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가마오름 갱도진지 현재 평화박물관이 휴관 중이므로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다. 미군이 상륙할 가장 유력한 지점으로 제주도 서부지역 일대를 예측한 일제는, 일본군 중에서도 최강으로 알려진 제111사단을 이곳에 주둔케 했다. 지난주에 소개한 한장동 해안 갱도진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경면 청수리(1166번지) 가마오름에도 일제는 갱도진지를 구축했다. 일본군 최고사령부가 주둔했다는 이곳 갱도는 도내 일제진지 중 가장 길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의 갱도진지는 그 전모를 쉽게 알 수 없는 미로 형태인 3층 구조로 되어 있다. 등록문화재(제308호)로 지정된 이곳 가마오름 일대에 전쟁역사를 알리는 ‘평화박물관’이 2006년 들어섰다. 박물관 내부에는 일본군 사령관실과 회의실 그리고 작업실 등의 공간을 재현해 놓았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 폐쇄되어 있다. 평화박물관을 다시 찾아간 날, 입구에는 대표이사 이름으로 ‘2019년 9월부터 사정상 휴관’한다는 안내판이 전시되어 있었다. 도민뿐만 아니라 내외국인이 알아야 할 일제침략의 현장을 개인이 막고 있다는 사실에 답사팀은 누구를 탓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마음이 일어 발걸음이 무거웠다. ▲고산리가 낳은 항일지사 이창휘 변호사
올해 어린이날 연휴 20만여 명의 관광객이 제주를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제주를 찾은 내외국인 관광객은 15만9699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연휴 마지막 날인 8일에는 4만1000여 명이 제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 올해 어린이날 연휴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은 20만여 명으로 추산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7만2648명보다 16%가량 증가한 것이다. 이번 어린이날 연휴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해제된 뒤 맞는 첫 연휴다. 이 기간 제주기점 국내선 항공권 예약률은 90% 상회했다. 제주 관광 명소에서는 관광객과 나들이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초여름 날씨를 보이면서 해안도로와 해수욕장 등은 북적거렸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특급호텔을 중심으로 도내 숙박 업계는 어린이날 특수를 누렸다. 렌터카도 70% 이상의 가동률을 보였으며 골프장 부킹난도 이어졌다. 일상회복이 가속화되면서 여행심리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 올해 상반기까지는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일상회복이 가속화되고 사회적거리두기
▲‘결7호 작전’과 일제가 파헤친 도처의 갱도진지 결호작전(決号作)이란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세운 일본본토 방위작전을 말한다. 패전기운이 짙게 드리우던 1945년 2월, 일본방위총사령관은 영미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7개 지역에서의 육‧해군 결전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본토 6개 지역과 일본 이외의 지역으로 제주도가 유일하게 해당되었다. 결7호 작전 대상지역인 제주도에서 방어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고, 이에 따른 여러 예하부대가 편성되어 7만5000여 명의 병력이 제주도로 몰려들었다. 결호작전 지역 중에서도 미군의 예상 상륙지점으로 홋카이도(북해도)와 제주도가 유력하다고 판단한 일제는 결1호와 결7호 작전을 보다 강도 높게 수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제는 고산 수월봉 등이 위치한 서부지역을 주진지대로 하여, 해안과 오름 등지를 3단계에 걸쳐 마구 파헤치며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도처에 갱도진지들을 구축해나갔다. ▲일제가 제주도에 구축한 5대 자살특공진지 중 하나인 수월봉 자살특공진지 일제는 미군의 제주도 상륙을 저지하려 자폭용 고속정 특수부대인 ‘신요오(震洋)’와 자폭용 인간어뢰인 ‘카이텐(回天)’ 특수부대를 1945년 초
