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를 개조한 호텔에서 사자, 악어, 하마 등 야생동물의 천국을 구경하세요.’ 아프리카의 최남단에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장 큰 크루거 국립공원에 1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열차를 개조한 호텔이 문을 열었다. 철교 위에 정지한 이 열차 호텔에서는 남아공 최대 규모의 야생동물 사파리를 즐길 수 있어 모험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여행객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 호텔의 이름은 ‘크루거 샬라티-철교 위의 열차 호텔’이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12월에 문을 연 크루거 샬라티 호텔은 열차 24칸을 연결해 만들었다. 열차 외에 별도의 객실 7개도 마련돼 있다. 열차는 크루거 국립공원 안을 흘러가는 사비 강 30m 위에 세워진 스쿠쿠자 철교에 서 있다. 크루거 샬랴티 호텔은 개장 이후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었다. 많은 관광객이 100년 된 열차 객실에 앉아 악어와 하마가 헤엄치는 사비 강을 내려다보는 호사를 즐기러 모여들었다. 하루 숙박비가 최저 60만 원이지만 빈방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각 객실의 정면과 욕실에는 통유리가 설치돼 있어 숙박 손님은 하루 종일 어디에서나 철교 아
1955년 4월 30일,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미국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는 프랑스 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칸 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로부터 초청을 받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이전에도 영화제에 참석하느라 칸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켈리는 칸에 머무는 동안 기대 이상의 만족을 느꼈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어느 여배우들보다 자신에 대한 팬들의 성원이 더 뜨거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로 사인 공세가 집중적으로 몰렸고, 신문사 사진기자들의 플래시도 여느 해보다 많이 터졌다. ■왕궁의 초대 켈리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모나코 왕궁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왕궁에서 열리는 사진 촬영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게 초청장의 내용이었다. 칸에서 모나코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켈리는 어차피 칸에 있어봐야 호텔 아니면 행사장 외에는 갈 데가 없다는 생각에 바람이나 쐬자며 모나코 왕궁의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왕궁에서는 국왕 레이니어 3세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촬영 행사를 마친 뒤 열린 만찬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켈리처럼 레이니어 국왕도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레이니어 국왕은 조용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는 단연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다. 그는 피렌체 지역의 작은 도시 빈치에서 태어났다. 다빈치라는 이름은 ‘빈치 출신’이라는 뜻이다. 그는 피렌체, 밀라노, 로마 등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걸작을 낳았다. 그렇다면 다빈치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미켈란젤로처럼 피렌체에 묻혔을까? 라파엘로처럼 로마에 안식처를 얻었을까? 뜻밖에 그의 무덤이 프랑스 파리 외곽 앙부아즈에 마련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고국을 떠난 이탈리아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였다. 그는 67년 동안 살면서 미학자이자 실용적 기술자로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의 실용적 작품 중 상당수는 오늘날에도 혁신적이고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랜 예술 활동에 매진해 왔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13~16년에는 로마 바티칸의 벨베데레 궁전과 교황 거주지인 ‘팔라티눔 아포스톨리쿰’ 등을 오가며 살았다. 메디치 가문 출신이었던 교황 레오 10세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달 금화 33듀캇을 급료로 받았다. 레오 10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주
경주에는 최근 어린이들을 데리고 가기에 좋은 새로운 관광 시설이 여러 개 생겼다. ‘미디어파크 정글의 법칙’과 ‘근대사박물관 추억의 달동네’도 그런 곳이다. 정글의 법칙은 빛과 영상을 이용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밀림에 추락하는 바람에 경험하는 모험을 주제로 하는 몰입형 영상 공간이다. 해변, 재규어의 숲, 신전, 월 아트 포토존, 심해, 플럭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영상을 모두 다 보는 데에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어른들의 눈높이에는 다소 못 미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매우 재미있는 추억을 심어줄 수 있다. 추억의 달동네(사진)는 언덕을 1960~70년대 분위기로 꾸며놓은 곳이다. 언덕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서 봉건 사회관, 학교길, 다방 거리, 7080 상가, 저자 거리, 군 막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다소 유치한 내용도 포함돼 있지만,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이 살던 과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한 번쯤 둘러볼 만한 곳이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두 나라 국경 도시 레 후쓰의 아흐비 호텔 6번 객실 한가운데로 두 나라 국경 지나가 이색 체험 원하는 관광객 몰려 인기 얻어 2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 유대인 탈출로로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지역에 레 후쓰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북서쪽으로 50km, 프랑스 리옹에서는 북동쪽으로 150km 떨어진 곳이다. 이 마을에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선이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특이한 건물이 있다. 아흐비라는 아주 작은 호텔이다. 왼쪽은 프랑스 땅, 오른쪽은 스위스 땅에 속한 호텔이다. 호텔 왼쪽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에는 프랑스 영토에 있는 것이지만, 오른쪽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면 스위스 영토로 간 것이 된다. 심지어 6번 객실의 경우 침대 왼쪽 부분은 프랑스 땅, 오른쪽 부분은 스위스 땅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색적인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들로 미어터지는 곳이다. ■새 국경이 갈라놓은 땅 호텔 아흐비는 어떻게 해서 두 나라 국경선 사이에 놓인 건물이 된 것일까? 여기에는 원래 건물 주인의 아주 발 빠른 ‘잔머리’가 숨어 있다. 레 후쓰는 1862년까지만 해도 프랑스 땅이었다. 상황은 19세기 들어 바뀌었다. 마을의 절반이 스위스 땅으로 변한 것이다. 18
