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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이슈&스토리] 세기의 기증, 이건희 컬렉션

세상 밖으로 나온 세계의 자산… 이제 우리 곁에 다가올 시간

 

국립중앙박물관에 9797건 2만1600여점 기증
정선 '인왕제색도' 등 국보 14·보물 46건 포함
1946년 개관후 전체 기증문화재의 43% 달해
국립현대미술관도 1400여점 '사상 최대 규모'

문체부 이달 '이건희 미술관' 신설 계획 발표
경기도 '균형발전' 내세워 북부에 건립 요구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묘소' 유치 명분으로
용인·평택·오산도 건의… 부산·대구도 관심

기증품 내달부터 잇단 전시… 연구 활력 기대

 

 

올 상반기 문화계에서 가장 큰 이슈를 뽑으라면 단연 '이건희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 측이 기증한 2만여 점의 문화재와 미술품은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문화에 대한 관심을 크게 끌어올렸다.

일단 기증된 작품 수가 어마어마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9천797건 2만1천600여 점이, 국립현대미술관에는 1천226건 1천400여 점이 기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1946년 개관 이래 수집한 기증품이 5만여 점으로 집계되는데 이번 기증은 기증된 문화재의 약 43%에 달하는 수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개관한 뒤 1만200여 점을 수집했고, 5천400여 점의 기증품을 받았다. 이번에 기증된 1천400여 점의 미술품은 사상 유례없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이건희 컬렉션' 왜 이슈가 됐을까

이건희 컬렉션이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기증품의 수뿐만 아니라 기증품 각각이 가진 가치에 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국내외 예술가들의 작품과 보물·국보급의 문화재들이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도약시켰다.

기증품 중에는 겸재 정선의 '정선필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고려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단원 김홍도의 마지막 그림인 '김홍도필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 포함돼 있다.

이 밖에도 통일신라 인화문토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도자류와 서화, 불교미술, 금속공예 등 한국의 고고·미술사를 아우르고 있다.

미술품은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등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미술품 460점과 모네, 고갱, 르누아르, 샤갈, 달리 등 세계적 거장들의 대표작이 포함돼 있다.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등 회화가 대다수이다.

이 외에도 판화, 드로잉, 공예, 조각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으며 근현대사를 망라하고 있다.

특히 근대미술 희귀작이 여러 점 기증됐는데, 나혜석의 진작으로 확실해 진위평가의 기준이 되는 '화양전작약', 여성화가이자 이중섭의 스승이었던 백남순의 유일한 1930년대 작품 '낙원', 총 4점밖에 전해지지 않는 김종태의 유화 중 1점인 '사내아이'가 이에 해당한다.

문화계의 반응은 무척이나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문화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작품이 대중에게 선보여진다는 점과 이를 통해 더 많은 연구 등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들썩이는 대한민국

컬렉션 기증에서 시작된 이슈는 이른바 '이건희 미술관' 건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례 없는 기증으로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수 있는 미술관 신설에 대한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수장고의 상황과 많은 사람이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공유하길 바란 고인의 뜻을 고려하면 새로운 미술관의 건립은 필수 요건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이건희 컬렉션과 관련한 미술관 신설 방침을 결정해 이달 중으로 황희 문체부 장관이 직접 발표할 계획이다.

현재 문체부는 미술관 신설을 위한 TF를 구성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데, 미술관 신설 부지를 두고 전국이 떠들썩하다. 각 광역·지방자치단체마다 당위성과 인연을 내세우며 미술관 유치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을 비롯해 의령, 진주, 창원, 여수 등 유치 의사를 밝힌 지역이 전국적으로 10여 곳이다.

경기지역도 유치경쟁에 불이 붙었다. 경기도는 북부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경기북부에 건립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수원은 삼성전자 본사가 있고 이건희 회장 묘소가 있다는 점을 내세웠고, 용인과 평택은 삼성전자 사업장이 있다는 명분을, 오산은 수도 남부권 문화관광단지 활성화를 내세웠다.

대구시는 '이건희 헤리티지 센터'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건립에 드는 비용 2천500억원을 전액 시비 또는 시민 성금으로 충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저마다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며 유치 의사를 강력하게 밝히고 있는 만큼 과연 미술관이 어디에 들어서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근대미술관 설립에 대한 요구 목소리도 커져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작품 가운데 '근대작가(1930년 이전 출생 작가)'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의 작품 수는 860점에 이른다. 이는 전체 기증품의 약 58%를 차지한다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미술계에서는 '근대미술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박물관과 미술관은 고대와 현대 사이에서 근대가 실종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미술계 인사 약 380명은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발족했다. 이들은 '이건희 컬렉션'을 보여주는 '이건희 미술관'이 아니라 기증 작품을 포함한 근대미술품을 모은 국립미술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족식에 참석한 미술사학자 최열은 "선진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고대·중세·근대·현대 4관 체제가 보통인데 우리는 고대를 다루는 박물관과 현대미술관뿐인 2관 체제"라고 지적하며 "근대가 실종된 기형적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오늘의 대한민국 정체성 형성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시기인 근대의 정신과 물질을 상징하는 국립근대미술관의 존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하며 "이건희 소장품의 국가 기증을 역사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한다면 오랫동안 그늘 속에 버려져 왔던 근대의 영혼과 감성, 그리고 고통을 극복해 온 근대의 역사가 장엄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시 우뚝 설 것"이라고 밝혔다.

# '이건희 컬렉션' 전시 이어져…활발한 연구 기대

우리나라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은 이번 기증으로 훌륭한 문화적 자산을 단번에 풍성히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해외 유명 박물관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 문체부의 설명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전시는 물론 역사적·예술적·미술사적 가치에 대한 연구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기증품에 대한 전시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7월부터 대표 기증품을 선별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 공개전(가제)'을 시작으로 유물을 공개할 예정이다.

내년 10월에는 기증품 중 대표 명품을 선별 공개하는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명품전(가제)'을 개최하고, 13개 지방소속박물관 전시와 국외 주요 박물관 한국실 전시 등에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8월 서울관에서 '이건희컬렉션 1부: 근대명품(가제)'을 통해 한국 근현대 작품 40여점을, 12월에는 '이건희컬렉션 2부: 해외거장(가제)'을 통해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등의 작품을 선보이다. 내년 3월에는 '이건희컬렉션 3부: 이중섭 특별전'으로 이중섭의 회화, 드로잉, 엽서화 104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덕수궁관에서는 다음 달 개최되는 '한국미, 어제와 오늘' 전시에 일부 작품을 선보이고 올해 11월 '박수근' 회고전에 이건희 컬렉션이 대거 선보이게 된다.

과천관에서는 이건희 컬렉션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및 아카이브의 새로운 만남을 주제로 한 '새로운 만남'을 내년 4월과 9월에 순차 개막하고, 청주관에서는 보이는 수장고를 통해 기증품 대표작을 심층 감상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 지역의 미술관과 연계한 특별 순회전을 통해 많은 국민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사진/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삼성 제공,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