▲이두일李斗一:1914(일제강점기)~?, 제주농업학교 학생의 제2차 항일활동. 충남 천안에서 생활, 이홍림(李洪琳)의 아들로 산북 구좌읍 평대리<갓-머리>에서 태어나 1927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로 진학해 2학년에 재학 중 장터에서 항일 격문을 몰래 붙였다. 3월 15일 밤에는 조천경찰관주재소 순사(巡査)에게 잡혀 1931년 8월 3일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 광복절에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일이 알려져 모교 제주농고에서는 명예 졸업장 제1호를 발급해 그의 명예를 복권시켰다. 교장 사택(舍宅)으로 몰려가 뜰에 있는 장작·곤봉·돌멩이 등으로 유리창·가옥 기물을 부수니 일경에 의해 구속당하는 것을 보고 이두일은 홍성옥洪成玉(귀덕), 오화국吳化國(하도)과 함께 회합을 갖고 피신했다. 이두일은 성장 후 부산에 오래 살다가 최근까지 충청남도 천안(天安)시의 아파트로 옮겨 살다가 타계했다. ▲이문석李文錫:1933~?, 안덕면 사계리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제주해무청 재임. 1960년 12월 12일 제3대 제주도의원 남제주군 제2구에 입후보, 1116표로 양인수․김한익
‘이슬로 태어나 이슬로 사라지는 내 운명이로다. ‘나니와’의 영화는 꿈속에 또 꿈이던가.’ 임진왜란을 일으켜 자신의 수명까지 단축시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옛 이름 ‘나니와’)의 거성에서 63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 남긴 유언시다. 인생을 달관하고 초연하게 삶을 마감하는 듯한 분위기지만 실제는 그 반대였다. 삶의 끈을 끝까지 놓지 못하는 범부의 미련이 가득한 모습으로 죽었다. 사무라이 할복이나 가미카제 자폭처럼 의연함으로 미화되는 비장미 따위도 전혀 없었다. 대체로 인간은 죽음 직전까지도 그 상황을 부정하며 반드시 더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쉽게 놓지 못하는 듯하다. 허나 일본인들에겐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선 체념하고 순응하는 자세가 보편적인 것 같다. 칼과 창으로 서로를 살육하던 백 년 이상의 전국시대가 있었고, 자신들이 자초했던 태평양 전쟁과 두 차례 원폭 투하가 있었다. 자연재해는 역사와 관계없이 그들 앞에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이런 역사와 지리적 숙명을 통해 남들보다 더 많은 죽음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인들이다. 죽음으로 모든 인연이 끝난다면 너무 가혹하다. 현세의 인연의 끈이 다음 세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기우제를 지내던 고구산과 용연 탐라순력도 등 여러 고지도에는 수월봉을 고산(高山), 한자두(汗子頭), 고구산(高丘山) 등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지명들이 수월봉으로 바뀐 것은 1910년께 이곳에 세운 수월공(水月公)의 위령비에서 연유했다 한다. 또한 차귀현·신두모리·당산리 등으로 시대에 따라 쓰이던 지명은 마을에 재앙이 자주 발생한다고 해 1892년 고산으로 개명하니 마을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수월봉과 당산봉 사이의 2㎞가 넘는 해안절벽에 비바람과 태풍이 몰아칠 때면 지역에서는 마치 용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한다. 이런 자연현상은 오래전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또한 고산기상대가 이곳에 세워진 배경이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18세기 편찬된 제주삼현도 등 옛 지도에는 이 지역을 용연(龍淵)으로 표기하고 있다. 인근 마을인 용수리와 용당리 지명도 이와 관련 있어 보인다. 또한 이곳 풍경에 매료된 인물들이 이곳 주변에 정착하기도 했는데 기묘사화로 1520년 유배된 이세번과 을사사화(1545년) 여파로 입도한 제주목사 임형수의 아들 임구와 임진왜란(1592년)을 거치며 삶의 터전을 옮긴 지영걸 등이 그들이다. 그들이 살았던 고산리 칠전동 근처를 지역에서는 지금도
‘길을 잃거나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위치와 관계의 무한한 범위도 이때부터 깨닫게 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전 ‘월든(Walden)’ 8장에 서술된 내용이다. 19세기 중반에 20대 청년이었던 소로가 미국 매사추세츠의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 3년 가까이 홀로 살며 알게 된 세상의 이치일 것이다. 1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한 여인은 미국 중부 내륙 와이오밍주의 산속 오두막에 3년 이상을 홀로 살았다. 문명과 동떨어진 호숫가 생활을 통해 소로는 후세의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교훈을 남겨줬지만 산속 오두막에 칩거했던 그 여인은 자신의 삶을 되찾았다. 2021년 봄에 국내 개봉됐던 로빈 라이트 주연 감독의 미국 영화 ‘랜드(Land)’ 속 여인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지금 기분이 어떤지 말해줄 수 있어요?” “사람들이랑 같이 지내는 게 힘들어요.” “남들과 감정을 공유하기가 어려운 거군요.” “대체 그걸 왜 공유하려 애써야 할까요. 