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제주에서는 왜구가 괴롭히는 바닷가를 피해 용천수가 솟는 고지대에 마을들이 들어서기도 했다. 대표적인 마을이 표선면의 토산리와 안덕면의 감산리 등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내용은 2006년 발간된 안덕면지와 마을지에 실린 글에서 빌렸다. 1430년(세종 12) 제주경차관으로 온 사복소윤(司僕少尹) 박호문이 ‘정의와 대정 두 현의 성안에는 샘물이 없기 때문에 정의현에서는 15리 가량 떨어진 곳에서, 대정현에서는 5리 가량 되는 곳에서 물을 길어옵니다. 만일 왜구가 침입하여 여러 날 성을 포위하면 바다 가운데 있는 외로운 섬으로 살아날 길이 없기에, 정의현은 토산(兎山)으로, 대정현은 감산(甘山)으로 옮기기 바라나이다.’ 하고 정의현과 대정현의 이설을 건의하였으나,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제주의 17현 중 하나인 산방현의 중심지인 감산리에는 여러 관청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제주의 비사를 품은 지명이 많은 편이다. 공마로는 나라에 바치는 말들이 다닌 길을, 만세왓은 목사와 현감 등을 마중 또는 배웅하던 곳이자, 마을 유림들이 임금이 별세하면 곡을, 새 임금이 등극하거나 왕자를 낳으면 만수무강을 축원하던 곳이다. 숙젱이라는 곳은 죄인을 참수하던
170년 전 잉글랜드 북부 지역에서는 영국 문학사에 길이 남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시골 촌구석 출신의 자매가 거의 동시에 대단한 소설을 한 권씩 출간한 것이다. 언니인 샬롯 브론테가 ‘제인 에어’를 발표했고, 몇 달 후에는 동생 에밀리 브론테가 ‘폭풍의 언덕’을 발표했다. 언니의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호평을 받으며 성공했다. 동생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의 출간 반응이 시원치 않은 상태에서 폐결핵으로 이듬해 생을 마쳤다. 서른 살의 짧은 생이었다. 두 자매의 문학적 토양은 어릴 적부터 살았던 황량한 벽촌 마을이었다. 요크셔의 황무지 땅, 헤더 꽃이 초원을 덮는 무어랜드(moorland)가 늘 작가와 함께 있었기에 '폭풍의 언덕'이라는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 ‘폭풍의 언덕’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남녀가 말 달리고 사랑을 나누던 요크셔의 황무지 무어(moor)와 그 위에 찬란했던 보라색 헤더(heather) 꽃밭의 모습이다. 원제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는 황량한 들판의 언덕 위에 자리잡은 외딴 저택의 이름을 일컫는다. 등장인물들의 3대에 걸친 사랑과 증오가 뒤엉켜온 삶의 현장이다. ‘처음 이 집을 발견했을 때 누가 살았을까
제주에서는 다음 달 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일정으로 제주아트센터와 세계자동차&피아노박물관에서 제주국제관악제가 진행된다. 정확히 말하면 올해 처음 시도하는 여름과 겨울 두 번에 나눠서 하는 관악제 중 겨울 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름일정은 지난 8월에 8일간 성황리에 진행됐고 그 후반전을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진행된 관악제가 열린 8월은 제주도에서도 코로나19 확진세가 상승하는 시점이었고, 좋지 않는 날씨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이었다. 그럼에도 더 힘든 지난해와 비교하여 제한적이나마 공연이 가능해지면서 음악에 목마른 도민들에게 소중한 경험이 됐다. 관악제와 콩쿠르의 예선을 치렀으며 오는 12월3일부터 시작하는 겨울에는 관악콩쿠르 결선과 작곡콩쿠르 결선, U-13 Band Contest를 연다. 여름에만 치르던 관악제 기간 동안 서울에서 일부 공연을 가진 적은 있어도, 이번처럼 비중을 둬서 나눈 경우는 26년 역사상 처음이다. 작곡콩쿠르도 올해 처음 개최한다. 시기적 위기를 기회로 삼고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은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제주의 관악은 6․25 한국전쟁을 전후한 어려웠던 시절부터 시작된다. 금빛 나팔소리로 제주사람들의 애환
