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창간 77주년 취재사진 현장속으로 1971년 춘천역 파월장병 환송식 8년여간 파병 군인 32만명 화천 오음리서 4주간 실전 훈련 교육 마치고 춘천~서울~부산 거쳐 베트남 이동 전선 투입 참전 대가 美 경제 원조 … 고엽제 피해 문제 등 상처로 남아 1971년 12월 춘천역에서 월남전에 참전하는 군인 환송식이 열렸다. 기차 안은 오음리7보충단 파월교육대에서 훈련을 마친 병사들로 가득 찼다. 기차 옆으로 교복 입은 학생들과 전장으로 떠나는 백마부대 장병들 손엔 태극기가 들려 있다. 환송식에 참가한 시민들은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며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한국 정부에 월남파병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월남전 파병은 6·25전쟁에서 미국과 자유우방에게 받았던 도움에 대한 빚을 갚고 주한미군을 월남으로 빼돌리려는 미국 측의 의도를 사전 봉쇄시킨다'는 취지로 1965년 8월13일,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월남파병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어서 8월16일, 김성은 국방부 장관은 파월전투사단부대 창설명령을 내리고 채명신 소장을 파월부대 사단장으로 선임했다. 1965년 10월3일 해병 제2여단으로 구성된 청룡부대가 부
1986년 1월21일 동해안 지역 새벽부터 1m 가까운 폭설 버스 운행 멈추고 비행기 결항 운전기사 파묻힌 차량 꺼내고 시민들 쌓인 눈 치우기 팔걷어 강원도는 우리나라 겨울의 상징이다. 우리 도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기온을 보이기도 하지만 많은 눈이 내려 겨울왕국의 모습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나뉜 지역은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생활모습도 다르다. 강원도 기자들은 각종 사건 사고를 통해 성장한다. 영동지역은 자연재해가 많아 예고되지 않고 발생하는 뉴스에 동물적 감각으로 적응하게 된다. 봄은 산불, 여름은 집중호우 그리고 겨울 폭설 등 자연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다보니 스폿뉴스(Spot news) 취재의 달인이 된다. 이 기간 영동지역의 기자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회식을 하거나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것은 삼가야 한다. 영동의 산과 바다, 그리고 바람 등 자연은 기자를 사건 사고 취재에 최적화된 요원으로 키운다. 제설을 담당하는 행정도 숙달돼 다른 자치단체에서 견학을 오고 있다. 얼마 전 12월24일부터 25일까지 속초지역에 55.9㎝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24일 밤부터 민간 제설장비와 속초시 제설장비 등을 가동해 제설에 나섰지만 시민들의
춘천 공지천 에티오피아·에메랄드 당시 20대 청년들 꼭 가야하는 성지 음악과 만나 신문물 접하는 공간 변모 클래식·가요 등 선호 장르 각양각색 1980년대 대학신문을 제작하기 위해 1주일 한 번은 밤을 새웠다. 이른 시간 문을 연 해장국집과 다방은 새벽공기를 마시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휴게소를 자처했다. 밤을 새운 학생기자들은 전원다실에서 미스 오가 내온 달걀 노른자위가 띄워진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다. 일간지 신문사 입사 후 결혼식, 돌 등 개인사가 생기면 당사자는 편집국 기자들에게 춘천다실에서 커피를 주문해 돌렸다. 커피는 특별한 의식(?)을 치르는 매체이자 소통의 도구였다. # 우리나라 원두커피 역사는 춘천에서 시작된다. 아프리카 대륙의 에티오피아 하일레 슬라세 황제는 춘천 에티오피아 카페가 문을 연 1968년에 황제가 즐겨 마시던 에티오피아 황실커피 생두(Green bean)를 외교행낭을 이용해 한국 외교부를 통해 보내왔다. 당시 황제는 황제의 상징인 황금사자 문양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주기도 했다.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참전 16개국 중 하나로 6,037명의 전투병이 화천, 김화, 춘천 등지에서 250여회의 전투를 치르며 중부전선을 지켜내는 데
