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은 세인트 폴 대성당이다. 18세기 초반에 만들었으니 벌써 300년을 넘은 건물이다. 이 대성당은 특이하게도 ‘불’과 매우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불 때문에 무너졌고, 불 덕분에 더 새로운 건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런던 대화재 1666년 9월 2일 퍼딩 거리에 있는 한 빵가게에서 불이 났다.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고 주변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깜짝 놀란 런던 소방 당국은 발화지 주변 주택 수십 채를 미리 부숴 방화선을 설치함으로써 화재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당시 런던 시장이던 토머스 블러드워스 경에게 방화선 설치를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블러드워스 시장은 서둘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부숴야 하는 주택들 중에 당시 저명한 귀족, 의원 등의 주택이 다수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장이 주저하는 사이 화재는 인근의 목조 건물들을 타고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더욱 확산돼 런던 시내 쪽으로 향했다. 악명 높은 ‘런던 대화재’의 시작이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불이 처음 시작된 곳에서 수백m 떨어져 있었다. 목사와 신도들은 처음에는 빵집에서 불이
“이게 무슨 냄새지? 나무를 태우는 냄새가 나잖아! 뒤뜰에서 불을 때고 있나?” 1834년 10월 16일 오후 4시 무렵이었다. 신사 두 명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궁전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당시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영국 정부 청사 및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두 신사는 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궁전 곳곳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두 사람은 영국 해군이 1591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른 장면을 묘사한 ‘아마다 태피스트리’를 보고 싶어 상원 복도로 갔는데 무슨 영문인지 복도에는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연기가 너무 짙어 ‘아마다 태피스트리’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둘은 할 수 없이 궁전에서 나가면서 관리사무실에 신고를 했다. “상원 복도에서 심하게 타는 냄새가 나네요. 혹시 불이 났을지 모르니 한 번 살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화마에 휩싸인 궁전 대다수 직원들은 두 사람의 신고를 무시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해버렸다. 경비원 등 일부 직원만 남아 있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마침 웨스트민스터 궁전 입구에 앉아 있던 경비원 부부가 이상한 연기와 열기를 느꼈다. “여보, 연기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요? 몇 시간
계절의 변화를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라는 경남 산청 남사예담촌 주차장 바닥도 며칠째 이어진 가을비 탓에 촉촉하게 젖어 있다. 아예 앞을 못 볼 폭우는 아니어서 10여 년 만에 다시 찾아온 마을을 ‘가을비 우산 속’에 돌아다니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지리산 길목 옛 담장 예쁜 전통 한옥마을 백의종군 이순신 장군 유숙한 ‘이사재’ 300년 향나무가 효심 지켜본 ‘사효재’ 좁은 골목 구부러진 ‘부부 회화나무’ 압권 황홀한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간 착각 ■최씨고가에서 이사재까지 남사예담촌은 지리산 입구로 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은 전통 한옥마을이다. 예담이라는 이름은 ‘옛 담’이라는 뜻이다. 옛 담으로 이뤄진 골목이 예쁘고 정갈한 마을이어서 이렇게 이름이 붙었다. 주차장 입구 화단에 보라색 맥문동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지난달 경북 성주까지 가서도 보지 못한 맥문동을 뜻밖에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검은 기와와 갈색 진흙 담벼락 아래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는 예쁜 꽃은 가을비가 반갑고 즐거운 모양이다. 주차장 왼쪽으로 담쟁이넝쿨이 담벼락을 뒤덮은 골목을 따라 걸어간다. 입을 한껏 벌리고 아주 다정하게