‘우리 새끼덜, 곤밥 하영 먹으라.’ 어릴 적 외할머니의 이 말은 반세기 훌쩍 지난 세월에도 잊히는 법이 없다. 이웃 제삿집에서 보내온 쌀밥 한 그릇과 구운 생선 반 토막을 사이에 두고 어린 삼형제가 어미 새 앞 새끼 새들처럼 할머니 앞에 입 쫑긋 벌리고 앉아 널름널름 받아먹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예전에 서귀포 ‘하논‘을 육지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글에서 ‘하영’이 ‘많이’를 뜻하는 제주 사투라고 썼다가, 지인으로부터 ‘사투리’보다는 ‘제주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아 살짝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하영순대, 하영꼬치, 하영횟집 등 도내 수많은 식당 상호들에서 보듯 ‘하영’이란 단어는 ‘풍성하게 듬뿍 내어준다’는 암시까지 풍기며 이젠 외지인 관광객들에게도 정겨운 단어로 자리잡아 가는 듯하다. 금년엔 서귀포시-제주올레-제주관광공사 3자가 함께 힘을 모아 ‘하영올레’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원도심 도보여행길을 조성하여 개장했으니 이제 ‘하영’이란 제주어는 머지않아 전국적 지명도를 얻을 듯하다. 15년 전 ‘올레’라는 생소한 제주어가 단시간 내에 대한민국 걷기 열풍을 견인했듯이 말이다. 제주국제협의회 김창학 사무총장을 비롯한 임원진 4명과 내 친구 강수봉
서귀포 칠십리 축제가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온·오프라인 방식으로 병행해 열린다. 서귀포시는 이번 축제 개최에 앞서 11월 한 달간 서귀포칠십리축제 사전 행사로 ‘온라인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온라인 사진전에서는 축제 첫 회부터 지난해 운영된 제26회 칠십리축제까지의 현장을 기록한 작품을 만날 수 있따. 사진전은 2개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1관은 제1회부터 제12회까지, 2관은 제13회부터 제26회로 나눠, 총 78점(각 3점)의 현장기록 사진이 전시된다. 관람 방법은 축제홈페이지(seogwipo.go.kr/festivals/70ni/index.htm)내 주요 프로그램 안내(온라인 사진전 배너)에 접속해 전시관별 입장, VR모드 방식으로 관람하면 된다. 축제 주요프로그램에는 축제 마지막 날인 21일, 오후 7시에 칠십리 야외공연장서 진행하는 칠십리가요제가 있다. 사전 접수는 오는 21일 오후 7시까지 도민을 대상으로 받고 있다. 침체된 지역 공연예술 활성화를 위한 17개 읍면동 대표 공연단체가 참가하는 칠십리 문화예술마당이 축제 기간내 칠십리 야외공연장에서 진행된다. 무병장수의 별 ‘남극노인성’제 재현을 통해 서귀포의 만사형통과 시민의 무병장수를
한라산 정상을 오르는 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단 생각이었다. 1년 전까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 내 남은 인생에 백록담을 몇 번 더 오를 수나 있을까?’ 하는 마음이다. 작년 여름 발목 골절로 3개월 깁스를 하고 나서의 자신감 변화에, 나이 60 넘어 관절 혹사시키면 금세 불편해진다는 주변의 조언도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한편으론 지금의 내 몸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도 꿈틀거린다. 아직은 그다지 늙지 않았음을 주변에 보여주고픈 은근한 과시욕도 숨길 순 없다. ‘제로포인트 트레일’이라는 색다른 루트로 한라산을 올라보기로 했다. 백록담 정상에 오르는 길은 완만한 성판악코스와 가파른 관음사코스가 전부다. 어리목, 영실, 돈내코 코스 들로는 정상보다 300여 미터 낮은 남벽분기점이나 윗세오름대피소에서 내려와야 한다. 해발 제로(0m) 포인트인 원도심 산지천의 마지막 다리 용진교에서 출발하여 관음사 야영장까지, 이어서 관음사코스로 한라산 정상 동능에 오른 후 성판악코스로 하산하는 루트가 ‘제로포인트 트레일’이다. 총거리 31㎞이다. 새벽 4시에 산지천을 출발하면 오후 5~6시에 성판악에 도착한다. 당일 하루에 13시간 이상을 걸어 고도 차 2천
최근 발간된 대한지질학회지(57권 제2호, 연구자: 고기원 박사팀)에 의하면, 월라봉과 군산은 기원전 83만 년부터 92만 년 사이에 동시에 솟아난 쌍둥이 화산체라고 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월라봉과 군산은 제주도 지표에 노출된 화산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오름이며, 그동안 가장 오래된 화산체로 알려진 산방산보다 최대 6만 년가량 앞선다고 한다. 게다가 월라봉 절벽인 박수기정에는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현무암질 용암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그럼 제주도에서 마지막으로 화산이 분출한 것은 언제일까? 제주선인들은 1002년과 1007년에 일어난 제주섬에서의 화산분출을 실제로 목격했다고 한다. 다음은 475년간 34명의 고려 왕의 치적들을 기록한 고려사에 실려있는 제주도의 화산에 관한 글이다. “목종 5년(1002년) 6월, 탐라에 있는 산에 4개의 구멍이 뚫리며 붉은 물이 솟아나오다 5일 만에 멎어 용암이 되었다. 탐라 바다 가운데서 서산(瑞山)이 솟아나왔으므로 태학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돌아보게 하였다. 탐라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산이 처음 나올 적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캄캄해지면서 우레와 같은 진동이 나고, 7일 만에 날이 처음 개었다. 산 높
