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강릉 25.3℃
  • 맑음서울 19.9℃
  • 맑음인천 18.7℃
  • 맑음원주 21.3℃
  • 맑음수원 18.9℃
  • 맑음청주 22.7℃
  • 맑음대전 21.1℃
  • 맑음포항 24.5℃
  • 맑음대구 22.2℃
  • 맑음전주 19.9℃
  • 맑음울산 21.8℃
  • 맑음창원 18.5℃
  • 맑음광주 22.4℃
  • 구름조금부산 18.3℃
  • 맑음순천 14.3℃
  • 맑음홍성(예) 18.8℃
  • 구름조금제주 19.7℃
  • 맑음김해시 19.6℃
  • 맑음구미 19.4℃
기상청 제공
메뉴

(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유럽 건축박물관의 도시. “프라하”

 

2017년 대한제국 이원 황사손(皇嗣孫) 초청 특강을 진행한 적이 있다. 강연이나 공연 기획 등 여러 일을 해오면서 고관대작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을 만난 일은 많았지만 황족을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분은 고종황제의 증손자로 이구 황태손(皇太孫)의 서거 후 조선과 대한제국의 법통을 이어 조선시대의 국왕, 대한제국의 황제가 행한 종묘대제, 사직대제, 환구대제, 조경단대제에서 집제하는 등의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강연을 진행하면서 나는 비원(秘苑) 옆 동네에 살던 옛 기억과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성(城)' 첫 구절을 계속 떠올렸다.

 

'늦은 저녁에야 k는 도착했다. 마을은 깊은 눈에 파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산은 조금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성은 안개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따라서 큰 성이 있는 길을 알리는 희미한 등불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k는 큰길에서 마을로 통하는 나무다리 위에 서서 오랫동안 희멀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k는 결국 성에 가지를 못 했고, 나는 k에 대한 개인적 일종의 오마주로 창덕궁만은 끝까지 들러질 않았다. 그 대신 프라하로 갔다.

 

 

◆ 프란츠 카프카의 궤적을 따라서


프라하에는 11세기부터 18세기에 건축된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있다. 하라드차니성, 성 비투스성당, 카를교 등 대부분 세계문화유산인 많은 건축물은 거의 신성 로마제국 카를 4세 황제 시대에 축조된 것들이다. 그야말로 고딕양식에서부터 바로크, 로마네스크, 르네상스양식 등 유럽건축박물관의 도시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프라하의 봄' '벨벳혁명' 등으로 민주화, 저항의 상징이 된 구(舊) 체코슬로바키아가 아이러니하게도 초토화된 폴란드 등 인접국가보다 건축물이 온전한 것은 2차세계대전 때 나치와 맞붙지 않고 일찍 항복해서 직접적인 전쟁과 폭격을 피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의 국제 정세와 국민성( 슈베이키즘, 일종의 반전주의)의 반영으로 재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프라하에는 중세뿐만 아니라 근대 신고전주의나 아르누보의 건축물과 해체주의의 거장 프랭크 게리의 춤추는 빌딩까지 아름다운 건축물로 가득하다. 프라하는 말라 스뜨라나, 스따레 므녜스또(구시가), 노베 므녜스또(신시가), 요제포브, 흐라드차니를 포함한 1구역에 거의 모든 볼거리가 모여 있다. 카프카는 프라하 토박이였다.

 

