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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인생의 방황기’ 온전한 나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20)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작가로 아내로 치열하게 살아온 리즈, 정작 자신에겐 소홀했음 느껴
이탈리아·인도·인도네시아 여정 통해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돼

 

“하나님, 계세요? 드디어 만났군요. 지금까지 한번도 이렇게 기도 드린 적이 없어서 죄송해요. 그동안 당신이 주신 축복에 감사드려요. 근데 너무 힘들어요. 남편과 완전히 딴 배를 탄 느낌이에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남들은 우리기 쇼윈도우 부부인 줄 모를 거예요. 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말씀만 해주시면 뭐든 다 따를게요. 이런 내 자신이 너무나 싫고 용서가 안 돼요.”

 서른 한 살의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뉴욕의 성공한 작가다. 1년 전에는 맨해튼에 멋진 집까지 장만했다. 사람들은 통상 그녀를 리즈라 부른다.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고 흐트러짐이 없다. 뭔가에 꽂히면 끝장을 봐야 하고, 뭐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철저하게 몰입하고 집착이 강하다. 주변 모든 이들은 리즈를 칭찬하며 부러워하지만 정작 본인은 힘들다. 이런 완벽주의를 유지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힘든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속으론 늘 스트레스에 절어 산다. 그러나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결정적인 원인은 남편 스티븐 때문이다. 스물세 살에 좋아서 결혼했으니 이제 8년째 함께 살아왔지만 남편은 지금껏 한 번도 경제 활동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사업을 벌이려다 여러 번 말아먹는 등 완전히 리즈의 경제력에만 의존해 살아왔다. 아이 같은 남편을 오래 뒷바라지해오는 데에 지쳤고, 이제 와서 자기계발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조르는 데에는 완전히 질렸다.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이어갈 자신이 없어졌다. 결국 리즈는 이혼을 결심한다. 물론 남편이 쉽게 합의해 줄 리가 없었다. 자신이 모은 재산 대부분을 남편에게 주는 조건으로라도 이혼을 성사시키려 소송을 시작한 리즈는 집을 나와 친구 집에 잠시 얹혀산다.

이혼 소송의 고통으로 방황하던 리즈는 자신이 대본을 쓴 연극 공연장에 갔다가 주연 배우 데이빗과 필이 통해 한동안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 관계 또한 오래 가지 못하고 끝난다. 상대에 집착하고 헌신적인 그녀와 달리 데이빗은 부담과 구속을 싫어하고 매사 자기중심적이었다. 어딘가에 기대고 싶었던 리즈로선 역시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연 이은 실패로 깊은 수렁에 삐진 리즈에겐 돌파구가 필요했다. 20대 초반에 결혼해 지금껏 아내로서, 작가로서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을 돌보는 데에는 너무나 소홀했음을 뼈저리게 느낀 리즈는 일단 멀리 떠나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동안 머릿속에만 그려왔던 선망의 여행지를 찾아 1년간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충실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머무는 것보다 힘든 건 떠나는 거다. 누구에게도 상처 안 주고 조용히 떠나자. 무조건 멀리멀리 가는 거다.’
 

 

