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 기운이 느껴지던 올해 초, 건축가이자 화가인 김영태 작가가 아홉번째 개인전 '75전'을 열었다. 그가 2012년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에서 퇴직 후 10년간 걸친 작업의 흔적이자 결과물을 정리한 전시였다.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의 나이는 올해 75세다.
몸에 밴 습관은 나이를 묻지 않았다. 초등학교 이후 학창시절은 물론 건축가로,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습관. 그 습관은 놀랍게도 '75전'을 개최한 지 6개월 만에 또다시 새로운 작품들로 열번째 개인전을 열게 했다.
팔공산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 '커들포드'(동구 팔공로 1334)가 이번 전시 장소다. 일반적인 갤러리를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는 그의 도전 정신이 묻어난다. 2020년 카페가 문을 연 이후 2년간 비어있던 널찍하고 휑한 벽면들이 그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작품 크기도 남다르다. 높이 6m의 벽면에 600호(3.5x3.5m) 크기의 작품 '적(跡)'을 걸었다. 자세히 보면 각 150호 캔버스 4개를 붙인 형태다. 그의 화업 인생을 4주기로 나눠 시대별로 표현했다.
"푸른 빛을 많이 띈 왼쪽 위 그림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13세(1960년)부터 결혼한 27세까지, 1기입니다. 그 아래가 건축소사무소를 개업하고 영남대 교수로 부임하는 등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28세~42세까지의 2기입니다. 성과물도 많고 그만큼 고민도 많았던 때죠. 오른쪽 위 그림은 첫 개인전을 열기 시작하고 교수 정년퇴임을 한 3기, 아래는 66세 퇴임 후부터 지금까지의 4기입니다. 그림에서 보이다시피 조금 여유롭게 흘려보내는 것들도 생긴 한편, 여전히 고집 있게 날을 세우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율(律), 기(氣), 획(劃) 등을 주제로 한 추상회화들이 카페 곳곳의 공간과 어울리게 배치됐다. 서예가인 그의 부친 소헌 김만호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일필휘지의 기운과 유기적 연결을 중요시하는 전통건축에 대한 철학이 어우러진 그의 그림은 공간에 숨을 불어넣는 듯 에너지를 뿜어낸다.
이진명 미술평론가는 "김 작가는 절충과 창신의 정신을 결합해 현대성에 대한 걱정과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며 "그의 작품은 반세기가 넘는 업력(業力)이 함께 직조한 아름다운 직물"이라고 평했다.
김 작가는 "그림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왔는데, 이제서야 꿈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며 "멈추지 않고 새로운 꿈을 이루고자 작업과 전시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0507-1339-3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