옛날 영국 런던의 템스 강에 소니(Thorney)라는 섬이 있었다. 섬의 이름은 ‘가시’를 의미하는 ‘Thorn’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섬에 가시덤불이 많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지금 이 섬은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에는 웨스터민스터 궁전과 웨스터민스터 사원이 서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정식 명칭은 ‘웨스터민스터 성 베드로 연합교회’다. 수많은 영국 왕과 여왕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렀고 결혼식을 올렸고 묻히기도 했다. 섬이 없어지고 궁전, 사원이 생기게 된 전설과 역사를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알아보자. ■로마에서 온 선교사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전설에 따르면 7세기 초의 어느 날이었다. 아주 화창한 날씨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있었다. 하늘에는 대서양에서 몰려온 뭉게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여름이라도 하루는 구름이 잔뜩 끼어 싸늘하고, 다음날은 하루 종일 화창해 무더워지는 등 변덕이 심한 평소 런던과는 다른 날씨였다. 런던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템스 강에 그야말로 바람에 떠다니는 낙엽 같은 작은 배 한 척이 나타났다. 배에는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더러워진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교황 대 그레
“꽤~애~액! 꽤~애~액!” 다른 곳에서는 듣기 어려운 기적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잠시 후 검은색 증기기관차가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느릿느릿 철길을 따라 들어온다. 1960년대 풍경을 옮겨놓은 것 같은 플랫폼에서는 승객들이 환한 표정으로 기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전남 곡성의 ‘섬진강 기차마을’이다. 증기기관차를 타고 세월 속으로 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곳이다.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 섬진강 기차마을에 들어가려면 일제 강점기에 건설한 구 곡성역사를 지나야 한다. 구 곡성역사는 1933년에 만들어졌다. 이곳은 일제에 수탈당한 물자를 나르고, 전쟁이나 강제노역에 끌려간 한국 젊은이들을 실어 나른 아픈 역사를 간직한 역이다. 1999년 복선화 때문에 전라선이 이설되고 새 곡성역사가 생겨 구 곡성역사는 문을 닫았다. 곡성군은 구역사 일대를 사들여 섬진강기차마을로 바꾸었다. 2005년에는 증기기관차가 생겼다. 구 곡성역사는 2004년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고풍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태극기 휘날리며’, ‘경성 스캔들’ 등 여러 영화와 TV 드라마 촬영장으로 이용됐다. 기차라는 특이한 주제를 담아 아기자기하게 마을을 꾸민 덕에 2015년과 2019
리스본에 가면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교통수단이 있다. 리스본을 고풍스럽고 이색적인 도시로 꾸미는 데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하는 트램이다. 버스, 지하철, 트램, 택시, 푸니쿨라 등 리스본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매우 뛰어나다. 도시 중심부에서부터 구석구석까지 아주 치밀하게 연결하다. 하지만 이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대중교통은 역시 트램이다. 리스본에서 트램이 처음 운행한 것은 1873년 11월 17일이었다. 올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벌써 148년이나 된 셈이다. 처음에는 말이 객차를 끌었다. 1901년 들어 첫 전기 트램이 상업운행을 시작했다. 1년 만에 리스본의 모든 트램은 전기 객차로 바뀌었다. 언덕으로 이뤄진 리스본의 골목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트램은 성당, 기념물과 함께 리스본의 훌륭한 문화적 유산이다. 그래서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트램에 몰려든다. 트램을 타고 다니며 리스본을 돌아다니는 것은 가장 아름답고 재미있는 여행의 추억이 된다. 전성기에는 리스본에 27개 트램 노선이 있었다고 하다. 지금은 5개의 트램 노선에서 객차 58대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중 40대는 아주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객차를 자랑한다. 다섯 개의 노선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선
포르투갈 리스본에 가면 가장 높은 지역에 성 하나가 보인다. 리스본 여행의 필수 방문지인 상조르주 성이다. 성 주변에는 해자가 있고, 해자 위에는 작은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 뒤로는 문이 보인다. 바로 마르팅 모니즈 문이다. 마르팅 모니즈라는 이름은 리스본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포르투갈 여행의 또 다른 목적지인 신트라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호시우 역에 가다 보면 지하쳘 마르팅 모니즈 역을 지나게 된다. 이 역은 마르팅 모니즈 광장에 있다. 오늘은 마르팅 모니즈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다. ■십자군 원정대 “교황 성하께서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을 몰아내더라도 성스러운 십자군 성전으로 인정해주신다고 하셨소. 그리고 이곳에서는 예루살렘과 달리 여러분들이 얻을 수 있는 현실적 이득도 있지 않소?” 1147년 6월 16일의 일이었다. 포르투갈 초대국왕인 알폰소 헨리케 1세는 포르투에서 십자군 원정에 나선 다국적 연합군을 만나고 있었다. 이들은 잉글랜드, 프랑스, 스코틀랜드, 독일 등에서 모인 병사들로 구성된 군대였다. 여러 나라 왕이 보낸 대규모 군대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모인 사람들로 이뤄져 있었다. 이들이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것은 교황 에우제니오 3세의 요청 때