2010년 개봉된 미국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는 현존하는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1969~)의 자전적 에세이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2006년 같은 제목으로 발간돼 전 세계 1000만 부 가까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이 책은 작가 본인이자 주인공 리즈의 진정한 자아 찾기를 담은 힐링 에세이다. 영화에선 작가보다 두 살 많은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 리즈 역을 맡아, 결혼과 사랑에 실패한 한 여성이 여행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자신이 진정 원했던 삶이 어떤 거였는지 의문을 갖던 리즈가 일단은 루틴한 일상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보자고 결심한 후 맨 처음 찾은 곳은 이탈리아다. 로마에 도착해선 테베레 강가의 산탄젤로 성 테라스에 올라 일몰 즈음의 로마 시내와 바티칸 시국 전경을 바라보며 인생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진다. 숙소를 계약한 후 느긋이 시내를 돌아다니다 나보나 광장의 피우미 분수 옆 벤치에 앉아 맛있게 젤라토를 먹는 표정에는 행복이 넘쳐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제목은 리즈가 거쳐가는 여행지 3곳과 연결된다. 이탈리아에선 욕망이 원하는 대로 열심히 먹고, 인도에선 기도하는 일상,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선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동선으로 여행이 이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이탈리아 여정은 다양한 음식들이 화면 가득 실리는 먹방 여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가 흘러나오는 장면 역시 그렇다. 야외 카페에 앉은 리즈가 조수미의 아리아를 들으며 파스타를 먹는 눈빛과 표정은 황홀경 그 자체다. 친구와 함께 나폴리까지 찾아가 다이어트에 연연하지 말자며 피자를 먹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한동안 잃고 있었던 삶의 의욕이 식욕과 함께 되살아난 것이다. 하루하루 일상에 활력을 찾아가며 비로소 리즈는 삶 자체를 다시 사랑하게 되어간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영묘(陵墓) 아우구스테움을 둘러보던 리즈는 이 오래된 고성을 통하여 소중한 깨달음도 얻는다. ‘우린 변화를 두려워해. 현상 유지 한답시고 끔찍하게 망가지지. 근데 오랜 세월 혼란을 겪은 이곳은 달라. 한때 화재와 노략질로 파괴됐지만 이곳은 다시 세워졌어, 내 인생이 혼란스러웠던 게 아니라 집착이 문제란 걸 알았어. 때론 무너져도 괜찮아. 무너지면 다시 세울 수 있잖아.’

 


두 번째 여행지 인도 북부로 날아간 리즈는 뉴델리 남서쪽에 인접한 도시 파타우디의 한 아쉬람(수도원)에 머문다. 이탈리아에선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고 즐기며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면 인도 여행에선 기도와 명상으로 이어지는 수련생활을 통하여 영성을 키워가는 기회를 얻게 된다. 특히 텍사스에서 온 중년 남자 리처드와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리즈는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해왔던 그동안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리즈의 독백이 이를 말해준다. ‘인도 여행은 한 줄로 요약된다. 내 안에 있는 신을 발견하는 거다. 신은 완벽한 인간을 기대하지 않는다. 신은 내 안에 계신 거다.’
 

 

인도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쪽으로 눈이 트였다면 세 번째 여행지 인도네시아에선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 발리에 살며 이혼의 상처를 치유하던 브라질 남자 펠리프를 만나 동병상련의 공감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리즈는 펠리프의 구애를 거부하고 발리를 떠나려 한다. 모처럼 일궈낸 내적 균형을 새로운 사랑 때문에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번 사랑 역시 실패로 끝나 더 큰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다. 그러나 ‘때론 사랑하다가 균형을 잃기도 하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아갈 수 있다’는 주술사 케투의 조언으로 그녀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다시 펠리프에게로 달려간 리즈는 ‘건너가다’라는 뜻의 이태리어 ‘아트라베르시아모(attraversiamo)’를 외치며 그와 함께 배에 오른다. 그리곤 펠리프가 원했던 사랑의 섬을 향하여 바다를 ‘건너며’ 영화는 끝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에 등장하는 광대의 줄타기와 ‘밧줄’의 비유가 이때의 리즈의 마음과 잘 연결이 된다. ‘인간이란 짐승과 초인을 연결해 주는 밧줄, 심연 위에 걸려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뒤돌아보는 것도 위험하고, 벌벌 떨거나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면서, 건너다 추락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편으로 건너가는 자들이기에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ps) 미국 CNN은 지난 2016년 7월,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두 번째 이혼을 발표했다. 그녀 또한 자신의 페이스북에 “많은 여러분들께서 ‘펠리프’라고 알고 있는 그 남자와 헤어졌어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여행의 마지막 부분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던 바로 그 남자죠”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12년 간 정말 멋진 저의 배우자였고,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냈어요.’라고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이 결별은 그녀에게 또 하나의 실패나 상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건너감’이요, 삶의 일부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