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 구지봉 자락에 자리한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 건국 신화의 숨결이 깃든 땅에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축물이다. 박물관은 고(故) 장세양 건축가가 1991년에 설계해 1998년 완공한 건축물로 현대 건축의 거장 김수근 건축가의 철학을 계승한 작품이다. 박물관은 2021년부터 상설전시실 전면 리모델링을 시작해 2022년 2층 재개관에 이어, 지난해 1월 23일 1층까지 새롭게 단장하며 ‘세계유산 가야’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최신 가야 문화 연구 성과와 발굴 자료를 반영하고 누구나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철의 왕국’, 땅과 대화를 시작하다 국립김해박물관의 건축 언어는 ‘철의 왕국’ 가야의 정체성을 향한다. 건물을 감싼 검은색 벽돌은 철광석과 숯을 형상화한 듯하며 투박하면서도 묵직한 질감을 통해 가야의 제철 기술과 철의 가치를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녹의 옷을 입는 철판은 제련되는 쇠의 변화를 보여주며 가야 문화의 상징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건물 전체는 원형으로 설계되었는데 이는 동양의 전통 사상인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
한 여름 정점에 선 이즈음, 대전의 문화예술 무대는 더위에 지친 일상에 신선한 숨을 불어넣는다. 국악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개량 피리의 무대부터, 시대의 흔적을 오롯이 담아낸 첼로의 멜로디, 차이콥스키가 전하는 숙명의 선율. 실험과 형식의 경계를 허문 연극 축제까지, 도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네 개의 공연은 관객의 오감과 사고를 동시에 자극한다. 다채로운 무대들은 시민들의 감성을 일깨우고, 예술이 일상에 스며드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여름, 감각과 사유를 자극할 네 개의 예술 무대를 소개한다. ◇ 국악의 변주, 피리로 엮어낸 여름 아침의 선율 이달 30일 오전 11시,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작은마당에선 기획시리즈 K-브런치콘서트 '우·아·한(우리의 아침을 여는 한국음악)'의 전반기 마지막 공연이 열린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음악 여행의 주인공은 피리 연주자 이영훈이다. 장새납과 대피리 등 개량 악기 연주에 독보적 존재감을 가진 이영훈은 전통 피리 음악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국내외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번 무대에선 재즈피아니스트 송지훈, 타악 수석인 이승호, 더블베이스의 최규원이 함께해 이색적인 앙상블을 구성한다. 프로그램은 민족적 서정이 담긴 '임
은은한 묵향(墨香)을 통해 서예술(書藝術)의 멋과 감동을 전하는 ‘2025 제주서예문화축제’가 오는 26일부터 31일까지 제주문예회관 1·2·3전시실에서 열린다. ㈔한국서예협회 제주도지회(지회장 오장순)가 마련한 이 축제는 ‘제32회 제주도서예대전 입상작품 전시회’(1전시실), ‘제주도서예대전 초대작가 강시호 초청전’(2전시실), ‘2025 제주서협전’(3전시실)로 나눠 진행된다. 제주도서예대전 입상작품 전시에는 지난 5월 1일부터 6월 5일까지 공모를 거쳐 6월 17일 발표한 일반부 입상작 87점과 학생부 특선 이상 작품 24점 등 총 111점이 내걸린다. 제주도서예대전 초대작가 초청전에서는 서귀포시 법환동 출신으로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전국서화예술인협회 초대작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를 지낸 강시호 작가의 작품 30점이 선보인다. 강시호 작가는 30년 넘는 세월 동안 필묵을 벗하며 한결하게 걸어 온 내공을 펼쳐보인다. 3전시실에서 열리는 ‘2025 제주서협전’은 한국서예협회 제주도지회 회원 44명이 출품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행사 기간 27일 ‘제주서예문화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탐방은 오전 9시 제주문예회관을 출발해 추사기념
