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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이영철의 제주여행]평생 그리움에 사무친 모자…끝내 하늘에서 만났다

(12) 한양할머니 정난주마리아 下
추자섬 갯바위에 남겨진 황경한
양부모 만나 친자식처럼 길러져
성인된 후 친모 존재 알았지만 
생이별한 모자 살아생전 못 만나

 

‘경한아, 눈을 뜨지 않아도 알 것이다. 네가 살아가게 될 땅이다. 죽어서는 아니 된다. 악착같이 살아남아 언젠가는 꼭 만나자꾸나. 그러니 잘 봐두거라. 저 마을을, 이 포구를, 그리고 어미의 타는 가슴을. 너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너를 지키는 것이다. 나와 함께 제주로 가게 되면 너는 일평생 천한 노비로 살아갈 뿐 아니라 이 어미의 욕된 꼴을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네가 황사영, 정난주의 아들이 아닌 황경한 네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양반도 천출도 아닌 이 땅을 살아가는 보통의 양민이 되어, 때론 주리고 고통받겠으나 강인함으로 살아남아 끝끝내 또 다른 생명을 일구어가는 그러한 사내로 말이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말거라. 태생에도, 사상에도, 신앙에도……. 천 일 만 일을 하루같이 그리워하고 애태우며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아들아.’

다산 정약용의 조카 정난주 여인의 일대기를 그린 김소윤 작가의 소설 ‘난주’의 한 대목이다. 초기 천주교인들이 다수 처형되고 유배됐던 1801년 신유박해 때, 제주도로 유배 끌려가던 29세 여인 정난주가 추자도 바닷가에 서서 읊조리는 장면에서다.

그녀는 품속 2살 난 아들에게 그가 홀로 남겨질 추자 섬의 풍경을 미리 보여주고 싶었고, 이승에선 마지막이 될지 모를 어미의 말을 아가에게 한 마디 한 마디 남겨주고 있었다.

남편 황사영은 ‘백서 사건’으로 붙잡혀 무참하게 처형된 후였고, 거제도로 유배 가는 시어머니와는 이틀 전 갈림길에서 헤어진 뒤였다.

거센 풍랑 때문에 일행이 잠시 멈춘 추자 섬에 아가를 몰래 버려두고 떠난 여인은 제주로 끌려가 37년간 관의 노비로 살다 죽었다.

섬 갯바위에 홀로 남겨진 아기는 어미의 바람대로 누군가에게 구해져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좋은 양부모 손에 키워진 아이는 성인이 되면서 제주 섬에 있다는 친모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제주의 정난주 여인 또한 먼 훗날이지만 아들 경한이 성인이 되어 추자에서 잘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모자는 각자의 섬을 벗어나보지 못한 채 서로 그리워만 하다가 생을 마쳤다. 모친과 아들이 평생 떨어져 살았던 거리를 보면 100㎞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에서 한라산 중산간을 넘어 제주항까지 육로 45㎞에 다시 추자도까지 뱃길 55㎞가 더해질 뿐이다.
 

 

위치다. 가까운 바다에 우뚝 솟은 수덕도와 함께 망망대해 수평선을 따라 하얀 구름들이 길게 깔려 있는 그 위로 한라산 봉우리가 희미하게 얹혀 떠 있는 모습은 날씨 흐린 날에는 만날 수 없는 정경이다.

모진이해변에서 10분 거리 해안가 언덕 위에 정난주 아들 황경한의 묘가 있다. 18-1코스 종점까지 1㎞를 남겨둔 올레 노선상이다. ‘순교자 황사영 신앙의 증인 정난주의 아들 황경한의 묘’라고 쓰인 비문의 묘비는 모친이 묻혀 있는 남쪽 바다 제주 섬을 향하고 있다. 천주교 111번째 성지라지만 별다른 장식이나 꾸밈은 없는 수수한 묘역이다.
 

 

뒤편 정자 옆으로 주차 공간도 넓고 묘 주변엔 꽃다발 등이 여럿 놓여 있다. 생전과는 달리 외롭지 않게 방문객들도 많고 묘 관리도 일상적으로 정성스레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옛날 인근 갯바위에 홀로 버려진 두 살배기 아가는 어미가 떠나며 시킨 대로 열심히 울어댔고, 어미가 간절히 소망했던 대로 누군가에게 발견이 되었다. 바로 옆 마을 예초리 오씨 부부가 소에게 풀 먹이러 가다가 희미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것이다.

젖내 나는 저고리 옷깃에 아기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놓은 어미의 마음은 그대로 오씨 부부의 마음으로 전달되었다. 좋은 양부모를 만난 아기는 친자식처럼 소중히 키워지되 이름은 물론 성까지도 바뀌지 않았다. 자신의 성이 아버지 성과 다른 연유에 대해선 성인이 된 후 당연히 양부모에게 들어 알았다.

살아생전 모자간에는 대여섯 번 서신이 오갔다고 한다.

황경한의 나이 서른 즈음엔 제주의 정난주도 단순한 노비가 아니라 덕망과 기품이 뛰어난 한양할머니로 주변의 존경을 받으며 늙어가던 터였다.

내색은 않지만 추자도 아들 소식을 가장 궁금해할 것임을 잘 아는 몇몇 주변인들이 추자와 제주를 오가며 모자간 가교 역할을 해줬다.

아들로선 모친 살아생전에 기어코 제주를 다녀가고 싶었겠지만, 아들의 장래를 염려한 모친이 모질게 이를 막았다.

묘에서 북쪽으로 15분 거리인 신대산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바다를 배경 삼아 ‘아기 황경한과 눈물의 십자가’란 제목의 커다란 안내문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황사영-정난주-황경한 세 가족의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망대 밑으로 난 나무 계단을 따라 200m 정도 내려가면 ‘물생이끝’이란 이름의 갯바위 위에 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그 밑에 놓인 아기 황경한의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십자가 디자인은 어머니 정난주의 눈물이 십자가에 맺혀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두 살 아가는 묵주를 손에 쥐고 누워 지긋이 하늘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아기를 이 섬에 몰래 남겨두고 떠가기로 결심한 전날 밤 정난주는 품에 꼭 껴안은 아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소설 ‘난주’의 한 대목이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종국에는 흘러간다. 그늘도 음지도 해가 들면 다시 꽃을 피운다. 지금 우리가 이러하다고 본래 이렇고 훗날 이렇겠느냐. 어미와 떨어지거든 하늘이 찢어지도록 울어라. 울어서 네가 살아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네가 산다. 그 울음을 주께서 들을 것이고 사람의 귀가 들을 것이고 종국에는 인정이 움직일 것이다. 어미는 잊기도 잊으려니와 그리워도 말거라. 사무치는 그리움은 너를 상하게 하니 차라리 그리움을 모르는 것이 나으리라. 극통한 아픔은 이 어미의 가슴에 묻고 피눈물도 어미가 흘릴 것이다. 너는 그저 울고 떼쓰며 입고 먹으며 숱한 세월을 한날같이 아이로 자라거라.’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