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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성주 한 바퀴’ 골목 예쁜 한옥마을 하늘이 좁은 왕버들

조선시대 가옥 60여 채 있는 한개마을
골목엔 돌담·흙담과 어울린 꽃들 만개
하천 범람 막으려고 조성한 성밖숲
수령 300~500년 안팎 왕버들 52그루
느긋한 드라이브 코스 성주호·성주댐

무더위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밤에는 제법 싸늘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코로나19는 물론 폭염과 싸우느라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 위해 한가로운 시골마을과 푸른 버들나무 숲 그리고 시원한 호수 드라이브 길을 하루 만에 다녀왔다. 경북 성주 한 바퀴 여행이다.

 

 

 

■한개마을

 

한눈에 보기에도 시원하면서 해가 환하게 잘 비쳐 밝은 마을이다. 막힌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맑은 공기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마냥 졸졸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마을 뒤에는 영취산이 버티고 앉아 온갖 신비한 기운을 흘려보내고, 앞으로는 두 하천이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풍수를 잘 알지 못하는 초보가 봐도 그야말로 명당 자리가 아닐 수 없다.15세기 중엽 진주목사를 지낸 성산이씨 이우가 일족을 데리고 이곳에 들어와 산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마을이 번성할 때에는 100여 채의 가옥이 있었지만 지금은 60여 채로 감소했다. 마을 집들은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조선시대의 지붕, 대청마루, 부엌, 툇마루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응와종택, 진사댁, 한주종택, 하회댁, 교리댁, 도동댁, 극와고택 등 10채는 경북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한옥마을치고는 특이하게도 곳곳에 각양각색의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백일홍, 능소화에서부터 네리네와 마치 하얀 꽃 같은 설악초까지 마을을 찾아온 손님들의 눈길을 끈다. 여기에 제철을 맞은 배롱꽃까지 만개해 신비롭고 황홀한 무릉도원의 느낌마저 준다. 어지간한 저택에는 배롱나무가 한 그루 이상 자라는 걸 봐서는 이 마을 사람들은 배롱꽃을 매우 좋아하는 모양이다.

 

 

한개마을을 둘러보는 다른 재미는 때로는 돌담, 때로는 흙담으로 가려진 아기자기한 골목길이다. 한 골목에 들어가자 돌담 위에 주황색 능소화가 피어 있다. 돌담 맞은편에서는 기와가 얹힌 흙담이 밝은 얼굴로 꽃을 구경하고 있다.

 

아직 제대로 익지 않아 시퍼런 감이 달린 감나무 가지가 담장 너머로 머리를 내밀고 있고, 커다란 고목이 허리를 숙인 채 무성한 잎으로 하늘을 가린 흙담 길도 있다. 다른 골목길에서는 호박 줄기가 담장을 넘어 골목길을 차지한 채 지나는 행인을 일일이 살펴본다. 집 밖으로 무단가출한 호박이 부러웠던지 도동댁 담장 너머로 고개를 삐죽 내민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배롱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골목도 나타난다.

 

 

■성밖숲

 

성주읍 시내의 주차장 맞은편 제방 너머로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그 너머에는 작은 개울 같은 하천인 이천이 흐르고 있다.

 

잔디밭 일대는 강변 공원이다. 공원 입구에 잎만으로 하늘을 다 덮을 것 같은 고목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나무 주변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아 보일 정도다.

 

이곳은 성주 군민들에게 한가롭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장해주는 지역 휴식처인 성밖숲이다. 조선시대에 하천 범람을 막으려고 만든 인공 숲이다. 여기에는 수령 300~500년 정도인 왕버들 52그루가 자라고 있다.

 

입구에 서 있는 두 고목 중에서 오른쪽 나무가 수령 500년 안팎인 왕버들 1호다. 정말 오래 산 고목의 나뭇가지가 지나치게 처져서 부러지는 일이 없도록 양쪽에 버팀대를 세워두었다.

 

 

고목 주변에는 활짝 피면 보라색 꽃이 아름다운 맥문동이 골고루 심어져 있다. 아주 키가 큰 상태는 아니지만 앙증맞은 맥문동 꽃이 고목의 그늘 아래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다. 맥문동은 이 나무 아래에만 심어진 것은 아니다. 제철일 때에는 성밖숲 전체에서 마치 동화 같은 분위기를 내뿜는 보라색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번 방문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느긋하게 걸어도 20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성밖숲은 왕버들 고목과 맥문동 그리고 산책길로 이뤄져 있다. 곳곳에 벤치가 마련돼 잠시 앉아 쉴 수도 있다. 특히 이천을 바라보는 쪽 벤치에 앉아 졸졸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저절로 잠이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성주호

 

성밖숲에서 20분 정도 달리면 성주댐과 성주호가 나온다. 3530㏊에 이르는 넓은 호수를 끼고 도는 7㎞ 도로는 느긋하게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제격인 곳이다.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달리면서 차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 성주댐 입구는 물론 곳곳에서 내려 성주호를 시원하고 상쾌하게 한눈에 담아볼 수도 있다.

 

 

시속 40㎞ 이하로 느긋하게 달리는데 뒤에서 비키라며 경적을 울리는 차는 하나도 없다. 잠시 차를 길가에 세우고 호숫가로 다가간다. 물 냄새가 풀 냄새에 섞여 축축한 공기 사이로 날아다니고 있다. 상큼한 풀 비린내에 몸과 마음은 금세 맑아지고 가벼워진다.

 

성주호로 이어지는 대가천에서는 여름철에 텐트 캠핑이나 오토 캠핑 등과 함께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여러 가족이 대가천을 내려다보는 시원한 장소에 텐트를 치고 코로나19에 지친 심신을 달래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