극락과도 같은 자연경관 미끈하게 쭉뻗은 소나무 선조들도 필수 답사코스 2001년 솔잎혹파리 피해 남북 강원 공동 방제사업 신뢰와 협력 가능성 열어 예부터 강원의 산수는 해가 뜨는 동쪽 밝은 기운이 넘쳐나는 곳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사람들은 금강산을 한번만 봐도 극락세계로 가는 통행권을 받는다고 여겼다. 금강산은 과거 공부를 마친 선비들의 필수 답사 코스가 됐으며, 많은 시문과 그림으로 그 시대를 표현하고 있다. 소나무와 전나무, 잣나무 등 늘 푸른 나무들은 변하지 않는 절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시, 문, 그림의 소재가 됐다. 남북 강원도에서 가장 자랑거리는 우수한 자연경관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 중에서 소나무는 으뜸으로 여긴다. 소나무는 강송, 적송, 미인송, 황장목, 춘양목 등 우리 민족의 삶이 함께한 나무라 그런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중 미인송은 금강산 소나무의 별칭으로 미인처럼 미끈하게 쭉 뻗은 모양이 가히 금강산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 소나무를 통한 남북 강원도 교류는 2000년 한완상 전 상지대 총장을 통해 제안돼 그해 12월 남북 강원도간 솔잎혹파리 방제사업, 씨감자 생산, 연어치어 방류 및 부화장 건설을 내용으로 하는 남북 교류합의
2005년 산불로 사찰 전각 대부분 소실 악몽 일부 나무 여전히 그을린 상처 품고 살아가 다행히 복원·신축 원활 옛 아름다움 되찾아 낙산의 6개 자랑거리는 칠층석탑, 담장, 홍예문, 의상대, 홍련암, 나무 등이다. 석탑은 통일신라 시절 의상(義湘)대사가 3층으로 만들었으나 세조 13년(1467년)에 7층으로 만들어 수정염주와 여의보주를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보물 제499호로 지정돼 있다. 원통보전을 둘러싼 담장은 조선 세조가 사찰을 중창할 때 처음 쌓았다고 전한다. 높이는 약 3.8m, 전체 길이는 약 220m로 일부 원형이 남아있고 대부분 2005년 산불 이후에 보수했다. 의상대(義湘臺)는 의상대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 이르러 산세를 살핀 곳이며, 그의 좌선(坐禪) 수행처라고 전해진다.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해안 언덕에 있다.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시인 묵객이 즐겨 찾던 곳으로 지금도 낙산사를 찾으면 반드시 들러 보는 곳이 됐다. 1467년에 지어진 홍예문(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은 현재 누각을 쓰고 있다. 누각은 1963년에 세워졌다. 홍예문은 강원을 상징한다. 축조될
한 주민이 병났을때 밤마다 울음소리 내 사망한 후에야 그쳐 특별한 기운 알려져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인류는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하며 서로 협력해 문명을 만들어 왔다. 언어를 통한 협력으로 인류는 지구를 지배하는 절대자가 됐다. 지금도 수많은 언어를 통해 최고 지존의 자리를 유지하며 철옹성을 쌓고 있다. 인류는 구강구조를 통해 전달되는 말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사소통 체계를 갖고 있다. 때론 메시지는 말이나 문자보다 강한 몸짓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나무들은 어떤 소통구조를 갖고 있을까? 식물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감각기관외에 훨씬 어렵고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지구상의 9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식물은 실질적인 지배자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기관으로는 눈치채지 못하는 치밀하고 세밀한 그 무엇으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는 상상이다. 돌배는 야생이란 뜻의 돌이 배와 만난 이름이다. 한입 물면 입안 가득 번져 오는 시큼함에 양 미간을 구겨가며 입가로 넘치는 침을 소매로 닦아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이 원산지인 돌배나무는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전국 어디서나 잘 자란다. 산돌배나무, 청실배나무, 문배나무,
`봄봄' 등 김 작가가 남긴 12편의 단편소설 배경지 매년 20만~30만명 관광객 찾는 市의 성장 동력 임진왜란·일제 강점기 등 과거·현재 함께 숨쉬어 최근 지역 문인·예술인 모여 새로운 예술인촌 조성 실레마을은 김유정의 고향이다. 29세의 짧은 생을 살다간 유정은 실레마을에서 소설을 써왔다. 작가가 남긴 32개 단편소설 중 이 마을을 주제로 12개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그러다보니 마을 곳곳이 소설의 배경지다. 봄봄, 동백꽃, 만무방, 산골, 가을,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솥, 소낙비, 금 따는 콩밭, 안해, 두포전 등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마을에 숨어 있어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매년 20만~30만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실레마을은 춘천시에 성장 동력을 제공하는 곳이다. 