무더위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밤에는 제법 싸늘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코로나19는 물론 폭염과 싸우느라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 위해 한가로운 시골마을과 푸른 버들나무 숲 그리고 시원한 호수 드라이브 길을 하루 만에 다녀왔다. 경북 성주 한 바퀴 여행이다. ■한개마을 한눈에 보기에도 시원하면서 해가 환하게 잘 비쳐 밝은 마을이다. 막힌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맑은 공기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마냥 졸졸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마을 뒤에는 영취산이 버티고 앉아 온갖 신비한 기운을 흘려보내고, 앞으로는 두 하천이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풍수를 잘 알지 못하는 초보가 봐도 그야말로 명당 자리가 아닐 수 없다.15세기 중엽 진주목사를 지낸 성산이씨 이우가 일족을 데리고 이곳에 들어와 산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마을이 번성할 때에는 100여 채의 가옥이 있었지만 지금은 60여 채로 감소했다. 마을 집들은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조선시대의 지붕, 대청마루, 부엌, 툇마루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응와종택, 진사댁, 한주종택, 하회댁, 교리댁, 도동댁, 극와고택 등 10채는 경북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한옥마을치고는 특이하게도 곳곳에 각양각색의 꽃들이
해마다 6월 12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리스본 출신 성인(聖人)인 산투 안토니우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그의 탄생일에 펼쳐지는 ‘정어리 축제’다. 이 기간에 리스본 여행을 가면 카페, 식당 등 거리 곳곳에서 정어리를 구워 팔거나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독교 성인의 탄생일과 정어리는 무슨 관계가 있기에 정어리 축제를 여는 것일까? ■산투 안토니우의 고행 산투 안토니우는 리스본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페르난두 마르틴스 데 불로에스였다. 집안이 제법 부자였기 때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산투 안토니우는 당시 수도였던 코임브라의 산타크루즈 수도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사제 서품을 받은 뒤에는 수도원에서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을 맡았다. 그곳에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자주 들렀다. 그는 수도사들의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종교 생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1220년 모로코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프란체스코 수도사 5명이 참수형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왕 아퐁소 2세는 협상 끝에 가까스로 몸값을 치르고 수도사들의 시신을 고국으로 송환해 산타크루즈 수도원에 묻었다. 주검으로 돌아온 수도사들을 본 산투 안토니
아직 오전인데도 무더위는 찌는 듯하다. 두 시간을 달린 자동차도 괴로운 모양이다. 전남 구례 천은사 주차장에 도착하자 긴 한숨부터 내쉰다. 그나마 해를 가려주는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은 게 천만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무심한 기계라 하더라도 기절해 쓰러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천은사 입구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을 마시고 사찰과 둘레길 산책에 나선다. ■천은사 더위에 지친 나그네가 측은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왼쪽으로 기울어진 소나무들이 천은사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짙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 나그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지리산 천은사’ 현판이 붙은 정문이 그 뒤로 나타난다. 짙은 녹색으로 덮인 지리산과 푸른 하늘이 아직 두 눈에 남은 고속도로의 열기를 시원하게 식혀준다. 천은사는 신라 시대이던 828년에 창건한 ‘천년 사찰’이다. 처음에는 ‘병든 사람을 샘물로 치료했다’는 전설 덕분에 감로사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조선시대이던 1679년 ‘샘이 숨었다’는 뜻인 천은사로 바뀌었다. 이곳은 풍광이 아름다워 2018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천은사로 들어가려면 이색적인 사진명소로 유명한 수홍루를 지나야 한다. 아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