꽃은 이도입니다.” 임만재(56) 도예가는 40여년 도자 외길을 걸어온 도공이다. 물레가 돌아가고 사발은 단숨에 형태를 갖춘다. 치듯이 빼어 올린 곡선에는 흙과 불의 시간이 응축되고, 은은한 유약의 빛이 그 선을 감싼다. 김해시 한림면에 위치한 정호요(井戶窯)는 사발 연구의 시간이 고스란히 쌓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전통 사발은 그의 손길을 거쳐 비로소 숨을 얻는다. ◇전통 사발을 빚어내는 공간 -정호요(井戶窯)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있다면. △젊은 날 어느 작업실에서 처음 정호(井戶), 즉 이도 사발을 만났다. 어떤 분이 한번 만들어보라고 권했는데, 보고도 만들 수가 없었다. 그게 이도와의 첫 인연이었다. ‘보고도 못 만드는 그릇이 있다니.’ 그때부터 사발이 인생의 목표가 됐다. 반드시 이 사발을 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2000년 이곳에 작업실을
(사)김유정기념사업회가 12일 춘천아트팩토리봄에서 ‘김유정 선생 탄생 118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영원한 청년작가 김유정의 삶과 문학을 되짚기 위해 마련된 행사는 ‘작품 속 인물과 주저리 한 판-두꺼비’를 주제로 열렸다. 행사에는 전상국 김유정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 김별아 강원문화재단 이사장, 박종훈 춘천문화재단 이사장, 안광수 춘천예총 회장, 정명자 김유정기념사업회 후원회장, 박제현 김유정문학촌장 직무대행, 지소현 강원수필문학회장, 송병숙 춘천문인협회장, 박장규 춘천수필문학회장, 김정훈 도연극협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최지순 연극배우, 심상만 사진가, 이영춘 시인을 비롯한 원로 예술인들도 자리를 빛냈다. 올해 기념식은 문화프로덕션 도모의 후원으로 김유정 선생의 고향 실레마을에서 열려 의미를 더했다. 퓨전 음악팀 사색당파(四色黨派)의 공연으로 시작된 행사는 김수이 경희대 교수의 특강 ‘김유정 문학의 사랑과 빛의 순간들’로 이어졌다. 폭행과 가난, 병환에 고통받으면서도 존재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이어갔던 김유정 선생의 삶이 2026년의 실레마을서 다시 펼쳐졌다.변유정, 양흥주, 전은주 배우는 김유정 단편 소설 ‘두꺼비’를 각색한 ‘남녀 트리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본부장 김형은)는 추사 김정희(1786~1856) 탄신 240주년을 기념해 예산 김정희 종가에서 전래된 보물급 유물들을 제주추사관에서 선보인다. 13일 개막해 내년 1월 17일까지 이어지는 특별전 ‘추사, 가문에서 피어난 예술’은 추사 개인의 천재성에만 주목했던 기존의 전시 방식에서 탈피했다. 대신 가문의 학문적 토양과 예술적 전승 과정이 추사라는 거장의 탄생에 어떤 밑거름이 됐는지 그 뿌리를 입체적으로 추적하는 데 방점을 뒀다. 전시의 핵심인 김정희 종가 유물은 추사 예술의 발원지와 정신적 지주를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핵심 사료다. 특히 영조 어필을 비롯해 영조의 부마인 김한신(1720~1758)의 자취가 담긴 ‘매헌난고’ 등 보물 26점이 대거 공개돼 추사 가문이 대를 이어 축적해 온 문화적 역량을 생생히 전달한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관람객들이 추사의 성취를 ‘개인의 재능’이라는 단편적 틀을 넘어, 명문 가문의 학풍 속에서 피어난 ‘시대의 결정체’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시 동선을 구성했다. 김형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이번 특별전은 추사 예술의 근원을 가문의 학문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뜻깊은 기회”라며 “추사 문화
국립군산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디자인학과 석‧박사과정 동문들이 의기투합한 예술단체 ‘우담회’가 15일까지 창립기념 전시를 개최한다.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갤러리 파인아르테에서 열리는 창립전은 동문 작가들이 지역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공유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 전시에는 지도교수인 김정숙(우담) 교수를 비롯해 김명숙(한이), 김경희(단계) 교수와 김경희, 김명숙, 박선희, 박영숙, 소진영 등 동문작가 13명 등 총 16명이 참여해 저마다의 예술적 깊이를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창립전은 40여 년간 창작과 후학 양성에 헌신해온 김정숙 교수가 교육자로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작가로서 제자들과 함께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스승과 제자가 아닌 작가 대 작가로서 예술적 동반자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전시에서는 동시대 흐름을 포착하는 시대 조응과 지역성을 바탕으로 장르와 재료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우담회 관계자는 “작가들에게는 창의적인 예술전략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나아가 우담회가 지역 미술계의 굵직한 한 축을 담당하며 대주오가 소통하는 생명력 있는 단체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유해진 주연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닷새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다.