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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 목지국은 삼한의 맹주국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 한전에는 마한 54개국 각각의 국명을 기록하고 있고, 큰 나라는 만여가, 작은 나라는 수천가로서 총 10만여호로 구성되어 있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마한 사회를 국(國)연맹체 사회로 파악하여 그 맹주국으로서 익산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건마국과, 그 이후의 목지국에 이어서 서울과 한강하류를 지역기반으로 하는 백제국 중심의 마한연맹체로 설명하기도 한다.

특히 마한의 중심세력으로서 삼한 소국들을 정치적으로 이끌어 왔던 “목지국”에 대한 연맹체 맹주국 관련 내용은 「삼국지」 한전에 “진왕(辰王)은 월지국(月支國은 목지국과 같음)을 다스린다”라 쓰여 있다. 그리고 변진(弁辰)전에는 24개국 명칭을 소개하고 “그 중에서 12국은 진왕에 신속되어 있다. 진왕은 항상 마한 사람이 왕을 삼아 대대로 세습했으며, 진왕이 자립하여 왕이 되지 못하였다”라 되어 있다. 한편 「후한서」 한전에서는 삼한은 “모두 옛날에는 진국이었다” 그리고 “마한이 가장 강대하며 그 종족들이 함께 왕을 세워 진왕으로 삼아 목지국에 도읍하여 전체 삼한지역의 왕으로 군림하는데, 모든 국왕의 선대는 모두 마한 종족 사람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사서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진왕은 마한 54개국과 변진 12개국을 통치하는 총왕(總王) 성격의 왕이었으며, 도읍은 목지국으로 정리될 수 있다.

목지국의 구체적 실상을 규명하기 위하여 진왕의 실체에 대한 접근 못지않게 주요한 관심은 목지국의 위치 비정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다. 우선 준왕의 남천지를 마한과 한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목지국의 위치를 일치해서 보는 견해가 많다. 또는 준왕의 남천지와 마한의 중심세력의 위치를 달리 보거나 시대에 따른 중심권 이동을 고려해서 목지국의 위치를 비정하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고고학적인 자료를 참고해서 목지국 위치로 지목되는 지역은 한강 중류지역의 서남쪽 철기문화 관련 분포지역, 중서부 이남의 직산이 포함되는 아산만 일대, 익산을 포함하는 금강유역, 영산강유역의 나주지역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들 지역들은 문헌사학계에서도 세부적으로 차이는 나지만 포괄적으로 위의 세 지역을 마한의 중심지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삼국지」와 「후한서」에 “준왕의 후손은 멸망하였으나 지금도 한인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다” 라거나, “준왕 절멸이후 마한 사람들이 다시 자립하여 진왕이 되었다”는 기사가 주목된다. 두 사서의 기록에서는 공통적으로 준왕 이후의 마한은 이전과의 연속적 관계를 맺고 있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적인 자료로 보면 마한의 준왕계 절멸이후 새롭게 등장하는 마한의 왕은 마한 성립기의 토광묘 집단과는 계승적 관계가 없는 아산만 일대의 보령 관창리와 같은 주구묘 축조집단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마한 전역에서 주구묘계통의 분묘가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아산만 일대를 목지국으로 비정할 수 있으며, 마한의 중심세력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배경에는 충청, 전라지역 토착민들이 가졌던 강력한 한(韓)의 문화적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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