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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호남의 수부 ‘전라감영’ 그 모습을 드러내다

3관문인 내삼문, 전라감영 정문으로
선화당·관풍각·연신당·내아 등 복원·웅장
선화당·관풍각 현판, 과거 사진 통해 컴퓨터그래픽으로 재연
자료 없는 연신당 현판, 송현숙 서예가 직접 작성

 

21일 오후 전주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 사업지. 성인키 170㎝의 키와 비슷한 담벼락이 보였다. 돌 사이사이에 시멘트로 덮은 후 작은 기와를 얹은 담벼락이었다. 담벼락 위에는 전라감영 내부의 모습을 보긴 힘들었지만 하늘과 기와가 보였다.

원래 전라감영 내부 세 번째 출입문인 내삼문(內三門)은 이번 재창조 공사과정에서 전라감영의 정문으로 새롭게 자리했다. 해당 문을 열자 정가운데 과거 전라관찰사가 걷던 검은색 돌로 만들어진 길이 나왔다. 이 길은 선화당(宣化堂)으로 연결됐다. 선화당은 조선시대 관찰사 집무실이자 전라감영의 핵심 건물로 높이 10.9m 팔작지붕 아래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로 웅장한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됐다.

선화당 복원에 사용한 목재는 대들보(대경목) 4개, 기둥 37개 등 수령 100년 이상 된 소나무만 40개 이상이다. 지붕을 떠받치는 서까래와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창방 등을 합하면 족히 200개 이상 소요됐다. 건물 기초이자 거대 기둥을 떠받치는 주춧돌은 익산미륵사지석탑 재료로도 활용됐던 익산 황등석을 썼다. 무게 0.6t 남짓한 돌을 석공들이 정과 망치로 2∼3개월 동안 쪼고 다듬었다. 기와와 온돌, 미장, 창호 등도 공종별로 5∼6명의 기능인들이 손을 모아 빚어낸 작품이다.
 
선화당 옆으로는 관찰사가 민정과 풍속을 살피던 누각인 관풍각(觀風閣)이 자리했다. 선화당과 관풍각 사이에는 전라관찰사가 마셨을 것으로 보이는 우물도 세밀하게 재현했다. 선화당 뒷편에는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관청의 안채인 내아(內衙)와 관찰사 휴식처인 연신당(燕申堂)이 들어섰다. 내삼문 좌측 끄트머리에는 비장 사무 지원을 위한 보조공간인 비장청(裨將廳) 행랑이 포진했다. 내삼문과 비장청 행랑은 단아한 맞배지붕으로, 나머지는 모두 크고 긴 추녀를 지닌 팔작지붕 형태를 갖췄다.

‘임금의 덕을 베풂으로써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을 품은 선화당과 관풍각 현판은 일제강점기 때 촬영된 사진 글씨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다.

다만 자료로 존재하지 않는 연신당의 현판은 중견 서예가 이당 송현숙 선생이 썼다.

아쉬운 부분도 보였다. 재창조된 전라감영은 대부분 정통기법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통기법이 아닌 시멘트를 많이 사용했다는 부분이 다소 아쉬웠다.

전라감영은 전주부성의 핵심 관청으로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라도와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56개 군·현을 관할하던 지방통치행정기구였다. 하지만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소실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주시 전통문화유산과 관계자는 “당초 다음달 전라감영을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최정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