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로 변한 의성 산불이 사상 초유의 인명과 재산, 문화유산을 집어삼킨 역대급 재앙으로 번졌다. 강한 바람과 메마른 공기 등 악조건을 감안하더라도 신속한 사전 대피 안내가 사실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그나마 발송된 재난문자조차 혼란만 부추기면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부른 참극으로 직결됐다는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의성·안동 등 경북 도내 7개 시군에서만 2만3천300명에 달하는 전대미문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경북의 천년 문화 유산이 잿더미가 됐는가 하면 유치원·학교 휴업까지 이어지면서 경북의 사회 인프라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중이다.
경상북도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경북 북동부권을 덮치면서 26일 오후 4시 기준 최소 21명이 숨졌다. 산불 기세가 여전히 꺾이지 않으면서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희생자들은 대다수가 농촌에 거주하는 60, 70대 고령층으로 재난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기 어려운 이들이었다. 특히 인명 피해가 발생한 안동과 청송, 영양, 영덕 등의 지자체들이 산불이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져오는 상황에 긴급재난문자를 남발하고, 사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높다. 인접한 시군들이 앞다퉈 긴급재난문자를 보내거나 대피 장소를 변경하면서 주민들의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열악한 도로 사정과 지형적인 차이 등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대피 방식이 화를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산불 여파로 고속도로가 통제된 상황에서 영양·청송을 지나는 국도·지방도는 대부분 폭이 좁은 왕복 2차로여서 산불 상황에서는 고립되기 쉽다는 것이다.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북동진하면서 향후 추가적인 인명·재산 피해가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산불은 의성을 넘어 안동과 청송, 영덕, 봉화까지 덮쳤고 동해안을 타고 더욱 북진, 울진까지 위협할 가능성도 낳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여러 곳에서 주민 대피령이 내려질 만큼 상황이 심각한 지경이다.
당국은 26일 진화 헬기 수십 대와 인력 4천918명, 진화 장비 558대를 투입해 주불을 끄는 데 총력을 쏟았지만 진화율은 가시적으로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낮 12시 51분쯤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 한 야산에서 진화 작업에 투입된 헬기 1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 진화 작업의 핵심 장비인 헬기 운항이 잠정 중단됐다가 오후 3시 30분쯤 재개됐다. 추락 헬기는 강원도 인제군 소속의 담수 용량 1천200ℓ의 S-76 기종으로, 헬기를 몰던 기장 박모(73) 씨는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불 방지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역대 최악의 산불에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장비로 맞서고 있으나 상황은 심상치 않다"면서 "추가적인 산불이 생기면 산불 진화를 위한 자원 등이 부족할 수 있는 만큼, 산불 방지에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진화 및 피해 회복과 관련, "국가 차원의 신속한 재난 수습과 대형 산불 진화를 위한 군 수송기 활용 개선, 이재민을 위한 긴급구조 및 주거지원 등 대책 마련을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