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티재, 동산테마임도,하늘정원 그리고 제2석굴암~한밤마을~창평지~화산산성~인각사~군위호~화본역~리틀포레스트 촬영지~위천 자전거길 99Km '삼국사기' '삼국유사'-우리나라 고대사를 설파한 양대 역사서이다. 김부식이 기술한 '삼국사기'는 교과서 마냥, 국가가 주도한 정사(正史)이고, 보각국사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는 설화, 전해온 이야기, 불교등을 엮은 야사(野史)에 가깝다. 9살에 출가후, 70세가 훌쩍넘어 95세의 노모를 돌보기 위해 일연스님은 군위땅으로 내려왔다. 인각사에 머물며 약 5년에 걸쳐 마침내 1281년,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그리곤 4년뒤 84세로 입적했다. 경산에서 출생하여 비슬산 대견사(大見寺)등에서 정진을 하고 말년에 인각사로 하안(下安)했으니 보각국사와 경상북도의 땅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그리하여, 군위군은 고로면의 명칭을 과감히 "삼국유사면"으로 바꾸고 군위땅이 삼국유사의 본류임을 명명하였다. ◆팔공산 원효 구도의 길,그리고 제2석굴암 그 찐한 역사의 숨결을 자전거로 샅샅이 후벼볼 작정이다. 그런데, 정작 팔공산으로 둘러싸인 군위는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별이 다섯개, 최 난이도 코스중 하나이다. 하지만, 짜릿한 보상이 뒤 따
◆폼페이, 즐거운 나날들의 기억 화산재가 묻은 듯 폼페이의 희미한 도판에는 첨필 끝을 아랫입술에 댄 여인들이 몇 있다. 연인에게 보낼 시를 쓰려는 것이었을까. 빛나는 눈망울과 왼손에 든 서판을 묶은 리본이 아직도 선명하다. 디오니소스와 세멜레의 입문의식으로 글을 읽는 아이를 자애롭게 지켜보는 어머니와 하인을 대동하고 걸인에게 동전 한 닢을 건네는 지체 높은 귀부인, 화장하는 여인, 빵가게 안주인, 점을 치는 노파, 폼페이에 가기 전 내가 본 도판 속 AD 1세기 고전 세계 여인들은 모두 그렇게 아름답고 당당했다. 뜨거운 여름 한낮, 첫 대면한 폼페이는 불그스름한 잿빛을 띤 황폐함 그 자체였다. 바실리카 앞 푸르스름한 포석(鋪石)이 깔린 도로의 수레바퀴 자국, 노예가 모는 이륜마차가 낸 것일 터였다. 도로 옆엔 파묻힌 도시에서 발굴해 낸 지붕 없는 집들이 무심하게 햇빛을 받으며 늘어서 있다. 단단한 벽돌 담장의 빵공장 마당에는 응회암으로 만든 곡식을 빻는 맷돌과 돌확들이 방금 사용한 것처럼 반짝인다. 뒤쪽 저 가마에서는 2천년 전 8등분을 한 캄파니아식 둥근 빵을 구웠으리라. 해시계와 물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으로 폼페이 시민들은 출근을 하고 목욕탕엘 가거나 원형
◆ 지구의 심장 북극에 서다!!!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얼음 숲을 지나 하얀 얼음사막의 경이로운 북극해에 들어섰다. 누군가 당신은 북극을 꿈꾼 적이 있나요? 이렇게 물어오는 것 같았다. 신비가 느껴지는 대자연 앞에 서면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사실에 눈뜨게 된다. 북극점은 북극해 한가운데 있다. 북극점 도달여정은 길고도 험난하다. 북극은 북위 66도33분 이상을 북극권, 산림생장한계선, 해빙남하한계선, 영구동토선 등 다양하게 부른다. 북극해는 북극점을 중심으로 대부분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평균 수심은 1200m에 달한다. 항해 6일째, 작은 변화들이 나타난다. 파란 수평선이 사라지고 하얀 얼음 지평선이 점점 다가온다. 우두두둑 쩌~억, 쿵쾅! 쿵광! 머리를 부딪고 싸우는 화난 산양처럼 배는 속력을 내 얼음을 가르고 또 타고 올라간다. 선실에서 느끼는 충격이 대단하다. 모든 생명체가 얼음의 지배를 받는 북극해는 하얀 얼음사막이다. 얼음으로 뒤덮인 세상의 끝 북극. 수십만년 동안 내린 눈은 단단한 바다위의 빙원이 되어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하단다. 극저온으로 수분이 공기 중으로 증발되지 않는 하얀 얼음 사막이다. 모든 방향의 시선에 하얀 바다만 들어온다.
