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의 한 게임회사에서 그래픽디자인 업무를 맡았던 조현민(31)씨는 지난 2022년 회사에 사표를 제출한 뒤 2년째 무직 상태다. 업계 특성상 장기 프로젝트가 많아 업무를 한 번 시작하면 잦은 야근으로 건강을 해치는 만큼, 굳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돈이 필요할 때만 외주를 받아 캐릭터 디자인을 해도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점에서다.
조씨는 “요즘 말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직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겠지만 일을 하고 싶을 때만 하면 되지 않냐”며 “돈이 떨어질 때쯤이면 직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쌓은 인프라를 활용해 모션 캡처 애니메이션 블렌딩 작업 또는 게임 일러스트 작업 등 업무를 수행하고 생활비를 벌곤 한다”고 말했다.
#. 올해 초 광주 소재 대학교를 졸업한 최지우(여·24)씨는 최소 1년 동안은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을 생각이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이유 없이 쉰다’ 이른바 ‘그냥족’의 대표적인 예다. 더불어 과거와 달라진 경제상황을 반영하듯 가족 역시 취업을 독려하기보다는 굳이 힘들게 바로 취업을 준비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라며 응원하는 분위기다. 이에 최 씨는 평소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생각만 하고 있던 해외여행, 국토 대종주 등을 경험했다. 또 아르바이트 등 별다른 경제활동은 하지 않고 요리와 춤을 배우는 등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다.
최 씨는 “바로 취업하게 되면 또 자유 시간이 없어질 거라 생각했고, 가족들도 큰 부담 없이 내 의견을 받아준 것 같다”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취업하지 않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대졸 이상 비경제활동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교육정도에 따른 분류에서 대학교 졸업생들이 졸업 직후 취업전선에 뛰어들던 것과는 상반된 모양새다.
이는 과거 대비 경제수준이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보다 삶의질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대세가 된 결과로 분석된다. 2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광주·전남지역 대졸 이상(전문대 포함) 비경제활동인구는 지난 6월 말 기준 21만 9000명으로 전년 대비 7000명 증가했다.
비경제활동인구는 만15세 이상 경제활동이 가능한 자 가운데 일을 할 수 없거나, 일을 할 수 있지만 할 의지가 없어 구직활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특히 광주시는 대졸 이상 고학력자 가운데 비경제활동인구 수가 12만3000명으로, 코로나19 당시 가장 비경제활동인구가 많았던 지난 2020년 9월(12만 8000명)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의 경우 지난 6월 말 기준 9만6000명을 기록해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경신했다. 이는 전문대 졸업자들의 경제활동 참여도가 급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전남지역 대졸 비경제활동인구 중 전문대 졸업자가 전년보다 5000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광주와 전남지역 대졸 이상 비경제활동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26.17%, 20%로 확인됐다. 이는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 4~5명 중 1명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셈이다.
비경제활동인구 활동상태별 분류를 보면 광주·전남 모두 ‘가사’로 인한 경제활동 포기 비율이 가장 높았다.
광주시 비경제활동인구가 취업·구직활동을 그만둔 이유로는 가사가 17만2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통학(11만명), 육아(2만1000명) 등이 뒤를 이었다.
전남도 역시 가사가 15만5000명으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이밖에도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취업을 포기한 구직 단념자 또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고용 조사에서 ‘그냥 쉰다’고 답한 경우도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된다”며 “최근 워라밸을 위해 그냥 쉬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 만큼 고학력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