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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이영철의 제주여행]시간과 파도가 다듬어 낸 비경에 흠뻑 빠지다

(17) 자연이 빚은 예술 주상절리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지형
부채꼴 등 종류도 가지각색
전국 해안서 만날 수 있어
그중 올레8코스 풍경 으뜸
펼쳐진 절경에 눈이 즐거워

 

‘주상절리’는 ‘마그마가 냉각되며 응고함에 따라 부피가 수축해 생기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금’이다. 국어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다.

‘주상(柱狀)‘은 ‘기둥 모습‘을, ‘절리(節理)’는 ‘바위 표면의 갈라진 틈새’를 말한다.

화산 폭발과 함께 분출된 뜨거운 마그마가 바닷물이나 대지의 찬 공기와 만나며 급속 냉각되고 이 과정이 지난 후 세월이 흐르며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균열이 일며 여기저기 틈(=절리)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수분이 증발해 부피가 수축하면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이런 틈과 균열들이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치다 보면 마치 수많은 돌기둥들을 겹겹이 정교하게 쌓아 놓은 듯 보이는 주상절리가 되는 것이다.

길쭉한 기둥 모양의 주상(柱狀) 절리 외에, 넓고 평평한 모양의 판상(板狀) 절리도 있다.

위로 솟은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 부채꼴 주상절리… 주상절리의 종류들도 제각각 다양하다.
 


부산 오륙도 앞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750㎞를 걷다 보면 경주 구간에서 이런 각양각색의 주상절리들과 조우한다. 경주 초입의 강동화암마을 해변에서 만나는 바위들은 인조 예술품과도 같다.

누워있는 주상절리이면서 부채꼴 주상절리 또는 꽃처럼 활짝 펴진 주상절리 들이다. ‘화암(花岩)’이라는 마을 이름 자체가 해변 바위들의 주상체 횡단면이 활짝 핀 꽃처럼 생긴 데에서 유래했다.

화암강동마을 지나 양남면 하서해안에서 읍천항까지는 길 이름도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해변 흙길과 데크 계단길을 번갈아 걸어가는 동안 파도를 맞으며 앉아 잇는 주상절리 등 갖가지 형상의 자연 예술 조각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올레 8코스를 걸어본 여행자라면 동해안 해파랑길 경주 구간에서 만나는 이들 다양한 주상절리에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요란스럽기는…’ 하며 내심 시큰둥할 수도 있을 게다. 그 만큼 제주 중문 앞바다의 주상절리는 한 수 위인 것이다.

제주올레 8코스는 중문 지역을 관통하는 루트다. 월평마을에서 시작해 대포포구를 지난 후 중문관광단지 해안과 내륙을 두루두루 밟는다.

이어서 예래생태공원을 거쳐 거대한 절벽 박수기정이 보이는 대평포구에서 끝난다. 베릿내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시원한 뷰도 좋고, 진모살이라 불리는 중문색달해수욕장의 길고 깨끗한 모래사장도 올레길의 운치를 더해준다.

그러나 8코스를 대표하는 절경은 뭐니 뭐니 해도 주상절리다. 해변 일대에 길고 다양하게 펼쳐진 암석들이 화산 섬 제주의 지질학적 일면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8코스 출발 5㎞ 지점에서 만나는 중문대포 주상절리는 제주를 넘어 국내의 대표적 주상절리로 꼽힌다.

대포포구와 대포연대를 지나 주상절리 매표소로 진입하면 잠시 후 튼튼한 목재 데크길을 따라 파도치는 해안선의 낯선 정경과 맞닥트린다.

이 지역에선 ‘지삿개’라 불리는 해안이다.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절벽에 거센 파도가 쉼 없이 부딪혀가며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는데, 깎아지른 그 절벽의 모양새가 특히나 유별나다.

삼사십m의 기다란 돌기둥들을 해안가에 겹겹이 박아서 인위적으로 거대한 성벽을 만들어 놓은 형국이다.

솟아오른 돌기둥들 외에 야트막하게 누워있는 절리들도 있다. 우뚝우뚝 세워져 있건 층층이 누워 있건 돌기둥들은 한결같이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마치 거대한 벌집을 연상시킨다.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수많은 인간들의 노동력이 동원된 인조 조형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올레 8코스에는 이곳 ‘지삿개‘ 주상절리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지나온 대포포구 인근의 ‘베튼개’ 해안에도 촘촘한 주상절리가 떠 있었다. 규모가 작아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형상이긴 하다.

주상절리를 지나면 올레길은 베릿네오름 등산길로 올랐다가 내려와 중문색달 해수욕장의 기다란 모래사장을 거쳐 내륙 우회길로 안내된다.

 

 

예전의 8코스는 계속 해안길로만 이어졌었지만 절벽으로부터의 낙석 위험이 대두되면서 2010년부터 해병대길을 패쇄하고, 예래생태공원으로 돌아오는 내륙 우회 코스로 바뀐 것이다.

때문에 또 다른 주상절리 절경을 만날 수 있는 해안길 2㎞를 포기하고 6㎞ 가까운 내륙길을 돌아나와야 한다.

그러나 내륙길이 끝나는 논짓물 주변에서 역방향 동쪽으로 1㎞만 거슬러 가보면, 갯깍 주상절리라는 또 하나의 자연 절경을 바로 눈앞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선 주상절리 암벽이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이며 거대한 구멍으로 뚫어진 ‘들렁궤’가 깊은 인상을 준다.

확 터진 해식동굴 속에 들어가 바다를 내다보는 운치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물론 절벽 위에서의 낙석 위험엔 늘 긴장을 늦추지 말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제주의 주상절리는 이렇게 올레 8코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삿개 주상절리대에서 베릿네오름에 오른 후 내려오면 올레 코스를 500m 벗어난 북쪽으로 천제연(天帝淵)폭포가 자리한다.

천제연 1폭포의 주상절리대는 호수의 맑은 물과 함께 어우러져 신비롭기 짝이 없다. 그 옛날 전설 속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했던 곳임을 실감할 수 있다.

6코스에서 만난 정방폭포도 대표적 주상절리이다. 폭포수 정경에만 눈 두지 말고 주변 암벽들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각진 돌기둥들이 겹겹이 쌓인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작은 배나 유람선을 탈 기회가 된다면 7코스 앞 문섬과 범섬 또는 9코스 앞 형제섬, 아니면 10코스 송악산 해안 절벽 주변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와 판상절리 들을 만나볼 수 있다.

얼핏 인조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수만 년 자연의 손길이 시간의 힘을 빌려 저렇게 정교한 명품 조형물들을 빚어낸 것이다. 올레길을 걸으며 새삼 실감하게 되는 자연의 힘이다.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