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버스를 기다리다가 교복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주말이면 교복을 벗고 시내로 나가려고 잔뜩 멋을 부린 아이들을 만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속내가 궁금해 관심 있게 지켜보곤 했었다.
전주에서 활동하는 다섯 명의 작가가 쓴 청소년 단편집 <너의 여름이 되어 줄게>를 통해 무표정과 환한 얼굴 속에 감춰진 아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만날 수 있었다.
작품 속의 아이들은 엄마 핸드폰으로 게임 무기를 산 뒤 그 돈을 갚기 위해 알바를 하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몰라 만날 지각하고 유학 간다는 거짓말을 꾸며댄다. 자신에게 모든 걸 건 엄마를 놓을 수 없어 다가오는 사랑을 외면하고, 자신도 따돌림당할까 봐 친구의 어려움을 애써 모른 척한다. 그리고 한 번의 시험 실패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퇴를 고민한다.
이런 것들은 지금 이 땅에 사는 청소년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겪고 고민해온 문제겠지만 절대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기본적인 시급조차 지켜지지 않는 청소년 노동문제나, 불투명한 미래를 두고 꿈과 희망을 찾지 못해 쳇바퀴 돌 듯 시간을 죽이는 아이들이 있다.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에 절망하고, 학교폭력으로 괴로워하고,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입시제도에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을 고민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복잡한 환경과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다행인 것은, 노트에 끝없이 찍혀있는 점만을 보고도 준서의 마음을 이해하고 손 내밀어주는 선우선생님 같은 어른이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 내게 어떤 꿈을 꾸는지, 내가 행복할 때는 언제인지 늘 물어야 해.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나올 수 있게 나를 격려해 줘. 비뚤어진 자리에서 끌어내는 건 바로 나여야 해. 나를 지키는 건 나야.”
선생님 말에 준서는 두려웠지만 해내려는 의욕을 가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희망적인 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순수, 열정, 사랑의 힘이다. 아이들은 실리나 이해를 따지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향해 직진하고 폭행과 협박을 당하는 친구를 위해 온몸을 던진다. 그런 생각과 행동을 통해 방법을 찾고 스스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오늘도 수업이 끝나고 교문 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을 길에서 만났다. 웃고 떠들고 재잘거리는 아이들 속에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아이에게 마음이 쓰인다. 어깨를 다독이며 “괜찮니?”라고 묻고 싶다. 그리고 슬쩍 가방 속에 이 책을 넣어주고 싶다. 아이들의 고민에 작은 힌트라도 되기를 바란다는 다섯 작가의 바람까지 얹어서.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통일 동화 공모전과 이다 생명문화 출판 콘텐츠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공동수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으며 지난해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