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율은 점점 떨어지고, 화선은 길어지고 있다. 집계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산청 산불’이 번진 하동군 옥종면 일원은 5일째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잡힐 듯하던 산불은 점점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강풍’ 악재에 수일째 이어진 진화 전쟁으로 진화대원들의 체력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대피 주민들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산불 전쟁’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다.

26일 오전 옥종실내체육관에서 만난 할머니 강모(70)씨는 “어젠 너무 추웠는데, 난로가 들어오는 것을 보니 오늘은 그나마 나을 것 같다”면서 “언제 집에 들어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옥종면 옥천관을 중심으로 산과 인접한 마을 주민은 모두 집을 비운 채 옥천관, 옥종초·중·고 등 시설에서 5일째 보내고 있다. 씻는 것, 입는 것, 먹는 것 어느 것 하나 불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최일선에서 화재 진압에 나서고 있는 하동군 화재진압대원 33명은 한결같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빨리 쉬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김용길 조장은 이날 기자와 만나 “낙엽 등으로 발이 푹푹 빠지는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가장 힘들다”면서 “아침까지는 진화율이 올랐는데 오후부터 바람이 분다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 조장은 “충분히 먹고 어느 정도 쉴 수 있는 휴식 시간이 주어져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김 조장의 이 같은 긍정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원은 “그냥 눕고 싶다”는 자조 섞인 말로 힘듦을 토로했다.
지난 25일부터 이틀째 현장에 투입된 공군 소속 김동휘 상병과 구동일 일병은 “할 만하다”면서도 “안전을 우선하면서 주민과 나라를 위한 생각에 열심히 한다”고 거들었다.
점심 지원 등 자원봉사를 하며 산불 진화 현장을 지켜본 군민들의 반응은 더 가슴이 시리다. 김 조장의 지인으로 보이는 한 군민은 지친 모습이 역력한 진화대원들을 보며 “애처로워 죽겠다. 체력이 완전 바닥일 텐데 어쩌나…. 대신해 줄 수도 없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하동재난현장통합지원본부’가 있는 하동군 옥종면 옥종운동장을 지나 차량으로 20분쯤 올라가 만난 군민 윤모(60·하동읍)씨는 불타고 있는 위태마을 능선을 바라보면서 “하동에는 헬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산(옥종면 위태마을)을 지나면 바로 청암이다. 청암에는 도로를 따라 마을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아주 위험하다. 이 능선이 아주 중요하다. 여기서 불을 저지해야 한다”며 조바심쳤다.
경북 의성 화재 현장에서 소방헬기 추락으로 헬기 운항이 정지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원봉사자 일부는 “헬기가 아니면 불을 못 끄는데 어쩌나…”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