북적이는 도심을 잠시 떠나 한 주 동안 찌든 먼지와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내고 힐링하고 싶다면 이곳이 제격이다. 북한산과 도봉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양주시 장흥면, 한때 이곳은 국민쉼터로 이름을 떨치던 곳이며 현재는 수도권의 ‘힐링스폿’으로 더 유명하다. 발 닿는 곳 어디든 절경이라 천혜의 자연을 품은 명당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바캉스’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하던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여름이면 이 일대는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몰리던 인기 피서지였다. 해외여행이 일상이 된 요즘엔 주말을 틈타 가볍게 머리를 식히거나 기분을 전환하려는 ‘힐링족’에게 각광받고 있다. 이들이 자주 찾는 명소들이 소셜네트워크를 타고 전파되며 장흥유원지는 핫플레이스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동안 멈췄던 교외선 운행이 올해부터 재개되며 중년에겐 추억, MZ세대에겐 신선한 경험을 선사하는 이색 기차 여행지로도 떠오르고 있다. ■ 자연 속에 풍덩 ‘송추계곡’ 송추계곡은 장흥유원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통의 명소다. 송추는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실제 긴 계곡 양옆으로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우거져 있
다음 달 13~17일 열리는 ‘2025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전통의 원형을 만날 공연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이하 소리축제)는 ‘본향의 메아리(echoes from the homeland)’를 주제로 축제 기간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 일대에서 닷새간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인다. 판소리를 비롯한 전통음악, 월드뮤직, 클래식, 대중음악, 어린이 프로그램 등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가 펼쳐진다. 이 가운데 전통음악의 원형과 깊이를 오롯이 느껴볼 수 있는 무대들이 주목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무대는 ‘판소리 다섯바탕’이다. 소리축제의 대표 브랜딩 공연으로, 개막일부터 마지막날까지 매일 오후 3시 소리전당 연지홀에서 열린다. 개막일인 13일에는 남상일 명창이 ‘수궁가’를, 14일에는 이난초 명창의 ‘흥보가’, 15일 윤진철 명창의 ‘적벽가’, 16일 염경애 명창의 ‘춘향가’, 17일 김주리 명창의 ‘심청가’가 무대에 오른다. 각 명창의 유파와 소리의 깊이를 비교하며 판소리의 정수를 음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즉흥과 질서가 공존하는 산조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산조의 밤’도 준비됐다. 다음 달 15일 오후 4시 30분 소리전
제주도 록(綠) 페스티벌 한낮의 열기를 피해 조용한 숲으로 향해본다. 나무 그늘 아래 바람은 부드럽고, 햇살은 잎사귀 위에서 조용히 반짝인다. 발끝에 닿는 흙의 촉감, 코끝을 스치는 나무 향, 귓가에 울리는 바람 소리. 이 모든 것이 여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싱그러운 햇살이 파도와 부딪치는 바다도 좋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얼굴을 어루만지는 산의 여름도 참 좋다. 숲의 그늘 아래에서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조용히 계절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휴양림 명소들을 소개한다. ■ 삼나무 향 따라 걷다, 마음까지 맑아지는 숲 절물자연휴양림 삼나무 가득 그늘 아래 ‘쉼’ 샘물 솟는 ‘절물’ 이름 유래 제주시 봉개동 해발 600m. 한여름의 무더위도 이곳에서는 숨을 고른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지나 숲길로 들어서는 순간, 도시의 소음은 삼나무 숲에 스며들며 사라진다. 제주시가지에서 차로 30분이면 닿는 절물자연휴양림은 삼나무로 가득한 그늘 아래서 ‘쉼’이라는 단어의 본질을 되묻는 공간이다. 절물휴양림이 품은 삼나무는 평균 수령이 40년을 넘는다. 곧게 뻗은 삼나무들이 만든 녹색 아치 사이를 걷다 보면, 숨소리마저 가볍게 느껴진다
대한민국 대표 사진예술축제 ‘2025 동강국제사진제(DIPF 2025)’가 80일간의 일정으로 ‘사진마을’ 영월 일원에서 펼쳐진다. 동강사진마을운영위원회와 영월문화관광재단이 주관하고 영월군이 후원하는 이번 동강국제사진제는 지난 11일 전시의 막을 올렸으며, 공식 개막식은 18일 오후 7시 동강사진박물관 야외광장에서 마련된다. 전시는 오는 9월 28일까지 이어지며, 10여개의 기획 전시와 국제공모전은 물론 교육 프로그램, 워크숍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함께 펼쳐질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동강사진박물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동강국제사진제의 출발점이자 주 전시장인 박물관의 가치와 역사를 기리는 ‘아카이브 특별전’이 준비돼 있어 의미를 더한다. 2005년 개관 이래 동시대 사진의 플랫폼으로 성장한 동강사진박물관의 발자취를 기록한 이 전시는 ‘Museum Project(뮤지엄 프로젝트)’를 주제로, 국내외 사진문화사적 흐름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장(場)으로 마련된다. ‘동강사진상 수상자전’에서는 2025년 동강사진상 수상자인 사진가 원성원의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회고전 형식으로 구성돼, 사진의 지표성과 허구적 서사를 결합한 독창적 미학을
