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은 설렘이다.
첫 여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1970~198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그 시절 제대로 된 첫 여행의 기억은 아마도 수학여행이 아닐까 싶다. 수학여행이 무엇인가. 그대로 풀이하자면 학업을 닦는(수학·修學) 여행이다. 뜻이 이러니 포지션은 조금 어정쩡했지만 설렘의 크기는 지금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부산·온양·공주·대전·서울 … 전국서 올라온 관광버스 빼곡 막 중학생 된 까까머리 소년, 똑단발 소녀 첫 여행의 설렘 전설 속 `흔들바위' 밀어보고 여인숙 촌티 벗은 여관서 스무명 한방 뒹굴며 추억 쌓아 지금이야 수학여행 하면 자연스레`해외여행'을 떠올리지만 예전 중학생들은 강원도 내 관광지를 순회하는 것이 수학여행의 전부였다. 고등학생이 돼야 강원도 땅을 떠나 경주 불국사를 갈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강원도 여행을 떠나야 했던 중학생들에게 강릉 경포대, 월정사, 설악산 등은 많은 학교에서 선호하는 장소였다. 특히 한 사람이 밀든 백 사람이 밀든 똑같이 흔들린다는 전설(?) 속의 흔들바위는 설악산에 대한 환상을 키우기 충분했다. 중학교에 진학해 선배들의 수학여행 경험담까지 듣게 되면서 까까머리, 똑단발들에게 수학여행은 꼭 챙겨야 할 성장 관문 같은 역할을 했다. 드디어 수학여행 떠나는 날. 버스 안에서는 연신 `와~'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다다 `와~', 울산바위다 `와~' 이런 식이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의 장기자랑은 또 수학여행의 백미였다. 넓은 동해를 처음 본 시골뜨기들은 강릉 해변가 여관에서 파도 소리와 친구들의 재잘거림으로 밤을 새웠다. 먼저 잠이 들면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으니 선생님의 `소등, 취침' 외침에도 더 악착같이 눈을 희번덕거렸을 게다. 버스로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은 새우잠을 잘 찬스다.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의 수만큼 쌓여 있을 수백, 수천 가지의 추억들. 지금도 수학여행은 흑백사진을 보는 것처럼 기억의 주차장에 파킹돼 있다 강원일보 1977년 1월1일자 5면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은빛 영봉에 정사년(丁巳年)의 새날이 밝았다_설악권 개발공사 새벽 적막 깨뜨려.' 헤드라인과 부제목은 설악산 개발의 신호탄이었다. 설악동 신단지공사는 노루목(속초시 설악동 170)에서 피골(양양군 강현면 상복2리)을 연결하는 36만평 부지 내에 관광단지를 건설하는 내용이다. 이후 국책사업으로 진행된 설악산 관광개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자녀들을 대동하고 설악산 관광호텔을 찾기도 했으며 강원일보 1978년 11월16일자 `속초시내 도로 전면보수 시급'이라는 기사를 읽은 박 전 대통령은 당시 김무연 지사에게 설악동 입구인 물치리에서 영랑호까지 11㎞ 도로 포장비용 4억원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설악산은 당시 강원도는 물론이고 전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수학여행지 중 한 곳이었다.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던 설악산은 대형 숙박시설 등 관광시설이 갖춰지면서 전국의 학생들이 즐겨 찾는 수학여행지로 급부상했다. 설악산은 옛날 조선 시대 많은 명사가 즐겨 찾았던 명승이다. 선조들이 남긴 새김글과 기행문은 설악산의 품격을 높였다. 1788년 단원 김홍도 역시 토왕성폭포, 은선대, 비선대, 계조암, 영랑호 등 설악산을 산수화로 남겨 풍부한 산림문화유산을 남겼다. ①사진은 설악동 관광단지 주차장이다. 주차장은 전국에서 올라온 관광버스들이 빼곡하게 주차돼 있다. 백제관광, 부산관광의 광고 글귀가 적힌 차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다. 부산, 온양, 공주, 대전, 서울, 포항 등 버스에 적힌 도시 이름만 봐도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수학여행 행렬에 동참한 학생들은 전설 속의 흔들바위도 밀어 보고 육중한 바위와 소나무가 장식한 산세에 넋을 반쯤 내려놓고 다녔다. 설악산은 전국의 학생이면 누구나 한번은 찾아오는 명승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②사진은 설악동 신단지 내 숙박시설이다. 뉴 설악여관이란 이름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여인숙이란 촌티를 벗은 여관은 이후 설악장, 설악모텔, 설악호텔, 설악파크로 개명하며 변해 가는 시대를 담아내려고 애를 쓰게 된다. 중학생 수학여행 시절 20~30명이 한 방에서 뒹굴며 꿈속에도 함께하는 친구들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마도 사진 속의 한 건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1978~1980년대 설악동은 막 중학생이 된 소년, 소녀의 첫 여행을 책임지던 추억의 장소였다. 김남덕·오석기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