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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너른 품에 새겨진 비경, 전쟁 상처마저 감싸다

(109) 굴뫼오름 군산

월라봉과 쌍둥이 오름으로 형성…금장지로 기우제 지내던 곳
목호의 난 때 격전지…정상 오르는 길엔 일제 진지갱도 산재
슬픈 전설 깃든 ‘아기업개돌’ 등 다양한 전설 전해져 내려와

 

▲일제가 파헤친 갱도진지의 아픔을 간직한 굴뫼오름 군산의 비경과 비사

제주의 360여 오름 중 면적(285만여 ㎡)이 가장 넓은 오름이 군산이고, 제주의 역사문화가 가장 많이 깃들기로는 월라봉이다. 월라봉과 아주 오래전 쌍둥이 오름으로 형성된 굴뫼오름 군산은 쌍봉을 머리에 인 정상에 묘를 쓰면 크게 가물거나 심한 장마가 든다는 금장지(禁葬地)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실제로 1960년대 큰 가뭄이 들자, 몰래 쓴 묘를 이장하자 비가 내렸다 전한다.

최근 지질 연구에 의하면 월라봉과 군산은 동시에 폭발한 하나(쌍둥이)의 화산체라 한다. 제주에서는 마지막 화산 활동이 1007년 있었는데, 안덕지역에서는 화산 활동 후 이레가 지나 솟은 산이 군산이라 전해오고 있다.
 

 

또한 1374년 목호의 난 때 최영 장군과 목호들이 치열하게 싸운 격전지 중 하나이고, 군산 정상 주변에는 일제가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파헤친 진지갱도들이 10여 개 산재돼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사방으로 나 있는 군산은 여러 갱도진지와 이웃하고 있다.

동으로는 상예리 서로는 대평리, 남으로는 하예리, 북으로는 감산리와 창천리 등과 접한 군산은, 넓은 품만큼이나 매력적인 비경과 비사도 간직하고 있다.
 

 

 

미륵골이라 불리는 곳에는 미륵 닮은 바위들이 도열하듯 서 있고, 그 위쪽에 전설 깃든 ‘농궤와 아기업개돌’이 있다.

다음의 글은 18세기에 편찬된 증보 탐라지(增補 耽羅誌志)에 실린 군산과 월라봉에 관한 글이다.

“호산(蠔山): 군산 혹은 굴산이라 부른다. 창고천이 휘감아 흐르는 곳으로 예전에는 장장(獐場: 노루 목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산의 남쪽 허리 아래로 물건을 넣는 농궤 같은 암석이 있는 데, 농동(籠洞)이라 한다. 또 곧은 바위가 우뚝 서서 마치 아이를 업은 것과 같은 바위가 있는데, 이름을 미륵동(彌勒洞)이라 한다. 또 다듬이나 디딜방아(방칫돌) 같은 바위가 있는데, 이름을 방하동(方何洞)이라 한다. 창고(倉庫)라는 이름이 이러해서(이것저것 볼게 많다 하여) 붙여졌다. 산의 조금 서쪽에 월라악이 있고 그 남쪽으로 이두어시봉이 있다.”

위의 고서에서 보듯 호산이란 지명은 군산과 월라봉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한자로는 달리 쓰이고 있다. 蠔山은 군산을, 壕山은 월라봉을 뜻한다.

명품바위인 아기업개돌은 군산 기슭인 대평리 지경에 있는 기암의 이름이다. 바위가 아기 업은 사람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제1훈련소 제2숙영지 사격장이었던 곳이다. 어느 날 총탄 파편이 날아와 귀퉁이를 때리자, 기암이 3일간 울어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한다. 애기업개돌 아래로 미륵을 닮은 기암들이 늘어선 골짜기인 미륵골이 이어진다.

이어서 용왕난드르라 불리는 마을인 대평리로 넘어가다, 사방으로 등정로가 난 군산을 월라봉 동쪽으로 난 차도를 통해 올라보자. 오름 중턱에 ‘아기업개돌 만화판’이 세워져 있다. 보일 듯 말 듯 난 길을 헤치며 ‘소지왓 기슭에 있다는 전설 어린 농궤바위와 아기업개돌’을 찾아 길을 나선다.

이곳에서 전해오길, 굴뫼오름 군산이 생기기 전 이곳 주변에는 시냇물이 사철 흐르고, 냇가 앞에는 학동들이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한 유명한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용궁에도 알려진 서당이라 글을 배우러 용왕의 아들도 몰래 이곳 서당에 다니곤 했다고 전해진다. 시냇물 소리에 제자들의 글 읽는 소리가 묻히는 것을 아쉬워하는 훈장의 넋두리를 들으며 3년간 글을 배운 용왕 아들이 서당을 떠나는 날,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답례로 물소리 시끄러운 시내를 옮긴 것이 군산을 에워싼 지금의 풍경이란다. 물소리 시끄러운 시내는 어디로 옮겨갔을까? 이곳 주변은 안덕계곡 등 물소리 들리는 곳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또한 이곳 사람들은 군산·월라봉·박수기정 등과 주변의 넓은 들을 선물한 용왕의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용왕난드르를 대평리의 마을 이름으로 삼고 있다. 한편, 북쪽에서 보면 군산은 군막 모양이고 남쪽에선 사자 모양이다. 그래서 군산 동남쪽 마을 이름을 사자 닮은 지형이라는 의미를 담아 예래(猊來)리로 부른다.

아기업개돌이 위치한 용왕난드르 근처의 도로명은 마소를 돌본다는 의미를 담은 소지기왓(밭)에서 유래한 소지왓로이다. 이곳에서는 오래전부터 군산의 정기를 이어받을 아기장수가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 날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 잠을 깬 동네사람들이 소지왓의 테우리 집에 모여들었다. 군산의 정기로 태어난 아기라 여긴 테우리는 아들을 업고 전설 깃든 농궤바위로 다가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아기장수가 태어나면 말·갑옷·보검이 들어있는 농궤의 문이 열린다는 전설을 철석같이 믿은 테우리는, 기다리다 지쳐 그만 농궤바위를 망치로 내리쳤다. 그러자 농궤 귀퉁이에서 검붉은 피가 흐르고,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번개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졌다. 그러고 머슴은 아기를 업은 채 돌이 되었다.

슬픈 전설이 깃든 아기업개돌 서쪽 100m 지경에는 성채 닮은 커다란 기암이 서 있다. 이곳 주변 풍광에 매료된 용왕이 아기와 테우리의 간절한 사연을 달래주려 지어준 성채란다. 이렇듯 이곳 주변에 산재한 명품바위들을 바라보며 자란 젊은이들은 호쾌한 상상력이 저절로 생겨나, 언젠가 큰 인물이 되리라는 다짐을 하곤 했단다.

질토래비 답사팀이 두어 번 찾아간 농궤와 아기업개돌로 가는 탐방로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오가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오늘 내가 간 이 길을 훗날 누군가 걷겠지’라는 생각으로 성채바위 전설 하나 남긴다.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