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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42년전 기억의 조각 맞추기…최면수사로 5·18 진실 밝힌다

진상조사위, 육본에 의뢰해 계엄군 4명·시민군 3명 대상 ‘법최면’ 조사
“광주교도소 인근 시신 묻어라 지시…날 용서해 줄까요?” 참회의 눈물
‘김군’ 차복환씨도 진술 생생…최면 수사관 “신빙성 증명 땐 증거 활용”

 

“전남대에서 시민들을 차에 하나 둘씩 태우고 최루탄을 터뜨렸어요. 한참 차를 달려 광주교도소에 도착하고 보니 태웠던 사람들이 죽어 있었어요. 시신을 차에서 내린 뒤 광주교도소 인근에 묻어버리라고 지시했어요. 저 사람들이 날 용서해 줄까요? 만나서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충남 계룡시의 육군본부 내에 마련된 최면실. 1980년 5월 3공수여단 지휘관급 직책을 갖고 무자비하게 광주 시민들을 짓밟았던 한 계엄군이 눈물을 흘렸다.

 

육군본부 소속 윤대중(52) 법최면 수사관에게서 최면수사를 받던 그는 눈을 감고 그 날을 떠올리며 공포의 눈물을 흘리고, 이어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40 여년 세월 동안 차츰 잊혀졌던 그 날의 기억이 계엄군 당사자 입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42년이 지난 5·18민주화운동의 기억의 파편을 되살리기 위해 과학수사가 진행돼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 십년이 지나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 뇌에 저장된 기억을 되살리는 ‘법최면’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에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육군본부 육군수사단 과학수사센터에서 계엄군 4명, 시민군 3명 등 총 7명에 대한 법최면 조사를 진행했다고 6일 밝혔다.

‘법최면’은 사건의 피해자나 범행을 목격한 사람이 당시 상황을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할 때, 잠재의식 속에 감춰진 기억을 끌어내 물적 증거나 진술 증거를 찾아내는 수사 기법이다.

 

최면수사를 활용하면 군 내에서 ‘분실한 총’도 찾을 수 있을 만큼, 당사자도 잊고 있던 기억까지 선명하게 되살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 뭔가 보았지만 충격으로 기억할 수 없는 경우에 매우 유용한 방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에 조사위는 지난해 12월께 육군본부에 5·18 민주화운동 경험자들에 대한 법최면 수사를 의뢰했다. 계엄군과 시민군 모두 40년 이상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희미해진 상태라는 점에서 최면을 이용하면 그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면 수사를 도맡은 윤 수사관은 “직접 듣고도 믿지 못할 참혹한 이야기들이었다”고 최면수사 후기를 설명했다.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포박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대검으로 찔러 죽이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시민군들도 계엄군의 몽둥이에 맞고, 동료의 머리 일부분이 대검에 맞아 날아가는 상황 등을 최면수사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특히 자루를 뒤집어쓰고 차에 실려갈 때의 느낌, 시민들의 시신을 거적으로 덮어놓고 ‘나중에 처리하자’고 했던 기억 등의 진술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이다.

윤 수사관이 1년여 동안 최면수사를 벌인 대상은 3공수여단·11공수여단에 소속된 하사, 중사, 대위 등 계엄군 4명과 시민군 3명이다.

이 중 계엄군을 수사할 땐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시신을 이송·매장하는 등 암매장 기억을 되짚는 것이 중심이 됐다.

지난해 5월에 본인이 ‘김군’이라고 밝힌 차복환씨에 대해서도 법최면을 실시했다.

차 씨는 장갑차에 올라가 총을 들고, 머리띠에 ‘석방하라’는 글씨를 써서 붙였다고 진술했다. 특히 시위 중 한 여성에게 ‘주먹밥을 받았다’는 등 모두 본인이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에피소딩 메모리’를 말했다는 것이 조사위의 설명이다.

진술을 확보하면 최면에 참관한 조사위 위원들이 기존 5·18 관련자 면담 기록, 역사적 기록 등과 비교해 신빙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역사적 기록과 일치하는 사실, 다른 목격자와의 진술 일치 등을 통해 신빙성이 증명되면 해당 진술을 법정 증거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윤 수사관 설명이다.

최면수사는 5가지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 최면을 유도하는 ‘인덕션’으로 시작해 더 깊은 최면에 걸리게 유도하는 ‘디프너’, 목표 기억을 끌어내는 ‘체인지워크’, 힘든 기억을 희석시키는 ‘앵커링’, 최면에서 깨어나는 ‘엑스덕션’ 순이다.

윤 수사관은 이 중 ‘앵커링’ 단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18은 계엄군과 시민군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만큼, 해당 기억을 희석시켜줘야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5·18 법최면 수사 도중 육군본부 최면실은 ‘눈물 바다’가 됐다고 윤 수사관은 전했다. 시민군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가족과 친구, 이웃들의 참변 소식을 떠올리며 아픈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계엄군 또한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고 있었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윤 수사관은 “당사자들의 생생한 진술을 듣고 나면 향간에 떠도는 5·18 역사왜곡이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지, 1980년 광주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게 될 것”이라면서 “최면수사를 통해 유의미한 진술을 확보해 5·18 진상을 드러내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며 “아울러 5·18 북한군 침투설, 폭도설 등 왜곡된 역사가 아닌 올바른 역사 의식이 국민에게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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