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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이영철의 색다른 여행] 볼거리·먹거리 ‘하영’ 있는 서귀포시 원도심 투어

(2) 하영올레
1·2·3 코스 합쳐 총 28.3㎞
완주에 최소 8~9시간 소요
새연교 건너는 새섬 산책로
올레시장서 향토음식 체험
이중섭 거리 등 하이라이트

 

‘우리 새끼덜, 곤밥 하영 먹으라.’ 어릴 적 외할머니의 이 말은 반세기 훌쩍 지난 세월에도 잊히는 법이 없다. 이웃 제삿집에서 보내온 쌀밥 한 그릇과 구운 생선 반 토막을 사이에 두고 어린 삼형제가 어미 새 앞 새끼 새들처럼 할머니 앞에 입 쫑긋 벌리고 앉아 널름널름 받아먹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예전에 서귀포 ‘하논‘을 육지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글에서 ‘하영’이 ‘많이’를 뜻하는 제주 사투라고 썼다가, 지인으로부터 ‘사투리’보다는 ‘제주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아 살짝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하영순대, 하영꼬치, 하영횟집 등 도내 수많은 식당 상호들에서 보듯 ‘하영’이란 단어는 ‘풍성하게 듬뿍 내어준다’는 암시까지 풍기며 이젠 외지인 관광객들에게도 정겨운 단어로 자리잡아 가는 듯하다.

금년엔 서귀포시-제주올레-제주관광공사 3자가 함께 힘을 모아 ‘하영올레’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원도심 도보여행길을 조성하여 개장했으니 이제 ‘하영’이란 제주어는 머지않아 전국적 지명도를 얻을 듯하다. 15년 전 ‘올레’라는 생소한 제주어가 단시간 내에 대한민국 걷기 열풍을 견인했듯이 말이다.

제주국제협의회 김창학 사무총장을 비롯한 임원진 4명과 내 친구 강수봉 군 등 모두 8명이 아침 9시에 모여 서귀포시청 1청사를 출발했다. 모두 백신 접종 2회 마친 이들이다. 하영올레 3개 코스의 시종점이 모두 이곳인지라 정석대로 종주를 마치려면 오늘 하루 이곳 1청사에 세 번을 더 와야 한다. 지난 5, 6, 7월에 순차적으로 개장한 1, 2, 3코스를 모두 합친 거리는 28.3km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완주를 마치려면 8~9시간 동안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서홍동에서 천지동으로 이어지는 도심 주택가 골목을 700m만 따라가면 ‘풍경이 있는 오솔길’로 들어선다. 법장사로 내려가는 정겨운 골목길이다. 오른쪽 멀리 하얀 주택들 위에 얹혀진 듯 보이는 한라산 정경이 바로 앞 삼매봉과 대비를 이루며 멋진 조화를 이룬다. “우와, 물 좀 봐. 너무 맑아!” 거울처럼 투명한 연외천 물소리에 일행 모두는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들떠 보인다. 이곳 걸매생태공원에서는 올레 7-1코스와 잠시 겹치고, 이어지는 칠십리시공원에선 올레 7코스와 함께 한다.

드넓은 파크골프장을 느긋이 거닐며 라운딩하고 있는 시니어들 모습에는 행복감이 충만해 보인다. 칠십리시공원 나무숲 사이로 천지연폭포가 보이는 포토존은 자신들 모습을 폭포와 한라산과 한 묶음으로 사진에 담으려는 이들로 하하호호 유쾌함이 넘친다. 1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새섬 구간이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다리 새연교를 건너 새섬 산책로 한 바퀴를 돌아 서귀포항으로 나오는 것이다. 문섬을 가운데 두고 좌우 멀리 섶섬과 범섬이 그윽하게 앉아 있다. 육지 손님들 왔을 때 이곳으로 안내해 오면 모두가 백 퍼센트 만족해하더라는, 일행 중 누군가의 말이 절로 수궁이 된다.
 

 

2코스는 역방향인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점심을 매일올레시장에서 먹기 위해서였다. 도심 여행에서 재래시장 먹거리는 늘 매력적이다. 삼달리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현용행 친구가 시간에 맞춰 달려와 모두에게 점심을 대접해준다. 갈치국, 돼지백반, 곰탕을 각 3개씩 시켜 적당히 덜어가며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이 주변 구간은 올레 6코스와 겹치다 보니 모두가 한두 번씩은 전에 다녀갔다지만 이중섭거리는 언제 걸어도 고즈넉하다. ‘촐람생이 돗추렴에 근 자랑허당 대갱이 대신 꼴랑지만 들렁 간덴.’ 거리 한켠에 전시된 ‘제주어 공모전’ 수상작 몇 편을 읽어보며 모두가 한바탕 유쾌한 웃음을 쏟아냈다.

이중섭 화가 가족이 살았던 좁은 굴묵 방을 둘러보고 서귀진성에 도착하니, 솔동산어멍쉰다리모임에서 김종현 회장 등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준다. 하영올레 2코스 중간 지점이자 제주올레 6코스 종반 위치인 이곳에서 여행자들에게 지역 정보 편의 등을 제공하는 봉사 활동의 일환인 것이다. 오랜만에 맛보는 쉰다리 몇 잔과 함께 일행 모두가 어릴 적 옛 추억을 음미했음직하다. 30분간 김종현 회장과 담소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 전통 발효 음료 쉰다리의 가치는 물론, 이곳 솔동산과 서귀진성의 문화적 유산 가치를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중섭 화가가 어린 아들과 함께 ‘깅이’를 잡는 모습을 그려보며 자구리해안을 지나면, 서복불로초공원부터 2코스 나머지 구간은 동흥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고, 이어지는 3코스 변시지 그림정원까지는 솜반천 또는 연외천을 거슬러올라가는 길이다. 한라산 곳곳에서 발원한 용천수 흐름들이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로 모아지는 현장을 확인하는 셈이다.

서울 출장길에서 막 내려온 오경수 제주미래가치포럼 의장이 3코스 중간 지점 지장샘에서 우리를 맞았고, 이후 30분은 올레 인문학 강연 시간이 되었다. 지장샘에서 나고 자란 그인지라 지장샘에 얽힌 옛 설화에서 시작해,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의 물줄기 근원과 지리 이야기로 옮겨갔다가 서귀포의 역사 문화로 주제가 넓혀지는 듯하더니 결론은 하영올레로 돌아온다. ‘물 많고 공원 많고, 먹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으니, 그래서 ‘하영’ 올레라는 것이다.

1박2일 걷기 일정으로 육지 지인들에게 자신 있게 소개할 만한 코스가 하나 더 생겼음을 확인하는 하루였다. 내가 사춘기 시절 살았던 구제주에도 외지인 여행자들이 즐겨 걸을 만한 원도심 도보 코스가 머지않아 생겨나리라 믿어본다. 통찰력 있는 몇몇 관료 분들에 의해 당연히 검토되고 있을 것이다. 자연 경관 면에서야 서귀포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구제주 원도심은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탐라 섬 역사 문화의 중추였던 것이다.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