샤넬은 가방, 의류, 향수, 선글라스, 주얼리, 시계 등을 제작 · 판매하는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로,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1982년에 샤넬은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를 영입하고, 현재는 비르지니 비아르에 의해 새롭게 재창조되어 가고 있다. 전 세계 여성들의 워너비 브랜드 샤넬에 대하여 알아보자. ◆ 샤넬의 어린 시절과 성공의 첫발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은 1883년 8월 19일, 프랑스 작은 상업도시 소뮈르 지역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행상을 다니며 가족들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어머니는 병에 걸러 그녀가 어릴 때 사망했다. 다섯 남매 중 차녀로 태어난 샤넬은 불우하고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12살 어린 나이에 수녀들이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자라며 엄격한 교육과 바느질하는 법을 배웠다. 샤넬은 18세에 수녀원을 나와 스무 살까지 노트르담 종교학교 기숙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1902년 학교에서 소개해준 생트마리 라는 이름의 작은 상점에서 물건을 팔고 기성복을 수선하는 재봉사로 일을 하며 저녁에는 물랭의 카페에서
직지사~자산동 벽화마을~부항댐~무흘구곡~모티길~수도암~청암사 77Km 옛적, 한양으로 향하던 세갈래 고개길! 바람도 쉬어가던 추풍령(秋風嶺), 새들도 숨죽여 건너던 조령(鳥嶺), 아흔아홉 굽이길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던 죽령(竹嶺)! 그 세 고개중 가장 으뜸길인 추풍령! 지금이야, 싱싱달리는 신작로로 변모했지만, 그 옛날 등짐매고 청운의 꿈을 안고 길을 재촉하던 고갯길에는 굽이굽이 눈물샘이 아로 새겨져 있다. 추평령 고개를 품은 김천(金泉)은 사통발달 대한민국 교통과 소통의 중심지로 탈바꿈 하였다. 영남, 충청, 호남 어디나 발길 닿는대로 재깍재깍 휘휘 내지를수 있는 국토의 중심터가 되었다. 오늘의 자전거는 그 배꼽터 위에서 신명나게 바퀴질을 해 볼 심산이다. 신라 최초의 사찰, 선산의 도리사를 창건한 '아도(阿道)화상'은 내친김에 황악산 자락에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유래가 있는 직지사를 418년 창건하였다. 산사(山寺)는 오랜 역사의 풍파속에 임진왜란 당시, 직지사에서 출가하여, 직지사 주지도 역임하고 승병장으로 이름을 드높인 '사명대사'의 기백을 담아 오늘날에 이른다. 자전거는 직지사 언저리를 휘 내젓고, 사명각에 담긴 사명대사의 패기를
◆탈라스, 고선지의 흔적을 찾아서 751년 7월 고구려 유민 출신의 장군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군은 탈라스에서 압바스군과 마주쳤다. 두 군대는 탈라스 강가에서 대치했다. 고선지의 병력은 2만, 압바스 이슬람 연합군의 수는 20만이었다. 고선지는 이미 서역을 세 차례 정벌해 성공한 명장이었다. 하지만 당 조정이 석국(오늘날의 타슈켄트) 왕을 죽인 큰 실수로 카르룩((葛邏祿, Karluk), 발한나(拔汗那)를 비롯한 서역 민족들이 전쟁 중 후방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고선지는 사면초가에 빠졌고 대참패했다. 역사학자들은 '이 역사적인 날이 중앙아시아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카자흐스탄에서 마치 시골 기차역 개찰을 하듯 국경을 넘어 도착한 키르기스스탄 탈라스언덕은 풀이 우거져 있었다. 지금도 땅을 파면 화살촉 등속의 무기류가 발견된다고 하니 탈라스전투의 치열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탈라스강이 처연했을 그 전쟁터의 비감을 몸소 표현하듯 굽이굽이 흘러간다. 755년 고선지는 당 현종에 의해 좌천되었다가 안녹산의 난에서 토벌군을 이끌고 수도인 장안을 지켰다. 그러나 전투 중 모함을 받아 진중에서 참형되고 만다. '신당서'에 따르면 고선지는 용맹한
◆ 쉐빙선 몬로비아호 몸은 '다윗', 힘은 '골리앗' 부두에 들어서자 극지탐험을 위해 입항한 쇄빙선 몬로비아호(Monrovia)가 보인다. 몬로비아 호는 길이105m, 폭18m, 순항속도13노트(Knot), 승무원72명으로 114명의 탐험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극해에는 아무 배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빙과 충돌했을 때 이겨낼 수 있고, 유빙에 갇혔을 때도 빠져나올 수 있는 아이스 등급(Ice Class)이어야 가능하다. 망망대해 파도를 넘고, 해빙(海氷)지역을 강력한 엔진 파워로 뚫고 나아가는 몬로비아호는 약 7500톤급으로 덩치는 작은데 기능은 최고란다. 선장은 "몬로비아 호는 얼음을 깨면서 항해하는 쇄빙선이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몬로비아호의 앞쪽 선박두께는 약40mm 정도의 강철로 덮여있다. 선장의 자격은 아이스 내비게이션으로 얼음의 성질, 특성 등을 파악하는 기술이고, 쇄빙선 운항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란다. 많은 승무원들은 조디악(zodiac)을 운전하는 탐험스텝을 비롯해 응급환자가 발생하는 경우에 대비한 의사, 동식물학자와 지리학자도 있다. 공식적인 명칭을 여행팀이라고 하지 않고, 탐험대(expedition team)라고 부르는
