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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부산 시민에 감사” 6·25 피난민 아들이 올린 ‘편지 광고’

서울 사는 A 씨의 사연

 

“6·25 시절 피난민에게 베풀어 준 부산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서울에 사는 A 씨는 25일 〈부산일보〉에 사비를 털어 ‘조금 특별한’ 광고를 냈다. ‘부산 시민들께 드리는 감사의 말씀’이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6·25 시절 부산으로 피난 온 A 씨 선친에게 온정을 베풀어 준 부산 시민들에 대한 감사의 말이 적혀 있었다.

 

‘그때 부산 사람 아니었으면

다 얼어 죽고 굶어 죽었을 것’

본보 25일자 광고 잔잔한 감동

 

“대한민국 어디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단다…”

생전에 고마움 표하던 선친

더 늦기 전에 대신 감사 전해

 

‘어느 6·25 부산 피난민의 자식’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뿐, 익명을 요구한 A 씨는 어떤 사연으로 광고까지 내면서 부산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하게 된 것일까.

 

A 씨는 “제 선친은 ‘6·25 때 부산 사람들 아니었으면 피난민들은 다 얼어 죽거나 굶어 죽었을 거다. 모두가 어려운 형편에 대한민국 어느 곳의 사람도 그렇게 온정을 베풀 수 없었을 것이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말했다.

 

함경도 출신이었던 A 씨의 선친과 서울 출신의 모친은 6·25 때 다른 피난민이 그렇듯 전쟁통에 떠밀려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에는 먼 친척 하나 없었던 탓에 머물 곳을 구하거나 쌀 한 줌 손에 얻기도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A 씨 선친의 딱한 사정을 들은 한 부산 시민은 집에 있는 단칸방을 내주고 보리쌀을 나누었다. A 씨는 “부산 시민들의 호의 덕분에 저의 선친은 부산 남구 우암동에 머물며 결혼하고 저를 낳으셨다”고 말했다. A 씨가 세 살 때인 1957년, 그의 선친은 무사히 서울로 돌아갔다. 10년 전 별세한 A 씨 선친은 당시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평생 고마운 마음을 안고 성실하게 살았다고 A 씨는 전했다.

 

선친에게 도움을 준 이들을 직접 수소문한 적도 있지만 성과는 없었다. 2017년 여든이 넘은 모친의 뜻에 따라 그와 함께 부산에 내려온 A 씨는 빈손으로 서울에 돌아가야 했다. 모친은 이를 매우 안타까워했다. A 씨는 고민 끝에 〈부산일보〉에 광고를 내 최대한 많은 부산 시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이제서야 마음의 짐을 덜어 낸 것 같습니다. 살기 바빠 인사가 너무 늦은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제 선친 외에도 당시 많은 피난민이 부산 시민들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그분들의 자식 중 한 명인 저의 감사함을 더 해, 더 늦기 전에 당시 부산 시민들과 그 후손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