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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산에 구멍이 뚫리며 솟은 붉은 물이 용암이 되었다”

(110) 제주의 마지막 화산 폭발
1002년과 1007년 탐라에 상당한 규모의 화산 폭발 발생
비양도·우도·월라봉·군산 등이 용암 분출 장소로 추정돼
암벽 사이로 흐르는 물 ‘박수’...대평리 바닷가에서 발견

 

최근 발간된 대한지질학회지(57권 제2호, 연구자: 고기원 박사팀)에 의하면, 월라봉과 군산은 기원전 83만 년부터 92만 년 사이에 동시에 솟아난 쌍둥이 화산체라고 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월라봉과 군산은 제주도 지표에 노출된 화산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오름이며, 그동안 가장 오래된 화산체로 알려진 산방산보다 최대 6만 년가량 앞선다고 한다. 게다가 월라봉 절벽인 박수기정에는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현무암질 용암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그럼 제주도에서 마지막으로 화산이 분출한 것은 언제일까?

제주선인들은 1002년과 1007년에 일어난 제주섬에서의 화산분출을 실제로 목격했다고 한다. 다음은 475년간 34명의 고려 왕의 치적들을 기록한 고려사에 실려있는 제주도의 화산에 관한 글이다.

“목종 5년(1002년) 6월, 탐라에 있는 산에 4개의 구멍이 뚫리며 붉은 물이 솟아나오다 5일 만에 멎어 용암이 되었다. 탐라 바다 가운데서 서산(瑞山)이 솟아나왔으므로 태학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돌아보게 하였다. 탐라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산이 처음 나올 적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캄캄해지면서 우레와 같은 진동이 나고, 7일 만에 날이 처음 개었다. 산 높이가 백여 발이나 되고 주위는 40여 리 되며, 초목은 없고 연기가 산 위에 자욱이 덮였다. 바라본즉 석유황 같으며 사람들이 무서워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전공지가 직접 그 산 밑까지 가서 산의 형상을 그려 왕에게 드렸다.”

위의 글에서 화산이 솟구친 서산은 어디일까?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송나라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로 제주도 화산폭발은 국제적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탐라에서의 화산폭발은 분명히 있었으나 장소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다 보니 화산이 분출한 곳으로 비양도·우도·월라봉·군산 등이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유산 한라산연구원 연구보고서인 ‘문헌에 기록된 제주도 화산활동에 관한 연구(안응산)’에 따르면, 서산을 대정읍의 송악산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라산연구원에서는 제주도 역사시대 화산활동 기록의 실체를 밝히기 위하여 비양도·일출봉·송악산 등 3개의 오름의 화산 활동에 대하여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등을 실시하였다. 연대분석 결과만으로는 역사책에 기록된 천 년 전 화산을 찾아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매우 가까운 과거에 화산 활동이 있었음이 보고되었다.

1002년의 기록은 탐라의 화산활동이 최초로 고려조정에 전달된 시점이고, 1007년(목종 10년)의 기록은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 미상~1014, 고려 문신)가 탐라를 방문하여 화산폭발의 실체를 확인한 시기라고 한다.

또한, 천 년 전 탐라에서 일어난 화산은 상당한 규모로 이루어진 수성화산으로 추정된다고 전한다. 한라산연구원에 따르면 이때 솟은 화산으로 대정읍에 위치한 송악산이 가장 유력하다고 피력하였다.
 

 

▲화산폭발의 공포에 휩싸인 제주의 탈출구는?

1002년부터 1007년까지, 5년 사이에 화산폭발이란 절체절명의 기상이변을 두 번이나 몸소 지켜보아야 했던 탐라선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세상이 끝나는 것과 같은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탐라의 지배층들의 위기감도 탐라의 기층서민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탐라사회를 지켜줄 무언가를 찾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절박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탐라 내부의 동요가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탐라는 고려조정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고려수도인 개경으로 도움을 청한 이유가 숨어 있음 직하다.

화산폭발을 조사하기 위해 고려조정에서 보낸 태학박사 전공지와 탐라의 집권세력과의 만남 자체가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를 공유했으리란 추측이 가능하다.

거란의 침입으로 인한 국난을 불교를 통해 극복하려 했던 고려에서는 지방에도 읍사(邑寺)인 자복사를 짓고 있음을 탐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

탐라는 전공지가 다녀간 4년 뒤인 1011년(현종 2년) 고려조정을 찾아가 주군(州郡)의 예에 따라 주기(朱記:외교 교서)를 달라고 요청, 이를 허락받았다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전한다. 화산폭발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는 탐라사회를 안정시켜야 할 지배층에게는 불력을 통해 국난극복에 나서고 있는 고려의 정책이 더욱 필요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한 상황에서 탄생된 복신미륵이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동자복과 용담동에 있는 서자복(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1호)이라는 학설(강문규_‘일곱개의 별과 달을 품은 탐라왕국’)도 등장하고 있다.
 

 

▲제주 최고의 절경 박수기정 지질박물관

박수기정은 용왕난드르라고도 불리는 대평리 서쪽 바닷가 절벽지대의 이름이다. 박수는 박세기(바가지의 제주어) 같은 암벽 사이로 흐르는 물이란 뜻이고, 기정은 절벽이란 의미를 지닌 제주어이다.

130m여 높이를 자랑하는 절벽 중 지상에서 1.5m에 위치한 암반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박수이다. 절벽 틈을 흘러나오는 수량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별로 없다고 한다.

높은 절벽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줄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낼 만큼 자연의 이치가 오묘하다. 박수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천혜의 선물이다.

박수기정은 기저에서 최상부까지 다양한 계층의 암석들이 관찰되는 지질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특히 성질이 다른 암석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암석인 페퍼라이트가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사단법인 제주화산연구소에 의하면, 박수기정의 페퍼라이트는 학회에 처음으로 보고될 만큼 특별한 암석이라고 한다.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