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화·수요일 오후 7시가 되면 영암군 대불산단 공장에 불이 꺼지고 산단 내 인조잔디축구장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세계 각국 대불산단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축구로 우정을 나누는 ‘대불산단복합문화센터(DCC) 글로벌 리그’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DCC 글로벌 리그는 지난해 11월 6개 팀으로 창단했다. 베트남 ‘대불FC’, 인도네시아 ‘인니FC’, 태국 ‘태국FC’, 네팔 ‘네팔FC’, 캄보디아 ‘캄보디아FC’, 여기에 한국팀 ‘문화FC’도 가세해 총 6개팀 116명이 참여하는 대회로, 올해 리그는 지난 19일 개막했다.
광주일보 취재진이 지난 26일 방문한 대불산단 인조잔디축구장에서는 인니FC와 네팔FC의 첫 경기가 열렸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와 함께 선수들을 응원하는 ‘와’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선수들은 고된 노동을 하고 왔다는 피로감도 잊은 채 가벼운 몸놀림으로 공을 차며 달렸다.
경기는 치열한 접전이었다. 페널티킥 찬스를 얻은 인니FC가 2대 1로 리드하다 경기 종료를 앞두고 네팔FC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면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점수가 한 점씩 올라갈 때마다 경기장은 응원 소리와 환호성으로 떠나갈 듯 했다. 경기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이 흐르면서 경기장 외곽 울타리 바깥에서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경기를 구경하기도 했다.
경기는 2대 2로 무승부를 기록, 두 팀이 각각 승점 1점씩을 얻으며 마무리됐다. 이후 캄보디아와 대한민국, 태국과 베트남의 경기가 이어졌다.
이날 경기장에서는 선수들뿐 아니라 관객석에 선 외국인 노동자까지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네팔 노동자들은 경기장과 차로 30여분 걸리는 거리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에서 근무하는데, 퇴근 후 콜버스를 불러 가며 축구 경기를 치르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곤 한다. 일로 인한 피로보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앞서니 피곤한 줄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네팔 출신 쿠살(33)씨는 “일 끝나고 오면 피곤하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일할 때 받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좋다”며 “축구 경기를 통해 한국 생활을 더 즐겁게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리그는 DCC에서 축구를 즐기는 39세 이하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퇴근 시간 이후 상대팀을 바꿔가며 오후 7시부터 3경기씩 진행하고 있다. 팀별로 3~5명씩 국제심판 교육을 이수한 이들도 있어 다른 팀의 경기 때 직접 심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60일 동안 총 180경기를 치르며 승점제로 운영, 최종 우승팀에는 트로피와 우승기가 수여된다.
리그가 열리는 데는 지역민들의 도움도 있었다. 영암군은 대불인조잔디축구장에 야간조명을 설치, 인조잔디를 정비했으며 전남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은 축구복과 정강이보호대 등 축구용품을 후원하고 선수들이 스포츠 책임안전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DCC는 또 취미로 축구하는 이들을 찾아가 한 명 한 명씩 선수를 섭외해 팀을 꾸리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리그가 탄생한 배경에는 김탁 DCC 센터장의 공이 컸다. 김 센터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문이 잠긴 축구장 인근에서 밤마다 공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열정을 해소시켜주고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영암 삼호읍에는 2만1000여 명 인구 중 외국인이 1만 명 가까이 돼 40%를 차지하는데, 외국인 의존도가 높은 조선업 등은 특히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30대 친구들의 숙련도를 위해 인프라를 잘 갖추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선수들도 호평 일색이다. 10년 전에 한국에 온 베트남 출신 김대한(주반루안·44)씨는 평소 금요일과 주말에도 축구를 해 오다 이번 리그가 결성돼 축구에 더 푹 빠졌다. 그는 “축구하면 모두 친구가 되는 그 마음이 좋다”며 웃어보였다.
한국에 온 지 8년차 캄보디아 출신 싼속기어(38)씨는 퇴근하고 축구하는 날만을 기다린다. 그는 “일하고 퇴근하자마자 축구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좋다. 센터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줘 감사하다”며 “앞으로 팀원들과 즐겁게 축구 실력을 키우고, 여러 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 센터장은 “대불산단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보람을 느낀다면 인구 소멸의 차선적 대안이 되는데 밑돌을 놓는 일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광산구청장배 등 다른 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는 대회에 단일팀으로 출전해 선수들의 성취감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