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작품이 초반 흥행 흐름을 빠르게 끌어올리며 극장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보면 ‘왕과 사는 남자’는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76만 1831명을 동원해 개봉 첫 주말 전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올해 주말 박스오피스 최고 성적이다. 누적 관객 수는 100만 1110명으로 집계됐다. 이 영화는 개봉 첫날부터 상위권을 유지하며 흥행 흐름을 이어왔다. 주말 동안 하루 평균 30만 명 안팎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고, 좌석 점유율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형성됐다. 경쟁작이 다수 포진한 시기임에도 관람 선택이 집중되며 상영 순위를 지켜낸 점이 눈에 띈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를 배경으로, 유배지에 머물게 된 어린 선왕과 마을을 이끄는 인물이 맺는 관계를 중심에 둔 사극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사건 전개보다는 인물의 선택과 감정에 서사의 무게를 실었다. 유해진을 비롯해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등이 출연했다. 장항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작품은 역사극의 틀 안에
올해는 포항이다. 사진작가 헬렌 박(박문희)은 대구에서 열던 독립서점 전시를 올해 처음 포항으로 옮겨 개최한다. 이달 18일까지 '마이룸'을 주제로 포항시 남구 효자동 '달팽이책방'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영감을 얻어 출발했다. '말로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눈을 통해 감정으로 전하기 위해 시작된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저마다의 기억과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는 방을 내어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장에는 사진, 설치, 오브제 작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특히 LP 형태의 프레임에 담긴 셀카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 LP 작업은 '상실의 시대' 속 멈춰 있던 문장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음악을 매개로 촬영한 자신의 얼굴 작품을 통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와 마주치는 시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관객 참여형 설치작품 '열리지 않는 우체통'도 눈여겨볼 만하다. 관객들은 '사람이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문장을 각자의 언어로 적어 우체통 속을 꾸민다. 글을 쓴 이들의 감정이 녹아있는 공간을 의미있게 만들겠다는 게 작가의 의도다. 또 다른 설치작품 '삼각숲'은 상실의 시대의
충남 부여에서 1400년 전 백제 사비 시기(538-660)에 사용했던 '피리'가 발견됐다. 삼국시대 관악기가 실물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부여군과 공동으로 진행한 제16차 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실물 관악기와 대량의 목간이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충청권 고대사가 전설에서 실증의 영역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선 것으로, 부여가 지닌 역사 자산의 위상을 국가사 연구의 중심 축으로 끌어올린 계기로 평가된다. 연구소는 이날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2024-2025년) 성과를 공개했다. 관북리 유적은 부소산 남쪽 평탄 대지에 자리한 사비기 핵심 유적으로 1982년부터 발굴이 이어져 왔다. 대형 전각건물과 수로, 도로, 대규모 대지가 확인된 곳으로 사비 왕궁지의 유력한 중심 구역으로 꼽혀 왔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된 유물은 횡적(橫笛·가로 피리) 1점이다. 백제 조당 건물로 파악되는 7세기 건물지 인근 직사각형 구덩이에서 출토됐고 잔존 길이는 224㎜다. 대나무 재질에 구멍 4개가 일렬로 남아 있었고 일부는 결실된 채 눌린 상태였다. 유기물 분석에서 인체 기생충란이 함께 검출, 이 구덩이가 조당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감동을 주는 작품을 고전이라 한다. 고전이 지닌 강력한 울림은 사실 문장의 힘이다. 명문은 세대를 초월해 가장 강력한 울림을 선사한다. 예향 광주의 정체성은 문향(文鄕)이다. 기라성 같은 문인들을 배출했고 그 문인들의 문학작품이 오늘의 광주와 남도 문화를 일군 토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림과 빛을 주는 문장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북구 각화동 시화마을에 있는 광주문학관 전시실. 이곳에선 ‘시간을 넘어 나에게 닿은 울림’(오는 12월까지)을 주제로 한 기획전을 만날 수 있다. 문인들의 한 문장, 한 문장이 한 줄기 빛처럼 흘러 가슴으로 스며든다. 타자기와 펜촉의 리듬, 원고지라는 물성 등이 빛과 영상, 사운드와 결합한 콘텐츠는 시선을 압도한다. 김현승, 김남주, 윤삼하, 이수복, 조태일, 고정희, 문병란, 박흡 등 시인들의 작품에서 발췌한 작품을 만나는 것은 덤이다. 오래 전에 읽었던 또는 기억 속에 저장돼 있던 문인들의 문장을 전시실에서 맞닥뜨렸을 때 반가움은 여타의 콘텐츠를 마주할 때와는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원고지에 칸칸이 적힌 시문을 읽다보면 당시 작품을 쓰던 시인의 감성과 고뇌도 느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