언덕에서 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1762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스위스 접경지역 페르니에서 살고 있던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의 집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볼테르는 4년 전 평생 살았던 파리를 떠나 페르니에 이사를 가서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평범한 국민들이 기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고통 받는 현실을 목도한 그는 그들을 도와주기 위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손님이 찾아온 것이었다. 낯선 이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볼테르 선생님, 제발 칼라스 가족을 도와주십시오.” 볼테르는 손님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제게 차근하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시구려.” 손님이 차를 마시며 풀어낸 칼라스 가족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칼라스의 억울한 사형 1년 전의 일이었다. 프랑스 남부 툴루즈의 필라체 거리에 개신교도인 장 칼라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의 가족도 모두 개신교 신도였다. 칼라스 가족은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가족끼리 모인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매우 침울했다. 칼라스가 큰 아들 안토니오와 종교 문제 때문에 말다툼을 했기 때문이었다. 안토
기자 출신의 영국 작가 션 토마스가 <창세기 비밀>이라는 소설에서 ‘에덴동산’으로 묘사해 큰 화제를 모은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가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딛고 큰 인기를 얻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터키 문화관광부는 15일 “지난해 괴베클리테페 방문객은 56만 7453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괴베클리테페는 앙카라에서 동남쪽으로 872km 떨어진 외렌직 마을 근처에 위치한 고대 유적이다. 시리아 국경과는 불과 수십km 떨어져 있으며 쿠르드 족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괴베클리테페가 발견된 것은 1963년 이스탄불 대학교와 미국 시카고 대학교사 실시한 조사작업 때였다. 이곳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린 사람은 1995년부터 2014년 죽을 때까지 발굴 작업을 진행한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였다. 그는 이곳을 “세계 최초의 신전”이라고 봤다. 선사시대 종교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신전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뜻인 괴베클리 테페는 쿠르드 언어로는 지레 미라잔 또는 지라브레슈케로 불린다. 이 유적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거석으로 평가받는 거대한 T자형
■두로코토룸의 비극 파리에 사는 쥬느비에브는 샘물을 뜨러 가기 위해 여느 날처럼 동네 친구들과 함께 물동이를 지고 숲속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성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천사나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도 전해주었다. 그녀에게는 천사가 나타났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다 하는 등의 기적이 자주 일어났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서 화형을 시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모두 그녀의 깊은 신앙심을 다 이해하게 됐고, 그녀에게 마을 처녀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쥬느비에브와 친구들은 샘물을 뜨고 돌아오다 로마군 병사를 만났다. 그의 몸은 흙투성이였으며, 몹시 지친 듯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름다운 아가씨, 바쁘지 않으시면 제게 물을 한 잔 주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소?” 젊은 병사는 쥬느비에브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얼굴은 핼쑥한 게 며칠째 음식을 먹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쥬느비에브는 물동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물을 떠서 병사에게 가져다주었다. 병사는 물이 옆으로 새는 것도 모른 채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쥬느비에브는 이 낯선 병사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겨울철마다 해가 질 무렵이면 놀라운 장면이 연출된다. 찌르레기 수십만~수백만 마리가 포로 로마노, 베네치아 광장, 성 베드로 대성당 등의 하늘에 나타나 군무를 추는 모습이다. 마치 천지를 창조한 신의 위업을 찬양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로마에 여행을 간 사람은 고대 유적 사이에서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운 풍경에 눈을 뗄 줄 모른다. 찌르레기는 겨울 철새다. 매년 10월~이듬해 2월 사이에 수십만~수백만 마리가 북유럽에서 이탈리아를 찾아 날아온다. 추운 날씨를 피해 따뜻하게 겨울을 나기 위해서다. 지난해의 경우 500만 마리가 로마를 찾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도 300만~400만 마리 정도가 날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찌르레기는 수천 년 전 고대 로마 시대에도 겨울마다 로마에 날아왔다. 로마의 조점관들은 찌르레기가 어떻게 군무를 추는가를 보고 새점을 치기도 했다. 초기 기독교는 겨울에 찾아오는 찌르레기 무리를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찌르레기 무리는 낮에는 시골 지역에서 먹이활동을 하다 저녁 무렵이 되면 로마로 돌아온다. 정확하게 일몰 30분 전에 로마로 귀환해 곳곳에서 군무를 과시한 다음 나뭇가지에 앉아 밤을 보낸다. 로마 시내 기
‘유럽에서 1년간 디지털 노마드’ 어때요?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 디지털 노마드의 인기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디지털 노마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도입하는가 하면 디지털 노마드 마을을 만들기도 했다. 디지털 노마드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디지털 유목민이다. 정확한 개념은 컴퓨터 한 대만 가지고 국내의 오지와 외국에 나가서 근무하는 사람, 또는 근무 형태를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른다.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가 확산하고 있는데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장소에서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굳이 집에서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부는 최근 ‘스타트업 법’을 도입했다. 외국인이 취업비자를 받지 않고도 6~12개월 동안 스페인에서 살면서 일할 수 있게 하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발급하는 법이다. 이 법안이 목표로 하는 외국인은 비유럽 국가 출신이다. 디지털 노마드 거주 기간은 최고 두 번까지 연장할 수 있다. 즉 스페인에서 최장 3년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단 수입의 80% 이상을 스페인 밖에서 벌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스페인 외에 다른 유럽 국가들도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카리브 해의 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