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한제국 이원 황사손(皇嗣孫) 초청 특강을 진행한 적이 있다. 강연이나 공연 기획 등 여러 일을 해오면서 고관대작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을 만난 일은 많았지만 황족을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분은 고종황제의 증손자로 이구 황태손(皇太孫)의 서거 후 조선과 대한제국의 법통을 이어 조선시대의 국왕, 대한제국의 황제가 행한 종묘대제, 사직대제, 환구대제, 조경단대제에서 집제하는 등의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강연을 진행하면서 나는 비원(秘苑) 옆 동네에 살던 옛 기억과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성(城)' 첫 구절을 계속 떠올렸다. '늦은 저녁에야 k는 도착했다. 마을은 깊은 눈에 파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산은 조금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성은 안개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따라서 큰 성이 있는 길을 알리는 희미한 등불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k는 큰길에서 마을로 통하는 나무다리 위에 서서 오랫동안 희멀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k는 결국 성에 가지를 못 했고, 나는 k에 대한 개인적 일종의 오마주로 창덕궁만은 끝까지 들러질 않았다. 그 대신 프라하로 갔다. ◆ 프란츠 카프카의 궤적을 따라서 프라하에는 11세기부터 18세기에 건축된 다
계획하고, 정기적금처럼 매달 일정금액을 불입하여 추진해온 제주도 여행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처음 시작할 때는 갓 입대한 훈련병의 제대날짜처럼 있을까 싶었는데 코앞으로 다가들자 순식간이다. 카메라장비를 점검하고 가지고 갈 수 있는 배터리의 수를 확인하자 예약한 항공권이 발매된다. 간단한 절차를 거쳐 면세구역을 기웃거리다가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륙과 동시에 날개 끝에 둥실 떠서 뒤따르는 뭉게구름이 지금의 내 마음인양 여겨진다. 호사다마랄까? 일기정보는 2박3일 내내 흐린 날이 예상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 제주도는 2007년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섬 중앙으로 돛단배의 돛처럼 남한에서 가장 높다는 한라산(해발 1,950m)이 우뚝 솟아있다. 한라산은 높이에 따라 기온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다양한 식물이 분포해 있다. 저지대 해안가에는 마을이 발달해 있고, 50m~200m에는 따뜻한 지역에 사는 식물이 자라고, 200m~600m에는 초원 지대가 형성되어 목축업이 발달, 600m~1,400m에는 활엽수림대가, 1,400m~1,600m에는 침엽수림
스웨덴의 유명한 국립공원 중 하나로 이어지는 작은 북극마을 아비스코(Abisko)로 향하기 위해 키루나역에서 노르웨이 나르빅(Narvik)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아비스코는 키루나에서 북서쪽으로 95km 떨어져 있으며, 인구가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호수와 트래킹으로 유명하다. 아비스코에는 2개의 아비스코 와스트라역(Abisko Ostra station)과 아비스코 투리스테이션(Abisko Turistation)역이 있다. 두 역간의 거리는 약 2km정도이며, 겨울에는 오후3시가 되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열차승무원에게 확인하고 내려야 한다. 키루나에서 기차를 탄 후 눈 속의 플랫폼 아비스코 와스트라역에 내렸다. ◆ 눈 속의 작은 북극마을 아비스코 아비스코역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호숫가에 비친 오로라 사진으로 유명하다. 플랫폼에서 본 아비스코 마운틴스테이션의 눈 덮인 산과 얼어붙은 호숫가의 풍경은 아비스코 최고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비스코 와스트라역은 마을이 가깝게 있어서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으며, 마트가 근처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살 수 있다. 첫 눈에 눈 덮인 높은 산과 아래쪽에 호수가 얼어있는 풍경은 굉장했다. 스웨