▲일제가 파헤친 갱도진지의 아픔을 간직한 굴뫼오름 군산의 비경과 비사 제주의 360여 오름 중 면적(285만여 ㎡)이 가장 넓은 오름이 군산이고, 제주의 역사문화가 가장 많이 깃들기로는 월라봉이다. 월라봉과 아주 오래전 쌍둥이 오름으로 형성된 굴뫼오름 군산은 쌍봉을 머리에 인 정상에 묘를 쓰면 크게 가물거나 심한 장마가 든다는 금장지(禁葬地)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실제로 1960년대 큰 가뭄이 들자, 몰래 쓴 묘를 이장하자 비가 내렸다 전한다. 최근 지질 연구에 의하면 월라봉과 군산은 동시에 폭발한 하나(쌍둥이)의 화산체라 한다. 제주에서는 마지막 화산 활동이 1007년 있었는데, 안덕지역에서는 화산 활동 후 이레가 지나 솟은 산이 군산이라 전해오고 있다. 또한 1374년 목호의 난 때 최영 장군과 목호들이 치열하게 싸운 격전지 중 하나이고, 군산 정상 주변에는 일제가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파헤친 진지갱도들이 10여 개 산재돼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사방으로 나 있는 군산은 여러 갱도진지와 이웃하고 있다. 동으로는 상예리 서로는 대평리, 남으로는 하예리, 북으로는 감산리와 창천리 등과 접한 군산은, 넓은 품만큼이나 매력적인 비경과 비사도
▲안덕·대정 지역에 산재한 일제의 전쟁 상흔 제주도는 동북아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이다. 한반도·중국·일본과의 삼각지대에 자리한 제주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바람 타는 섬으로 부침도 많았다. 1270년대 초에는 진도 용장성을 걸쳐 제주에 입도하여 응전하는 삼별초와, 삼별초를 추격해온 여몽연합군과의 싸움으로 제주선인들은 등 터지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해안가에 자주 출몰하여 노략질하는 왜구를 방어하려 고려시대부터 쌓은 환해장성을 더욱 확장하고 구축하는 한편, 3성 9진 25봉수대 38연대라는 독특한 방어체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주도의 독특한 방어유적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일제의 황민화 정책과 내선일체 속에 숨겨진 간교한 정체성 혼란 및 파괴 책략에 의한 결과이다. 1910년 한일병탄과 함께 시작된 무단통치로 조선을 유린하기 시작한 일제는 1919년 3·1 독립운동을 계기로 소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라는 민족분열통치로 식민지정책의 무늬를 바꾸기도 했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 그리고 1941년 태평양전쟁을 지속적으로 일으킨 일제는 1939년부터 창씨개명과 조선어 사용 금지 등을 통해 민족말살정책을 이어
▲오대진吳大進:1898(광무2)~1979, 제주 청년동맹과 제주 야체이카 항일 활동, 광복 후 건준(建準) 제주도당 위원장, 본관 군위, 오영식(吳榮植)의 아들. 대정읍 하모리(모실-개)에서 태어났다. 항일 동지 김한정(金漢貞)과는 외종제지간(外從弟之間)이다. 1925년 모슬포청년회 대표였던 오대진을 포함한 제주도내 8개 청년 단체들이 모여 제주청년연합회를 조직, 고은삼(高殷三), 김석호(金錫祜), 김한정(金漢貞), 강창보(姜昌輔), 한상호(韓相鎬) 등과 함께 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실질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상무위원은 신인회 소속의 사회주의 성향의 청년들이 거의 장악했다. 그러므로 1925년 이후 제주 청년운동은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는 1927년 2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해 제주야체이카에 소속됐다. 1928년 10월 모슬포의 단추공장 노동자 100여 명의 노동쟁의, 1929년 5월 어린이날에 모슬포의 청소년들의 시위운동,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신당(神堂) 배격·예배당 설교 반대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는 오대진, 이신호가 청년동맹을 통해 벌인 항일 운동의 일환으로 일어난 것이다. 1930년대 초반 주로 대정면 출신의 오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