대가야는 신라 진흥왕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꽤나 강한 국가였다. 흩어진 6가야국 중 맹주의 역할을 했고, 신라와 백제에 맞서 약 500년 동안 철기문화를 꽃피워 왔다. 36명이나 생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왕과 함께 묻을만큼 그 위세가 대단했다. 제 아무리 최고 권력자인 왕 앞이라고 하지만, 멀쩡하게 살아서 무덤속으로 생매장 당했던 이들의 심정들은 어떠했을까? 고령군 대가야 박물관의 둥근 아치는 고분을 본떴다. 그 지산동(池山洞) 고분군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최초의 순장(殉葬)고분이었던 44호 고분은 화려했던 대가야의 흔적을 잘 웅변한다. 그랬다. 지척에 있어서 늘상 가벼이 여겨졌지만 고령땅은 볼거리, 즐길거리, 얘기거리로 똘똘 뭉쳐진 곳이다. 우륵은 또 왠말? '우륵'은 고령에서 태어나 오늘날 가야금의 전신인 12현금을 만들었고, 또 연주곡 12곡을 지었다. 훗날, 신라로 귀화하여 신라음악을 꽃피운 '악성(樂聖)'으로 불려졌다. 남서쪽으로는 합천, 성주터와 맞닿아 있고, 문수산(484m), 사월봉(380m)을 위시하여 최고봉 미숭산(757m)까지 그리고 덕곡저수지와 중화저수지등 풍요로운 자연의 조화가 고령땅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두바퀴 자전거를 타고 고령땅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는 고속열차로 4시간 20분이 걸린다. 에든버러로 가기 위해 런던 킹스크로스역에서 고속열차를 탔을 때 후두둑 빗방울이 듯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잉글랜드 날씨답게 10분쯤 지나자 맑은 하늘이 드러났고 차창 밖으로 보라빛 섞인 옅은 주홍 노을이 끝없는 풀밭 위로 펼쳐졌다. 가끔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양치기를 둘러싸고 양 떼가 지나갔고, 드문드문 하얀 페인트칠이 된 농가들이 풀숲에서 불쑥 나타났다. 객실엔 두런두런 낮게 대화하는 승객들의 '영국식 영어'와 가벼운 식사를 위해 부스럭거리는 샌드위치 포장지 뜯는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맬 깁슨이 주연한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 윌리엄 윌레스의 일대기 브레이브 하트 그리고 미리 좀 읽고 온 월터 스콧을 생각하며 스코틀랜드 역사를 되짚어 본다. ◆ 메리1세의 생생한 역사가 살아있는 곳 이번 일정에 맥베스의 코더성과 월레스의 스털링성은 빠져 있다. 엘리자베스1세와 5촌 사이인 스코틀랜드의 메리1세를 생각하는 것이 옳겠다. 숙명의 라이벌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엘리자베스와 메리는 각각 튜더와 스튜어트왕가의 여왕이 되었다. 프랑스의 왕비였던 아름다운 메리가 남편 프
오슬로를 출발한 비행기가 롱이어비엔(Longyearbyen)공항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 20분인데 활주로 끝의 바다위로 해가 떠 있다. 백야였다. 4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4개월은 해가지지 않고, 10월 말부터 4개월은 해가 뜨지 않는다. 트랩을 내려서니 한여름 7월의 스발바르(Svalbard)제도는 눈을 덮어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낯선 산들이 눈앞에 닿는다. 노르웨이어로 '차가운 가장자리'라는 뜻의 스발바르로 불리는 이유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공항과 마을을 연결하는 유일의 대중교통 수단인 공항셔틀버스 3대가 승객들을 싣는다. 예약된 숙소인 게스트하우스는 피오르 골짜기 끝에 있었다. 1960년까지 광부 기숙사로 쓰던 건물을 호스텔로 개조했다. 자정이 지났는데도 커튼 틈으로 숙소를 찾아 곰처럼 어슬렁거리는 여행자 커플이 보인다. 순록 두 마리도 덩달아 어슬렁거리고 있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기묘한 빛 속에서 잠이 오지 않는다. ◆ 북극의 심장 롱이어비엔 롱이어비엔은 북극한계선보다 1,300㎞ 이상 고위도인 북위 78도에 위치한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행정중심지로 지구상 최북단 마을로 유명하다. 인구는 약 2,100명으로, 대부분이 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