‘삶에 쉼표를 찍으며 잠시 여유를 삼을 수 있는 곳’. 마음의 고향처럼 안식처로 삼을 수 있는 경북 칠곡군 복합문화공간 ‘시호재’(時弧齋·시간을 향해 쏘는 활)에 오면 편안함이 밀려온다. 기분 좋은 바람과 공기의 향기와 촉감을 소재로 연주되는 교향곡을 떠올리도록 설계된 건물. 넉넉한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는 듯한 편안함과 동시에 건축주의 환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빛과 바람과 인간이 빚어낸 최상의 건축물이다. 구름과 햇빛이 건물 사이로 흘러간다. 불규칙하게 지나가는 바람은 일렁임을 만들면서 여운의 한 자락을 남긴다. 인생 샷을 찍기 좋은 장소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시호재이다. 경북 칠곡에서 가장 핫한 곳이다. ■ 세계적인 건축상 잇따라 수상 시호재는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건축부문상을 잇따라 수상하면서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을 달성,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iF 디자인 어워드 2025’와 ‘2025 독일 디자인 어워드(German Design Award)’, ‘제47회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을 받아 국내·외에서 디자인적 가치를 인정받은 덕분에 건축학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iF 디자
수원화성 방화수류정의 원본 현판 탁본이 발견됐다. 보물로 지정된 방화수류정 원본 현판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사라진 상태였다. 15일 수원 화성박물관 등에 따르면 김세영 학예연구사는 지난달 서울 밀알미술관 특별전 ‘필경재가 간직한 600년: 광평대군과 그 후손들’ 전시장을 찾아 실견 조사한 뒤 사라진 방화수류정 원본 현판 탁본이 조선 왕실 후손 집안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원본 현판은 명필로 이름을 알린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의 글씨로 제작됐다. 그러나 18세기에 자취를 감췄고, 현재 방화수류정에는 1956년 김기승 서예가가 쓴 글씨로 다시 만든 현판이 걸려있다. 김 학예사는 “이번에 발견된 탁본은 사라진 원본 현판의 유일한 현존 탁본으로,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며 “소장자와 협의해 유물 복제를 허락받았고 내년에 원본 현판 탁본을 복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대전 현대미술의 시작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대전시립미술관은 올해 하반기 첫 기획전으로 '비상 飛上;'을 통해 지역 원로작가 4인의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지역미술 조명사업'의 두 번째 장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 수집과 연구, 전시와 교육을 아우르는 '시립미술관 의의'를 재확인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영원한 깨달음과 진정한 미술관의 존재 이유를 묻는 이번 전시를 소개한다. ◇ 발전적 해체: 한국화의 뿌리를 다시 짚다 1-2전시실에서의 첫 번째 섹션 '발전적 해체'는 대전 한국화의 기틀을 닦은 세 명의 원로 화가 박승무, 조평휘, 민경갑의 예술세계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전통 수묵화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표현을 시도한 화가들이다. 박승무는 충북 옥천 출신으로, 근대 동양화단의 중심에서 활동하다 1957년 대전에 정착했다. 은둔적이고 탈속적인 삶을 살며 오롯이 작품에 몰두한 그는 부드럽고 섬세한 필치로 설경과 산수의 고요한 정취를 표현했다. 남종화풍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안개 낀 산과 점묘식의 표현을 통해 자신만의 정서를 담아낸 작업은, 대전 한국화의 정신적 원류로 평가된다. 조평휘는 1932년 태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