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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공연리뷰] 뮤지컬 '팬레터'

나를 일으키고 늪에 빠뜨리는 '한통의 편지'

 

 

3월에 잘 어울리는 뮤지컬이 있다. 구멍을 찾아볼 수 없는 연기력과 호흡, 넘버가 주는 섬세함과 강렬함, 시대적 배경의 간절함과 캐릭터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인상적인 '팬레터'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팩션(팩트+픽션) 뮤지컬 '팬레터'는 "나라가 이 지경인데 지금 문학이 무슨 의미냐"는 말을 들으며 안팎으로 혼란한 시기 자신들의 순수한 문학 열정을 이어나가는 칠인회와 폐병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세상에 남길 작품에 대한 강한 열망을 불태우는 천재 소설가 김해진, 그런 그를 동경하는 소설가 지망생 정세훈과 베일에 싸인 천재 여류작가 히카루가 극을 이끈다.

소설 쓰는 3인 연결하는 그림자·안무 등
극의 몰입도 높여… 밴드 연주 '완벽 호흡'

 


해진에게 전달된 팬레터로 세훈, 히카루와의 복잡한 삼각관계가 시작 된다. 슬픔을 아시느냐 묻는 편지는 해진에게 소설을 쓰는 힘이 되고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게 했지만, 결국 그를 깊은 늪에 빠뜨리게 하는 존재가 된다.

해진과 세훈, 히카루가 소설을 쓰는 사방이 어두운 검은방은 현실과 이상 사이를 넘나드는 인물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해진이 편지인지, 아니면 편지를 보낸 사람인지 모를 대상에 집착할수록 건강은 잃어가고 작품이란 결과물을 얻어간다. 절친한 친구 이윤이 '그만하라'며 만년필을 뺏을 때도, 사실은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는 그의 눈물이 가슴을 파고든다.

세훈이 진실을 고백하는 순간 해진은 그동안 받아온 편지를 흩뿌리며 처절하게 무너지는 듯하지만, 이후 담담하게 그간의 진심을 펼쳐 보이는 마지막 해진의 편지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대사와 가사에 있었다. 보고 나서도 오랫동안 곱씹었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최고의 문학가였던 김유정과 이상, 김기림 등의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삼았다.

작품은 2016년 초연부터 사연을 거치며 스토리의 디테일과 인물 묘사에 대한 완성도를 높였다. 해진과 세훈, 히카루의 안무와 곳곳에서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그림자, 무대로 쏟아져 내리는 원고지, 감정을 극대화 시켜주는 조명 등은 극의 몰입도를 한껏 높여준다.

여기에 라이브 밴드 세션의 연주는 배우들과 완벽히 호흡한다. 어느 순간 침조차 삼키기 어려운 침묵이 이어질 때 함께 숨죽인 연주는 전율을 느끼게 했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작품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팬레터'를 보고 나면 편지의 주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공연은 코엑스 아티움에서 3월 20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