어차피 남들은 공감 못할 텐데….” “그럼 고통 속에 혼자 있게 되잖아요.” “…….”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받는 여인의 모습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제주4·3을 바라보는 시각은 74주년째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상반된 양극이 존재한다. 한쪽에선 남로당 빨갱이들이 일으킨 국가 전복 사건이란 시각이고 다른 한쪽에선 국가 권력이 민간인들을 불법 학살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오랜 세월을 그렇게 척지고 대립해왔다. 전자 쪽 주장이 반세기 동안 무소불위로 득세하다가 새천년 들어서면서 점차 후자 쪽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전자니 후자니, 좌익이니 우익이니를 떠나 제주4·3에 대한 엄연한 사실 하나가 존재한다. 무장대 수백 명을 진압하기 위해 군경 수천 명이 동원됐고 그 와중에 민간인 수만 명이 희생됐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팩트다. 제주 원도심의 관덕정 앞은 섬사람들의 민의가 모이는 중심 현장이었다. 육지로 치면 서울시청 앞이나 광화문광장과 비슷한 기능이다. 뭔가 하소연하거나 울분을 표하고 싶을 때 섬사람들은 이곳 관덕정광장으로 모여들곤 했다. 4·3사건의 진행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이 광장에서 발단이 됐고 이 광장에서 일단락됐다. 1947년 3월 1일 제주북국민학교로 모여드는 섬사람들 심정은 비장했다. 해방 1년 반을 보냈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생활은 나아진 게 없었다. 일제에 빌붙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속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재방문율은 높아졌지만 여행 만족도는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관광공사는 ‘2021년 제주특별자치도 방문관광객 실태조사’ 결과를 6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조사로 진행됐다. 제주관광공사는 지난해 3∼5월을 제외한 1년간 매월 500명씩 온라인 패널조사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지난해 제주를 방문한 내국인 관광객의 재방문율은 82.1%로 평균 3.28회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4회 이상 방문율도 2020년 27.8%에서 34.9%로 7.1%p 증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제주로 여행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고 되고 있다. 제주 여행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5점 만점 기준)는 2019년 4.09점, 2020년 3.96점, 2021년 3.88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평균 체류 일수는 평균 4.57일(4박 5일)이었다. 전년 4.2일보다 0.4일가량 체류 일수가 늘었다.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서 1인당 지출 경비도 2020년 50만6344원에서 지난해에는 60만626원으로 18.6% 증가했다. 내국인 관광객의 88%가량을 차
▲제주목사 임형수에게 사약 내린 문정왕후 시대 엿보기 다음은 1614년 이수광이 펴낸 ‘지봉유설(조선 백과사전의 효시)’에 실린 내용이다. 문정왕후 오라비이자 소윤의 실세인 윤원형이 임형수를 일파로 삼으려 마련한 술자리에서‘어서 드시지요. 부제학’하고 권하니, 두주불사형인 임형수는 ‘공께서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마다않고 마시리다.’라고 일갈한다. 이 사건으로 인종의 능역(陵役)을 맡고 있던 임형수는 제주목사로 좌천된다. 조선 27명의 왕 중 가장 짧게 재임한 인종은 문정왕후가 독살하였다 전해지는 불운한 왕이다. 다음은 임형수가 인종 임금에게 바치는 만시(輓詩)이다. ‘하늘이 글하는 이 몸을 없애려 하니 / 신이 어찌하여 이런 때를 만났는지 애답기 그지없습니다. / 차마 오늘의 눈물을 오래된 수건으로 적십니다. / 평생의 뜻을 본받아 보은을 갚고자 하나 / 울부짖을 뿐 죽지 못한 몸이 되었습니다. / 산릉의 준공을 보지 못한 채 / 남쪽 나라(제주)로 자리 옮김에 마음 아파할 뿐입니다.’ 연산군의 폭정으로 일어난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두 번째 비인 장경왕후 윤씨는 인종을 낳고 25세에 승하하고, 세 번째 비인 문정왕후 윤씨는 아들인 명종(재위 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