김유정 소설가가 살던 1930년대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였다. 그의 소설은 일제가 조선에서 행한 극심한 식민지 수탈경제로 피폐하진 농민들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당시 농민들은 고율의 소작료, 식민권력에 의한 조세, 유통 과정에서의 가격 차이로 만성적인 적자와 빈곤에 시달렸다. 김유정의 소설에는 이런 농민들이 소재로 등장한다. 도박, 사기, 도둑질, 성매매, 인신매매 등 여러 일탈 행위
화이자 벼슬 버리고 37년간 산속 은거 김시습도 세상 시름 품은 채 이곳 찾아 고려시대 원나라 왕실 안녕 기원한 사찰 곳곳에 문화유산…춘천 문화 대표 상징 고성을 출발해 인천 방향으로 국도 46호선을 따라 진부령을 넘어 인제 원통을 거쳐 광치령을 넘어 양구 그리고 화천에 이르렀다. 배후령을 넘으면 춘천이다. 38선이 가로지르고 있는 배후령은 분단사와 월남전 파병, 5·18 진압 공수부대원 등 근대사를 간직하고 있다. 배후령을 넘기전 원형교차로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보면 소양호반에 있는 청평사를 만난다. 천년사찰 청평사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을 품어왔다. 고려 대학자 김부철이 쓴 문수원기에 따르면 춘주의 청평산은 옛날의 경운산이며 문수원은 옛날의 보현원이다. 당초에 선사 승현이 당나라로부터 신라로 와서 광종24년(973) 처음 경운산으로 와서 절을 짓고 백암선원이라 했다. 문종 23년(1069) 무신년에 좌산기상시 지추밀원사(左散騎常侍知樞密院事) 이의가 춘주도 감창사가 되었을 때 경운산의 빼어난 경치를 사랑하여 백암선원의 옛터에 절을 짓고 보현원이라고 했다. 그 뒤에 화이자가 벼슬을 버리고 여기에 은거하니 도적이 그치고 호랑이와 이리가 자취를 감추었다.이에 산
도 기념물 제73호 안녕과 풍년 빌며 제사 올리던 곳 일제 문화말살정책 인해 철폐…양양군 1993년 복원 신묘 가는 길목 50년생 가늠 해송숲 방문객들 맞이 도 관찰사 남공철이 세운 기사비 옆 적송 자리잡아 농업의 시작은 어쩌면 인류에게 축복이자 재앙이다. 농업기술의 발달로 얻은 풍요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불러왔고 잉여 농산물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의 생명줄인 곡식은 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농경사회 사람들에게 땅과 곡식은 나를 낳아준 부모 다음으로 소중한 존재였다. 기록을 살펴보면 농업사회를 근간으로 이룬 나라들은 대부분 조상과 사직(땅과 곡식)에 제사를 올리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했다. 조선은 동서남북 4곳의 신을 제후국으로 높여 극진하게 제사를 모셨다. 동쪽은 광덕왕, 서쪽은 광윤왕, 남쪽은 광리왕, 북쪽은 광택왕이라 부르며 사방의 산과 내에 제를 올렸다. 산천에 지내는 제사는 인간의 길화흉복(吉禍凶服)과 세상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자연신에게 홍수와 가뭄, 질병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해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해신묘 주변은 부정을 막기 위해 개소리와 닭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철저히 민간의 접근을 제한했고, 국가 대사를
북강원도 고성 금강산 세존봉서 자라 바위틈 속 자리잡아 평지 나무와 달라 본보 기자 등 구성 탐사단 두차례 탐방 남측 철원 대성산 등 일부지역만 자생 전 세계가 우리나라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부흥이고, 다른 하나는 산림녹화다. 산림은 자연재해를 줄이고 빈약한 국토에 영양분을 주는 비료와도 같다. 우리 산하는 1950년 전쟁으로 전국의 국토가 초토화돼 헐벗은 민둥산이 대부분이었다. 현은사시나무, 아까시나무, 미류나무, 리기다소나무, 낙엽송은 당시 민둥산에 즐겨 심었던 수종들이다. 당시 산은 화전민들의 터전이었다. 사람들은 불을 내서 잡목을 없앤 땅에 곡식을 심어 생계를 이어 왔다. 화전민들은 정부 정책에 따라 산에서 하산해 농촌에서 일품을 팔거나 도시 노동자로 이직해야 했다. 산에서 사람들이 떠나고 그들의 생계터전이었던 화전엔 일본 이깔(잎깔, 입갈)나무와 잣나무가 채워졌다. 1970년대 화전민 정리 작업(?)을 실시한 정부는 화전민들이 밭으로 사용한 산기슭에 일본 이깔나무와 잣나무를 대량으로 심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잣나무와 낙엽송 군락지를 본다면 십중팔구 화전민 흔적이 있던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