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극의 파리 트롬쇠 새벽 첫 버스로 로포텐제도의 땅끝 마을 오(Å)에서 출발하여 400km의 눈길을 8시간이상 달렸다. 노르웨이 북단 북위 69도에 위치한 인구 7만 명이 조금 넘는 작고 아담한 항구도시인 트롬쇠는 북극점에서 350㎞ 떨어져 있으며, 오래전부터 북극으로 가는 관문으로 여겨졌다. 트롬쇠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방에 눈이 덮여 있는데도 또 내리고 있다. 걸어서 숙소로 향하는 동안 주위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민박집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은 더 아름다웠다. 눈 덮인 세상 속 아기자기한 집들,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오전9시가 넘어서야 해가 뜨고 오후 3시면 해가 지는 북반구 특유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트롬쇠에 머무르는 하루하루가 자연스레 행복으로 채워졌다. 트롬쇠는 눈 내린 풍경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북극에 가려면 바늘구멍 보다 좁은 극지방 전문탐사 팀에 합류해야 하지만 트롬쇠는 북극여행이 시작되는 곳으로 북극탐험을 기다리는 여행자를 설레이게 한다. 1900년대 초 인류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노르웨이의 탐험가 아문센을 비롯해 많은 탐험가들이 이곳을 북극 탐험의 전진기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현재도 유럽을
깜냥도 안되는게! 애초에 천년고도 경주를 논한다는 것은 시건방진 노릇임에 틀림없다. 진기한 이야기 보따리와 그득한 보물들이 사통발달 펼쳐져 있는 경주를 어줍쟎은 서생의 손끝으로 논한다는 것은 분명 어불성설이다. 염치없이 때뭍은 역사책을 뒤적인다. 경주는 기원전 57년부터 삼국 통일후 935년까지 약992년 간 지속되었던 천년고도(古都)이다. ◆벽없는 박물관,경주 2021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CNN트래블즈가 선정한 세계25대 여행지, '역사문화' 카테고리에 "경주"가 뽑혔다. 여행잡지 론니플랜잇(Lonely Planet)이 선정한 2022년 세계 Top10 여행지에도 "경주"가 이름을 올렸다. 2021년 TIME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명소 중 한곳으로 "경주"가 또 이름을 올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지금은 꿈꾸고, 나중에 가봐야 할 곳 (Dream now, go later)" 으로 경주를 꼽으며 "벽없는 박물관(The museum without walls)"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약200여 개의 문화재가 즐비하고, 사찰, 궁궐, 불교, 석탑, 암각화, 고분, 호수, 강 그리고 사시사철 꽃들의 향연, 눈길 닿는 모든곳이 생경하고 탄성이다. 특히, TIM
파리(Paris), 혼자 속삭이듯 되뇌면 아주 친근하게 잔잔한 파동으로 울려 퍼지는 도시의 이름이 있다. 내겐 파리가 그렇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 장 발장, 쌩텍쥐베리를 지나 녹음 테이프에 담긴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까뜨린느 드뇌브의 쉘브르의 우산, 1980년대 해적판으로 본 이케다 리요코의 창작만화 베르사유의 장미,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김은숙의 드라마 파리의 연인, 오드리 토투의 아멜리에, 그뿐인가, 저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화가들, 그렇게 파리의 모든 것이 내 젊은 날의 한 축(軸)이었던 까닭이다. 별로 친하진 않았지만 늘 나를 꿰뚫듯 보던 한 친구가 말했다. 어른이 되면 넌 파리의 어느 골목을 걷고 있을 거 같아. 그때 그 말이 각인되었던 걸까. 성년이 되고도 한참 지난 어느 해 가을 나는 파리에서 한동안 체류하게 되었다. 물론 업무상 간 것이었지만 '파리의 어느 골목을 걷고 있을' 것 같다던 그 말에 채무감 비슷한 게 있던 나는 여름휴가도 쓰지 않고 모아서 최대한 파리에서의 시간을 길게 잡았다. 그해 가을 나는 '파리에서의 한 철'을 시인 랭보인 양 미(美)를 무릎에 앉혀 축제처럼 보냈다. ◆파리에서의 한 철 우선 도심 리옹역
