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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30년 만에 대좌 공개된 백제 최대 석불 직접 보니…

보물 제45호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최근 문화재청, 나무불단을 강화유리로 교체
대좌 온전히 드러나…석불 규모 체감할 수 있어

 

“이렇게 웅장한 지 몰랐습니다. 석불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백제시대 최대 석불인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말 그대로 웅장했다. 특히 그동안 보지 못했던 대좌를 보니 그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 6일 처음 석불사 입구를 들어갈 때는 의문이 들었다. 작은 마당에 작은 사찰. 이 곳에 보물 45호 석조여래좌상이 있을 법한 공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석불사의 대웅전을 들어서자 큰 석조여래좌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대좌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부처의 모습이었다. 양 옆에는 우리가 흔히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노란 부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강화유리를 통해 볼 수 있는 대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이 대좌는 나무불단에 가려져 있어 그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사찰 관계자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대좌가 모습이 훤히 드러나 장대해진 불상 앞에서 더욱 엄숙해지게 만든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대좌를 포함해 불상이 2.68m, 광배가 받침돌을 포함해 3.93m로 백제의 환조 불상 중 가장 크기가 크다.

불상은 처음 발견됐을 때부터 사라지고 없던 불두(부처의 머리)만 새로 만들었을 뿐, 불신(佛身), 광배(光背), 대좌(臺座)는 고스란히 잘 남아 있어 백제 미술의 백미(白眉)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지난달 문화재청은 나무강단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대좌의 주변을 강화유리로 바꾸는 작업을 마쳤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당당한 어깨와 균형잡힌 몸매, 넓은 하체 등에서 서툰 듯 하면서도 탄력적이고 우아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자락은 길게 내려져서 사각형의 대좌를 덮고 있는데, 앞자락은 U자형, 좌우로는 Ω형의 주름이 대칭으로 2단씩 표현되어 있다. 왼손은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려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세번째와 네번째 손가락을 구부려 다리에 올려놓은 손모양을 하고 있다.

광배의 중앙에는 둥근 머리광배가 볼록 나와있고 그 안에 16개의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바깥에는 방사선으로 퍼진 것이 특징이다. 몸 광배도 볼록하게 나와있고 바깥부분에는 불꽃무늬를 배경으로 7구의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땀을 흘리는 석불로도 유명하다. 1950년 한국전쟁과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약 보름전,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전, 1997년 IMF 외환위기,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전에도 땀을 흘렸다. 국가의 큰 일이나 흉사가 생길때마다 땀을 흘린다 해서 땀 흘리는 석불이라는 별칭이 붙여질 정도다.

전북의 한 역사학자는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과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에 비견되는 백제석불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면서 “더욱이 암벽에 조각한 마애불이 아니고 완전히 독립된 입체조각이라는 점에서 백제 석조물의 중요성을 웅변해주는 불상이다. 많은 연구와 관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최정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