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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전북사의 과제] ③가야사

전북 동부지역 가야세력 실체 두고 치열한 논쟁
제철유적, 봉수, 사료, 장수가야 존재가 큰 쟁점
봉수, 제철은 시기문제, 장수가야는 문헌사료 문제
“전체적으로 명확하게 검증 규명되진 않은 상황”
검증을 통한 논리보강과 새로운 시각 전환 촉구

 

 

전북 가야사는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역사문화특별법)’의 범주에 들어갔지만 전국 고대사학계에서는 가장 쟁점이 많은 분야다. 전북 동부지역에 대가야가 존재했다는 통설을 뒤집고, 독자세력 존재를 주장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근거로는 지표조사로 발견된 봉수와 제철, 중국과 일본의 문헌사료를 든다.

그러나 봉수의 조성시기, 제철의 입지, 문헌사료의 해석을 두고 논쟁이 치열하다. 아직까지는 통설(전북 동부지역=대가야)이 힘을 얻고 있다. 전북 가야사를 둘러싼 쟁점과 가야할 길을 두 짚어본다.

 
전북 가야사를 설명해주는 유적과 문헌사료

전북도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북 동부 지역에서 지표조사를 통해 발견된 제철, 봉수, 고분은 800여개다.

특히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은 역사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프랑스)의 완성도 검사까지 통과한 상태다.

가야세력의 존재여부를 유추해주는 문헌사료도 있다. 중국문헌인 <양직공도>와 일본의 <일본서기>다. 두 사료에는 ‘반파(가야소국)’가 봉수를 쌓아올린 기록과 남원에 있던 소국으로 추정되는 ‘기문국’이 나온다.

이들 유물과 문헌을 근거로 대두한 학설이 전북 독자가야설(장수 반파가야설)이다.

곽장근 군산대 역사철학부 교수는 “반파의 위치는 역사 고고학적 시각으로 봐야 한다”며 “전북 동부에서 발견된 110여곳 8갈래 봉화로의 최종 종착지가 장수군 장계분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서기에 반파가 513년 기문과 대사를 두고 백제와 전쟁을 벌일 때 봉후 기록이 나오는 데, 그 물증이 전북 동부지역 봉화망”이라고 부연했다.

 
봉수 조성시기 · 형태 쟁점

전북 동부 지역에서 발견된 117개 봉수는 조성시기가 주된 논쟁거리다. 논쟁은 고대시기부터 구한말까지의 문물제도를 망라한 <증보문헌비고>에서 촉발된다. 이 사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각 봉수당 거리는 11.6km이다.

봉수분야 전공자인 김주흥 LH밀양사업단장은 이를 두고 “(거리상으로 볼 때) 가야시대에 (특정 한 지역에서) 110여 개의 봉수를 운영했다는 게 맞지 않을 수 있다”며“장수 지역 봉수는 삼국, 고려, 조선 등 다양한 시기에 걸쳐 분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한다.

형태를 둘러싼 논쟁도 치열하다. “110여개의 봉수가 가야시기에 지어졌다면 구조상으로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과 “전쟁이 많은 고대시기에 급조해서 만든 봉수는 형태가 제각각이며, 양식도 토축·암반·석축형으로 다양하다”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제철 입지 쟁점

제철은 입지 문제가 화두다. 조선시대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고대시기부터 존재했던 모든 제철산지가 나오는데, 전북과 관련된 기록은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장수에 고대부터 제철산지가 존재한 게 아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남규 한신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입지상의 문제로 장수 대적골과 같은 산간에서는 제철이 생산되긴 힘들다”며 “고대시기 유통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곽 교수와 조명일 군산대가야문화소연구원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주변을 지표조사 했을 때 삼국시대 토기편이 적지 않게 수습됐다”며 “특히 대적골에서 발굴된 유물은 통일신라 문화층까지 접근했다”고 반박한다.

 
반파 ‘대가야설’통설

많은 가야사 전공 학자들은 반파를 대가야로 보는 통설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반파=장수가야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처럼 사료인 <양직공도>와 <일본서기>를 근거로 들고 있다. 다만 유물·유적과 연결지어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

우선 이들은 ‘반파’를 백제가 대가야를 낮춰부르는 용어로 해석하고 있다. 5~6세기 백제와 대가야가 적대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일본서기>에 등장한 반파 관련 내용은 중국문헌 <삼국지>의 내용을 윤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사료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유물·유적과 연관한 해석에서도 △반파가 성을 지은 ‘자탄’은 경남 거창 , ‘대사’는 경남 진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고령토기의 확산지점이 넓다는 점 등을 들면서 통설에 힘을 실고 있다.

정재윤 공주대 사학과 교수는 “‘반파 장수 독자세력’ 이론에 대한 근거도 고고학적 자료인 봉화뿐만 아니라 문헌사료인 ‘일본서기’로도 들고 있다”며 “사료의 문제점이 제기된 이상 논리보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과제

통설을 뒤짚은 학설인만큼 검증을 통한 논리보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우선 장수가야 독자세력설을 입증하려면 봉수·봉화뿐만 아니라 국가체제의 상징인 산성, 왕궁, 왕릉, 수취체제인 창고도 발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가야=연맹왕국’이라는 틀을 깬 이론인만큼 시각을 유지하면서 연구·검증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영식 인제대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는 “정치체를 놓고 중심과 변두리라는 등식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며 “장수와 진안일대, 남원 운봉고원에 존재했던 정치체의 자율적 발전론에 무게를 두고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세희 saehee0127@jj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