레이네에서 탄 버스가 하얀 세상을 달려가니 로포텐의 땅 끝 마을 '오'(Å)에 데려다 주었다. 버스 종점에 내리니 도로가 끝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듯이 끊긴 도로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노르웨이해와 그 위로 솟은 바위섬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TV와 교과서, 사진에서 보던 피오르 풍경 그 자체이다. 산 중턱까지 내려앉은 낮은 구름과 함께 보는 풍경이 마치 신선들의 세계에 온 것 같다. ◆ 유럽대륙의 길이 오(Å)마을에서 바다로 잠긴다 아름다운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의 땅 끝 마을이라고 불리는 서쪽 끝에 작은 마을 Å가 있다. Å는'오'라고 읽는다. 딱 한 글자의 이름 '오', 마을이름이 오(A)인 것은 노르웨이 알파벳의 가장 마지막 글자 Å에 서 따온 것이란다. 그러니 유럽 대륙이 바다로 잠기는 섬의 끝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던 건 대륙의 끝이라는 지형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매혹적이었던 건 단 한 글자 '오'라는 이름이다. '오'는 끝이자 시작인 셈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곳이다. 마을 진입로에 재미있는 "Å"표지판이 있다. 이 표지판을 몇 차례 도난당했다는 사실은
1851년 9월 12일,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렇게 일기에 썼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지평선의 산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 천상의 장막인 창공을 통해 내려다보는 땅. 산맥은 대지의 이마 위로 솟은 천연의 사원이다. 그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고양되고 영묘해질 것이다. 대기를 잔뜩 머금은 창공과 대지를 사이에 두고 대기를 통해 대지를 보고 싶다.' 이 한 구절 때문에 나는 지평선에 대한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춘기의 다른 이름이었겠지만 나는 10대 후반이었고 1980년대로 막 접어드는 격동의 시절이었다. 연약한 정신은 그 갈망에 너무 쉽게 마취되어 '마적의 딸이나 되어 만주벌이나 두만강가를 말을 타고 달리고 싶다.'는 일기까지 쓸 정도였다. 그 열병은 서른을 훌쩍 넘겨 사막과 황야를 떠돌며 자연스럽게 나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엔 무언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 실체를 나는 키르키스탄 이식쿨호수 앞에서 깨달았다. 백두산 천지(天池)에 가질 못했던 것이다. ◆지안(集安), 잃어버린 왕국의 흔적들 2019년 여름, 대구의 한 단체에서 '백두산, 용정 독립운동 유적지 5일 기행'을 진행했고 흔쾌히 나는 참가했다. 8월 8일,
상주(尙州)에 왠 폭포? 진짜다. 제대로 된 폭포가 용틀임을 세차게 비튼다. 속리산 자락 천황봉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상주 화북땅, 장각계곡에 이르러 제법 그럴싸한 폭포수를 흩뿌린다. 높이가 6m 불과 하다지만, 폼새가 호쾌하다. 위쪽으로는 '금란정'이란 정자가 꽈리를 틀었다. 2002년 MBC '태양인 이제마'의 촬영지 이기도 하다. 바로 '장각폭포'다. 사진각을 잘 맞추면 그 폭포를 손바닥 위에 탁 올릴수도 있다. 자전거는 이곳의 시원한 물줄기 정기로 온몸을 감싸고 페달질을 시작한다. 상주땅의 본궤를 향해서 내달음을 시작한다. 잠시달려, 맥문동 솔밭 야영장을 스친다. 8월쯤 맥문동이 만개할 무렵 솔숲과 어떠한 조화를 이룰지 궁금증을 간직하고 용유계곡길을 따라 호사를 누린다. 이윽고, 슬쩍 오르막 초입에 이르자 호흡이 가빠온다. 백두대간의 갈령(葛領,445m)를 넘을 참이다. 상주땅 화북,화남을 잇는 49번 옛적 국도길이다. 아래로는 터널이 시원스레 질주하고 자전거는 삐질대고 땀을 쥐어짠다. 계곡의 물줄기가 그리워질 무렵, 남장사에 들어서는 초입에 다다른다. 노음산(728m) 좌,우로 상주의 사찰, 4장사가 펼쳐져 있다. 남장사,북장사,갑장사,승장사등 네개다
◆ 여름에서 겨울옷을 갈아입은 신비스런 레이네 마을 여름 풍광에 반해 눈 속을 뚫고 찾아간 레이네(Reine)마을을 여행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아름다운 겨울 레이네를 조금이라도 빨리 마주하고 싶어 레크네스에서 첫 버스를 타고 로포텐제도의 가장 서쪽에 있는 모스케네스섬으로 들어왔다. 레이네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니 하얗게 옷을 갈아입은 레이네의 풍경이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다. 동화처럼 자리한 레이네 마을을 보는 순간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내 여행 이야기의 메인화면이다. 다시 만나니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핑 돈다. 피오르 정면의 레이네브링겐 바위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과 빨간 목조 가옥인 로르부가 그림처럼 드리워진다. 거대한 빙산과 그를 비추는 물결 그리고 노르웨이만의 예쁜 집들이 하나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레이네는 300여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아주 작은 어촌이지만 깍아지른 절벽과 뾰족뾰족한 산봉우리가 일품이다. 눈이 산봉우리에 쌓여있는 풍광이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림같이 아름답다. 그렇게 눈 속에서 마을을 감싼 대자연을 마주한 레이네 풍경 속으로 한참동안을 서성이며 빠져들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알록달록한 색깔의 집들이 옹
