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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침대 왼쪽은 프랑스 땅, 오른쪽은 스위스 땅”

두 나라 국경 도시 레 후쓰의 아흐비 호텔

6번 객실 한가운데로 두 나라 국경 지나가

이색 체험 원하는 관광객 몰려 인기 얻어

2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 유대인 탈출로로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지역에 레 후쓰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북서쪽으로 50km, 프랑스 리옹에서는 북동쪽으로 150km 떨어진 곳이다. 이 마을에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선이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특이한 건물이 있다. 아흐비라는 아주 작은 호텔이다. 왼쪽은 프랑스 땅, 오른쪽은 스위스 땅에 속한 호텔이다.

 

호텔 왼쪽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에는 프랑스 영토에 있는 것이지만, 오른쪽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면 스위스 영토로 간 것이 된다. 심지어 6번 객실의 경우 침대 왼쪽 부분은 프랑스 땅, 오른쪽 부분은 스위스 땅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색적인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들로 미어터지는 곳이다.

 

 

■새 국경이 갈라놓은 땅

 

호텔 아흐비는 어떻게 해서 두 나라 국경선 사이에 놓인 건물이 된 것일까? 여기에는 원래 건물 주인의 아주 발 빠른 ‘잔머리’가 숨어 있다. 레 후쓰는 1862년까지만 해도 프랑스 땅이었다. 상황은 19세기 들어 바뀌었다. 마을의 절반이 스위스 땅으로 변한 것이다. 1863년 프랑스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댑 계곡의 땅을 차지하고 싶어 했다. 댑 계곡은 당시에는 스위스 땅이었다. 프랑스는 계곡 일부를 내준다면 레 후쓰 마을 일부를 스위스에 넘겨주겠다고 제안했다. 스위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나라가 국경선 협상을 논의하고 있을 때 퐁튜스라는 프랑스인이 레 후쓰에 땅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는 별 가치가 없는 빈 땅이었다. 그는 프랑스와 스위스가 국경선을 새로 그으면 레 후쓰가 두 쪽으로 갈라질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 국경선이 그어질 지역에 이미 들어서 있는 건물은 함부로 철거할 수 없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는 아무 쓸모가 없는 땅의 가치를 높일 기회가 찾아온 거라고 믿었다.

 

 

퐁튜스는 두 나라 국회가 새 국경선을 확정하는 조약을 비준하기 전에 레 후쓰에 있는 땅에 3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그의 예상대로 두 나라의 국경은 레 후쓰 한가운데, 특히 퐁튜스가 가진 건물 한가운데를 지나게 됐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두 나라 국회가 1863년 국경선 협약을 비준했을 때 퐁튜스는 지붕 공사를 겨우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지붕이 덮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그의 건물은 허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퐁튜스의 건물 가운데 3분의 2는 프랑스 영토, 나머지 3분의 1은 스위스 영토가 됐다.

 

퐁튜스는 건물만 짓고 앉아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건물의 스위스 쪽에는 식료품점을, 프랑스쪽에는 술집을 차렸다. 두 나라 사이의 조세법 차이를 이용해 세금 혜택을 최대한 누리려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국경선이 건물 한가운데를 지나간다는 점을 이용해 탈세와 밀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퐁튜스는 건물을 이용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의 후손은 그렇지 못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그들은 건물을 팔아야 했다. 건물을 산 사람은 쥘 장 아흐비였다. 그는 1921년 건물을 호텔로 바꾸었다.

 

 

■프랑스 유대인의 탈출로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지만 영세중립국이었던 스위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독립을 유지했다. 호텔 아흐비의 프랑스 부분은 독일의 간섭에 시달렸지만, 스위스 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독일군은 호텔의 프랑스 쪽에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스위스 쪽으로는 절대 건너갈 수 없었다. 호텔 2층 오른쪽 부분은 스위스 영토였기 때문에 독일군 출입금지 구역이었다.

 

아흐비는 이런 점을 이용해 유대인 수백 명을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빼돌렸다. 한 스위스 잡지는 ‘호텔 아르베즈의 위층은 탈출한 유대인 가족들과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은신처였다’고 보도했다.

이 호텔은 1950~60년대에 벌어진 알제리 전쟁을 끝내기 위한 프랑스와 알제리의 협상 장소로도 이용됐다. 알제리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전사들은 호텔의 스위스 쪽 방에 묵으면서 프랑스 협상 대표들을 만났다. 2020년 코로나 때문에 국경이 봉쇄됐을 때에는 프랑스와 스위스에 흩어져 사는 가족이 이 호텔에서 재회하기도 했다.

 

 

호텔 아흐비에서는 두 나라 영토에 걸쳐 있는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방을 예약할 때 프론트에 6번과 12번 객실을 달라고 하면 된다. 6번 객실의 경우 두 나라 국경선은 침대 가운데를 가로지른다. 사진을 보면 한쪽에는 프랑스 국기가 새겨진 커버를 덮은 베개, 다른 쪽에는 스위스 국기가 새겨진 커버를 덮은 베개가 놓여 있다. 12번 객실의 경우 국경선이 화장실 가운데를 지나간다. 스위스 땅에서 이를 닦은 뒤 프랑스 땅에 뱉을 수 있다는 뜻이다. 두 객실에서 숙박한 많은 관광객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려 큰 인기를 얻었다. 또 호텔의 식당과 부엌, 그리고 일부 계단과 통로도 국경선으로 갈라진다고 한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