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서해 상공을 날아 1시간 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다.
그해 3월 독일을 국빈 방문 중이던 김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내용의 '베를린 선언'을 발표하고 북한이 회담 개최 의사를 밝힌 지 3개월여 만에 남한 대통령의 전용기가 북한 공항에 착륙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잠시 후 꽃술을 흔들며 환호하는 평양시민 사이로 갈색 점퍼 차림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수행원과 함께 등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내 비행기 계단 바로 앞까지 성큼성큼 다가가 김 대통령을 기다렸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밝은 미소로 등장한 김 대통령은 자신을 기다리는 김 위원장을 향해 박수로 첫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양 정상은 두손을 꼭 잡은 채 인사를 나눴다. 역사적인 순간, 극적인 순간이었다. 분단 55년 만에 성사된 남북 정상의 만남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 시간 서울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 모인 1,200여명의 내외신 기자는 이 장면을 앞다퉈 전 세계에 타전했다. 국민의 시선도 온통 TV 생중계 화면에 쏠렸다. 숨죽이며 이 모습을 지켜보던 많은 이는 눈물을 흘렸다. 남북 정상이 만나는 순간은 다음 날(6월14일) 거의 모든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오석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