며칠 전 성탄절이 막 지난 12월 26일,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한 요양소에서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선종(善終)'이 속보로 떴다. 90세, 차별과 전쟁의 시기를 보낸 인류에게 두 세기에 걸쳐 화해와 용서, 웃음과 무지개 세상을 선물하고 떠난 한 위대한 인물의 소천이었다. '우리에게 자유를! 우리 모두에게! 흑인도 백인도 함께!(We will be free! All of us! Black and white together!)' 전 생애를 통해 혼신을 다해 그가 던진 메시지는 남아공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전 인류에 던지는 예언에 다름 아니었다. 넬슨 만델라와 함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정책)를 펼친 남아공의 백인정권에 결연히 맞섰던 투투 대주교는 그 정권이 종식되었을 때 '용서없이 미래는 없다.'는 호소로 전 세계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국가의 양심, 화해의 정신으로 존경받아 왔다. 팬데믹 환란의 2021년을 보내는 이 시간, 굳건한 정신의 걸음으로 나쁜 역사의 한가운데를 걸어간 한 거인의 발자취가 그래서 더욱 강력한 여운을 남긴다. 그 와중에 1488년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喜望峯, Cape of Good Hope)을 발견해내지 않았으면 어떠했을
러시아 사람들의 유명한 농담이 있다. '우리도 중국처럼 나라가 쬐금했으면 좋겠어.' 이 농담은 내겐 실로 문화충격이었다. 실크로드 탐사를 위해 여름 한철을 사막과 황야 그리고 거대한 성벽을 가진 고대도시 등 드넓은 중국대륙을 헤매던 것이 생각나서다. 하지만 이르쿠츠크, 바이칼을 건너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오면서 그 농담이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에 사는 그들의 삶에 녹아있는 실제 생활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때는 6월 하순이었고 네바강 하구 삼각주 늪지대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서는 한창 영화 촬영을 하고 있었다. 중세 군사와 주민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해자(垓字) 쪽으로 몰려와 성문을 열어 달라 소리친다. 어느 시절, 어떤 사건의 장면일까. 표트르대제 등극 이후일 테니 1756년 프로이센과의 7년전쟁 장면일까. 요새 안에는 구(舊)소련시절 구입했던 러시아사 책표지에서 수없이 봤고 도시 곳곳에서 보게 될 표트르대제의 청동기마상이 위풍도 당당하게 서 있다. ◆불멸의 차르 표트르대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다 왕위 계승과 권력 투쟁 암투를 치열하게 치른 모계 몽골선조의 혈통을 이어받은 표트르는 차르의 신분을 숨기고 미하일로프란 가명으로 유럽 사절
여명이 봉창에 깃들어 희뿌옇게 어리는 방안으로 뽀얀 입김이 서린다. 아랫목으로부터 따뜻한 온기가 스며드는 것은 아버지께서 새벽 군불을 지피신 때문일 것이다. '딱딱' 삭정이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어험'하는 헛기침이 마당으로부터 인다. 새벽녘 소일이 얼추 끝났다는 신호치고는 의외로 밝다. 궁금증을 동반한 손이 마당으로 난 장지문을 여는데 세상이 온통 하얀색이다. 밤새 백설기가루를 듬뿍듬뿍 뿌린 천사들이 다녀간 모양이다. 빗질하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새로운 세상을 맞은 듯 바둑이가 덩실덩실 뛴다. 겨울의 낭만은 눈. 지난해는 한겨울이 다가도록 대구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벌써 몇 년째 눈다운 눈이 내리질 않고 있다. 어쭙잖은 시상이라도 떠올랐을까? 간밤 눈 소식을 접한 무주 덕유산으로 눈꽃여행을 떠난다. ◆덕유산 산행의 추억 소백산맥의 중심부에 솟아있는 덕유산은 해발 1,614m로 향적봉이 주봉이다. 향적봉과 남덕유산을 잇는 능선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능선을 따라 적상산·두문산·칠봉·삿갓봉·무룡산 등 높은 산들이 하나의 맥을 이루고 있다. 북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원당천은 계곡을 따라 흘러 무주구천동을 지나면서 절경을 이룬 뒤 금강의 너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