어느 해 초가을, 큰 프로젝트가 하나 끝날 무렵이 되자 허탈감이랄까, 온 몸에서 힘이 죄다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긴장되었다.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사소한 일까지 챙겨야 했던 입장이라 그 끈을 놓아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나는 달콤한 사탕과 핫초콜릿을 엄청나게 먹어댔다. 힘을 내어 재차 몰입해 그 일의 마무리를 제대로 해야 했던 것이다. 마침내 정산까지 끝내고 나자 저절로 맥이 탁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몸에서 흰 연기 한 가닥이 빠져나와 공중으로 흩어지는 그런 환영을 보는 듯했다. 아, 잘츠부르크로 가자. 단발머리 중학생일 때부터 가고 싶었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그 곳, 나는 여행가방을 꾸리고 비행기를 탔다. ◆잘츠부르크(Salzburg), 모차르트, 카라얀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 비엔나 중앙역에서 열차를 타고 2시간 30분 남짓 달려 잘츠부르크 역에 닿았다. '잘츠부르크는 알프스산 북부와 잘차흐강의 평평한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알프스의 경치와 화려한 건축술의 독특한 조합으로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의 주요관광지이며, 국제회의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새벽 4시. 빗소리에 잠을 깬다. 청송 가는 길이 험하고 멀다. 유난히, 청송은 비와 얽힌 일진이 사납다. 그래도, 빗속을 뚫고 달리기로 결정했다. 다들 비옷을 단단히 챙긴다. 대한민국의 오지 BYC(봉화,영양, 청송)의 마지막 땅, "청송"으로 떠난다. 지난 2016년 12월 26일! 청송은 쌍전벽해의 땅이 되었다. 충남 당진~상주~청송~영덕을 잇는 고속도로가 뚫린것이다. 연이어, 2017년 5월! 청송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천혜의 자연 자원에 덧붙여 편리한 접근성이 길을 열고, 유네스코가 그 명성에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었다. 바야흐로 청송은 더이상 오지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언제든 맘껏 즐기기만 하면 되는 "땡큐! 청송!"으로 거듭났다. ◆ 청송 강구 가는길 90Km, 천지갑산(천지갑산)에서 시작 천지갑산~백석탄계곡~신성계곡~자작나무숲~얼음골~옥계/하옥/상옥/산성계곡~강구항 해파랑 공원 청송의 자전거 길은 정말 여럿이다. 온통 산과 계곡이 지천에 널려 있어서 어디를 달려도 경탄이 저절로 나온다. 특정 몇 곳만을 단정 할수가 없다. 이번의 경북 23선 자전거팀은 거창하게, 안동의 끝자락인 길안면에서
어렸을 때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내 뒤에 앉은 같은 반 친구는 예방주사를 맞을 때마다 심하게 울던 아이였는데, 그 친구가 하루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 집에 놀러 갈래. 친구네 집 툇마루에 내리쬐는 햇살은 따뜻했고 햇고구마의 따뜻한 냄새와 촉감이 아직도 아련한데 어쩌다 길을 잃어버렸는지에 대한 기억은 도통 나지 않는다. 그렇게 길을 잃고 무서워 울면서 계속 좁은 골목을 걷고 또 걸었던 기억만 난다. 그날 습하고 그늘진 퇴락한 동네의 길은 여러 갈래로 계속 갈라졌고 모퉁이를 돌아서면 또 낯선 곳이 나타나곤 했다. 마치 나쁜 꿈 같았다. 다행히 이웃 아주머니를 만나 무사히 귀가했지만 그 이후부터 나는 감기나 몸살이 들면 늘 그 꿈을 꾸었다. ◆이스탄불, 동서 인류문명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옥외박물관 이스탄불에서의 첫 밤, 그 꿈을 꾸고 말았다. 전날 해질녘 도시에 들어섰을 때 본 그 비감스러운 폐허 탓일 것이다. 도로가에 무심하게 방치된 무너진 성벽과 거대한 기둥 그리고 물때가 잔뜩 낀 오래된 집들은 비잔티움이나 콘스탄티노플 또는 트라키아시대에 축조된 것이니 웬만하면 천 년 이상은 넘은 것들이라 했다. 내 꿈의 근간이 읽혔다. 이
내가 최초로 혼자 떠난 여행지는 파리였다. 1개월 동안 열 명의 작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일이라 비교적 여유가 있어 나는 파리 곳곳의 크고 작은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가을이었다.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부르델, 들라크루아, 피카소, 달리, 로댕. 그리고 빅토르 위고, 로맹가리, 르블랑… 길을 걷다가 지치면 노천카페에서 코냑이 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유유자적 파리의 소음도 즐겼다. 아, 보들레르와 수틴의 묘지를 찾아가 꽃을 놓기도 했다. 쓸쓸했지만 달콤삽싸름한 가을이었다. 그 이후 여유만 생기면 그렇게 한 도시를 정해 그 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혼자 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이 일에만 매달려 헛헛해진 내면을 채우는 방법이라 여기며 지난 십여 년 동안 꽤 그렇게 다녔던 것 같다. 물론 한 번 다녀온 곳을 계속 간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같은 이름을 가진 여러 도시의 미술관을 다니게도 되었다. 구겐하임미술관이다. 뉴욕, 베니스, 빌바오, 세 도시의 미술관은 닮았지만 또 완전히 달랐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눈 내리는 맨하탄 5번가 뮤지엄 마일(Museum Mile)의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작품이었다. 솔로몬 구겐하임이 프랭