나는 우선 카프카의 궤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괴테, 헤세와 더불어 독문학계 3대 문학가로 꼽히는 그가 스스로를 프라하에 사로잡힌 도시의 인디안, 열락적(悅樂的) 산책가로 부른 것처럼 나도 프라하성 아래에서부터 성벽 위의 남쪽 정원을 따라 걸었다. 프라하성은 9세기에 건설되어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성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1918년부터 대통령궁으로, 현재까지 사용되는 성 중 세계에서 가장 큰 성이다. 블라디슬라브 홀은 특히 높이가 13m인 큰 홀인데 말을 탄 기사들의 통로에 들어서니 누군가 나를 향해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이 마을은 성의 영지입니다. 여기서 살거나 묵는 사람은 말하자면 성 안에서 살거나 숙박하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든 백작님의 허가를 받아야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허가증을 갖고 있지 않거나, 또는 적어도 그것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k처럼 나는 얼른 그곳에서 뛰쳐나와 성 비트 대성당을 마주하고 선 연금술사의 원형 탑 아래로 발길을 돌렸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는 탑을 빙빙 돌다가 카프카의 그 소설이 미완성작이란 것을 마침내 기억해 낸다. 북새통 인파에 휩쓸려 걷다보니 성내의 좁은 길목에 알록달록하고 작은 집이 늘어서 있는 황금소로가 나온다. 17세기 연금술사와 과학자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는데, 유독 파란 페인트칠이 된 작은 집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이곳에 프란츠 카프카가 살았다.(Zde zil Franz Kafka.)' 황금소로 22번지 표지판이다.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다니던 카프카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 퇴근 후 이층 다락방에서 글을 썼다는 여동생 오틀라의 집이다. 그녀는 나중에 2차세계대전 때 다른 여동생들과 함께 나치의 유대인수용소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제 그 푸르고 작은 집은 카프카에 관련된 모든 기념품을 파는 가게다.

 

가게의 골목으로 난 창에서 바라다보이는 막다른 곳 계단을 내려가니 아아, 해골을 등에 업고 엎드린 사람의 조각이 있다. 마치 죽음을 등에 지고 있는 듯하다. 원추형 지붕을 하고 있는 원형 감옥으로 첫 수감자의 이름을 따 달리보르카탑으로 불린단다. 내부에는 온갖 고문기구와 불에 달궈 처형을 했다는 시칠리아의 암소를 닮은 무쇠판 고문기구까지 전시되어 있다. 스페인 세비아의 종교재판소가 떠올라 섬뜩하다. 목 부분이 회색인 새가 날아간다. 비둘기 크기의 까마귀(kavka)다. 카프카가 여기서 연유되었다는 말도 있다.

 

 

◆스메타나, 드보르작, 릴케, 실레, 쿤데라의 도시


체코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다. 특히 프라하는 산으로 둘러싸여 우리 대구와 기후부터 비슷하게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로 내가 갔던 여름은 특히 더웠다. 그래서 새벽에 산뜻한 강바람을 쐬러 블타바강으로 나갔다. 프라하를 남북으로 가르며 독일 엘베강까지 이른다고 했던가. 보행자 전용 다리인 카를교 양쪽 난간에 서 있는 서른 명의 보헤미아 성인들 동상 사이로 떠오는 일출은 역시 압권이다.

 

프라하성 쪽으로 카를교를 건너 걷다보면 벨코프 르제로브스케 광장이 나온다. 그곳에서 사전에 등재된 카프카적(的) 의미로 바벨탑을 오르는 온갖 인류들의 언어가 박제된 그래피티를 만났다. 존 레논 벽화다.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은 이 벽에 각각 자기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나 부조리에 항거하는 메시지를 남긴다. 한글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내가 갔을 때는 마침 러시아의 한국계 록커 빅토르 최도 그려져 있어 마음이 뭉클했다. 존 레논이 표방했던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는 자명한 인간의 보편적 가치임을 새삼 느끼게 된 산책이었다. 밀라 스트라나에 있는 카프카문학관은 그의 생가를 개조한 곳이다. 붉은 지붕 아래 마당의 글자의 등줄기가 맞붙은 K자 조형물은 샴쌍둥이 같고, 마주보는 두 사람의 조형은 분리된 자아처럼 보여 마치 그의 소설을 읽는 듯하다.

 

문학관에서 그를 억압했다는 아버지와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간 여동생들 그리고 펠리체, 율리, 밀레나, 도라, 이름으로 더 익숙한 그의 여인들을 오래 들여다보고 나왔다. 프라하 야경을 보며 광장의 오를로이(Orloj, 천문시계) 앞 카페에서 코젤맥주를 마시며 막연히 한 달 정도 이곳에 와서 지내야겠단 생각을 한다. 스메타나, 드보르작, 릴케, 실레, 쿤데라… 프라하에서의 이들의 궤적도 내겐 만만찮은 것이다. 삼성의 고(故) 이건희 회장도 프라하를 사랑했다는 전설이 있다.

 

 

박미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