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강릉 25.3℃
  • 맑음서울 19.9℃
  • 맑음인천 18.7℃
  • 맑음원주 21.3℃
  • 맑음수원 18.9℃
  • 맑음청주 22.7℃
  • 맑음대전 21.1℃
  • 맑음포항 24.5℃
  • 맑음대구 22.2℃
  • 맑음전주 19.9℃
  • 맑음울산 21.8℃
  • 맑음창원 18.5℃
  • 맑음광주 22.4℃
  • 구름조금부산 18.3℃
  • 맑음순천 14.3℃
  • 맑음홍성(예) 18.8℃
  • 구름조금제주 19.7℃
  • 맑음김해시 19.6℃
  • 맑음구미 19.4℃
기상청 제공
메뉴

(전북일보)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43) 최창학, 폭력의 시대 그 실존과 불안을 증언하다

 

 

최창학 소설가는 일제강점기 후반인 1941년 7월 26일, 전북 익산시 오산면에서 태어났다. 1948년에 오산남초등학교에 입학하였고, 1954년 이리로 이사하여 이리동중과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4·19 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960년에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졸업 후 신구문화사와 민음사 등에서 근무하였으며, 1978년부터는 서울예술전문대학에서 문예창작과의 교수로 근무하다가 2007년 2월 정년 퇴임하였다.

그는 1968년 중편 「창(槍)을 『창작과 비평사』에 발표하면서 문단의 이목을 끌었다. 이 외에도 『바다 위를 나는 목』(1979), 『하늘의 침묵』((1983), 『긴 꿈속의 불』((1988), 『창(槍)』(1990), 『가사자의 꿈』(1994), 『아우슈비츠』(1997), 『케모포트』(2019)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최창학은 해방과 전쟁, 유신독재 시대를 살아오면서 한순간도 불안과 공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손주를 돌보기 위해서 상경했던 부모가 자신의 집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는 사고를 겪었고, 첫아들의 죽음을 아프게 대면해야 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전쟁과 사회적 갈등으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는 불안과 공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작가의 이러한 체험적 사실은 그의 소설 속에서 그대로 변주되면서 ‘불안과 공포’로 특징되는 그만의 작품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의 중편소설 『창(槍)』(1990)은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소설에서는 가족의 죽음과 자신의 불치병에서 비롯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한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열정을 갖지 못한 시대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주인공 이상(李常)은 살아 있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면도날로 팔의 동맥을 끊는 공상을 하는 ‘자학의 광기’를 보여 준다. 엄숙희 전북대 교수는 〈최창학 소설에 나타난 불안과 증상으로서의 광기〉라는 연구에서 소설 『창(槍)』의 주인공 이상(李常)이 겪게 되는 불안은 작가가 경험했던 유신 시대의 불안 등 당대의 불모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이 작품을 바라보는 당대의 시선은 크게 엇갈린 것 같다.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일상 의식의 흐름을 기록한 보기 드문 문제작’이라고 하였지만, 평론가 김현은 ‘타기해야 할 소비 문화적 외설소설(猥褻小說)’에 불과하다고 했다.

최창학은 1997년까지 100여 편의 작품을 왕성하게 쏟아냈다. 그런 그가 1997년부터 22년 동안 절필한 사건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가 절필하게 된 사연은 엄숙희 교수의 연구에 자세하게 나온다. 이 연구에 의하면, 작가는 소설이 신문에 연재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신문사 지인으로부터 거절하기 어려운 소설 연재 의뢰를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하늘의 침묵』이라는 소설을 신문에 연재하게 되었는데, 이 소설이 대중의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 후 1983년, 고려원에서 ‘문제작만 써왔던 최창학이 백만 독자와의 악수를 위해 최초로 시도한 대중소설’이라는 광고 문안까지 담긴 책을 출간한 것이다. 그 후 여러 곳으로부터 드라마와 영화 제작 제의를 받았지만, 최창학은 이는 곧 ‘소설의 죽음’이라며 극심한 자괴감에 시달렸다. 이에 최창학은 소설의 신문 연재를 치명적인 실수로 생각했고, 자신을 단죄하는 차원에서 절필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의 흥미에 영합한 자신을 ‘진정한 작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투철한 작가 정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최창학은 그 후 어떤 작품도 내지 않다가 대장암으로 투병하면서 최후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것이 2019년 12월에 출판한, 제목조차 낯선 『케모포트』라는 소설이다. ‘케모포트’란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해 어깻죽지 안쪽에 심어 놓은 장치라고 한다. 그러니까 ‘케모포트’는 암 환자에게 약물을 몸 안으로 넣은 투입구인 셈이다. 이 소설에서 ‘케모포트’는 대장암과 싸우는 격전지인 동시에 절망적인 순간에도 작가에게 소설을 쓰게 한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대장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항암 주사를 맞아가며 쓴 회고록이나 유언장 같은 작품이다. 암 투병기와 젊은 시절 아내와의 첫 만남, 연애, 결혼, 여제자들과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교차하고 있으며, ‘죽어가면서 아내에게’라는 부제가 보여 주듯 아내에게 모든 것을 고해하고 용서를 구하는 소설이다. 또한, 이 소설은 소설가 신경숙, 시인 지연의, 제자 조복순 등의 실명이 거론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창학 소설가는 우리 고장 익산 출신이지만, 작품활동은 주로 서울에서 하였다. 그래서 전북 문단보다는 중앙 문단에 더 널리 알려진 분으로 그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점을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전북에서부터 큰 관심과 사랑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 참고자료

엄숙희 〈최창학 소설에 나타난 불안과 증상으로서의 광기>

이승준 〈최창학의 중편소설 『창(槍)』의 연구 :소설 미학적 실험에 관하여〉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