2003년 12월 31일, 나는 인도행 비행기를 탔다. 해외 첫 여행이었다. 지금도 친구들이 놀라워하는데 첫 여행이 인도라니,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어쨌든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해 나는 국내 유수 문화재단의 기금을 꽤 많이 받아 첫 시집 『비열한 거리』를 내고 잔뜩 남은 돈으로 '시인들의 성지(聖地)'인 인도를 순례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기어코, 나는 순례의 묘(妙)를 깨치지 못한 채 슬픔만 잔뜩 안고 돌아오고 말았다. 변명 같지만 그 여행 이후 나는 지금까지 변변한 시 한 편을 제대로 못 쓰고 있다. ◆릭샤와 템포(Rickshaw & Tempo) 그 슬픔의 시작은 어쩌면 온 시야가 부옇게 흐릴 정도로 안개 자욱한 뉴델리 인디라간디국제공항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안개라고, 누군가는 스모그라고 했지만 인도는 물론 파키스탄, 네팔 그리고 티벳까지 이미 다녀온 동행자는 매연이라고 했다. 삼륜차나 자전거를 개조한 릭샤와 템포(Rickshaw & Tempo)가 그 주범인데 덜 정제된 기름을 쓰는지라 엄청난 매연을 뿜어낸다는 것이다. 그 이튿날부터 우리 일행은 작금의 코로나사태를 예견한 듯 매일 스카프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싸매고 다녔다. 그 매연
◆ 북극의 얼음왕국 유카스야르비 키루나에서 아침 첫 버스를 타고 동화 속 얼음 성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얼음호텔이 있는 유카스야르비(Jukkasjarvi)로 향했다. 눈발이 날리고 길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인 눈 위로 버스는 거침없이 달린다. 해가 짧은 북극극야의 어둠이 지배할 것만 같았던 그 곳은 여행자가 접하기 어려운 눈 세상이 전하는 아름다운 풍경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두려움 없이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을 위해 북극의 오로라만이 전부가 아니라며 뽐내듯 핑크와 블루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며 펼쳐진 하늘. 땅에는 상고대와 눈꽃들로 뒤덮인 나무들과 작은 마을은 마치 겨울요정들의 세상처럼 흰 눈 속 온기 가득한 풍광이다. 수북이 눈을 덮어쓴 나무들과 세상이 하얀 풍광만으로도 북극에서 불과 200km 떨어진 얼음호텔이 그려지는 듯하다. 스웨덴의 북단 유카스야르비에서 상상 속의 눈꽃 마을을 만났다. 아! 저기 이글루가 보인다. 하얀 눈이 덮인 넓은 들판에는 아치형의 대형 이글루들이 환상의 성처럼 늘어서 있다. 얼음호텔이다. 온통 눈으로 덮인 얼음호텔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이글루다. 눈의 나라 스웨덴 북부지방 작은 마을인 유카스야르비는 만남의 장소
2011년 여름, 나는 카라쿰사막을 건넜다. 섭씨 54도, 버스 밖 온 사위가 간유리처럼 흐릿하게 이글거렸다. 지평선이 보이는 아득한 사막 여기저기 사금파리처럼 빛이 번쩍였다. 필시 죽어서 흰 뼈로 남은 짐승의 흔적일 터. 어느 시인은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사막의 저 모래무덤을 파면 호박(瑚珀)이나 고여있는 옛 노래 몇 소절을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시인의 그 땅은 누란(樓蘭)이라는 옛 이름, 사막의 여인은 지는 노을에 검은 거울을 품으며 죽어도 지아비의 머리칼에 드러눕는다고 했던가. 검은 사막의 저녁노을이 짙노랗게 드리울 무렵 부하라에 도착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2,500년 된 고도(古都) 부하라의 밤은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웠다. 당도한 호텔에 짐을 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지막한 도시가 통째로 하나의 보석상자였다. 밖으로 나와 라비하우즈로 가는 길에는 그림 속에서 나온 듯한 아름다운 여성과 소녀들이 지나다녔다. 내가 우즈베키스탄 샤마르칸트에 간다고 했을 때 남자친구, 여자친구 할 것 없이 '밭 매는 이효리, 말 모는 손예진, 시장에서 푸성귀 파는 손태영'을 볼 수 있을 거라 입을 모았었다. 사실이었다. 특히 레기스탄광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