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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4·3 수형인 84명, 70년 흘러도 '전과자 신세'

2530명 중 84명 신원 미확인…4·3희생자로 미 결정
무죄 판결 재심재판도 받지 못해 명예회복은 막막
김창범 유족회장 "특별 재심 등 일괄 무죄 선고 필요"

 

제주4·3수형인 84명이 여전히 전과자로 남아있어서 무죄를 통한 명예회복이 요구되고 있다.

 

1일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회장 김창범)에 따르면 4·3수형인 2530명 중 현재 84명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서 4·3희생자는 물론 재심 결정도 이뤄지지 못했다.

 

4·3희생자유족회는 8차 희생자 추가신고 기간(2023년 1~6월)에 734명의 무연고 수형인을 4·3희생자로 결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이들이 4·3희생자로 결정돼야 4·3특별법에 의거, 재심 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직권 재심은 검사가 국가를 상대로 직접 재심을 청구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수형인 1711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나머지 819명 중 550명은 유족·변호인 등의 재심청구에 따른 ‘특별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특별 재심은 공판과 변론, 선고가 한 번에 이뤄지는 재심 절차다.

 

김창범 유족회장은 지난달 29일 이재명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희생자로 결정되지 못한 수형인에 대해 특별 재심를 통해 명예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김 회장은 “형무소에 복역했던 수형인 대다수가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현재 80여 명은 명예회복은커녕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아서 억울한 상황”이라며 “재심 재판은 받지 못하더라도 일괄 4·3희생자로 결정해 명예라도 회복시켜 달라”고 밝혔다.

 

제주도는 수형인 명부에는 있지만 제적부(옛 호적부)는 물론 고향 주소지에도 거주한 기록이 없는 수형인 84명이 가족들이 피해를 볼까봐 가명이나 아명을 쓰거나 사실과 다른 주소를 기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수형인 명부를 작성했던 시기가 1950년 한국전쟁 전후여서 일일이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해 성명·나이·직업·본적·형량·수형장소·이감기록 일부에서 오기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 관계자는 “신원이 특정돼야만 4·3희생자에 오르고 재심 재판에 따른 공소장을 작성할 수 있는데, 80여 명에 대한 주소지와 본적지까지 확인해도 이들의 본명은 밝혀내지 못했다”며 “4·3위원회 역시 이 문제를 놓고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4·3유족회 측은 “수형인 84명의 신원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명예회복을 미루고 국가가 방치하는 것은 헌법의 명시한 기본권에 위배된다”며 “4·3특별법 14조(특별재심)의 ‘희생자’에 한해서만 명예회복이 가능한 조문부터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요청했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은 유족이나 연고자가 없는 수형인의 경우 보증인의 진술 또는 사진·일기·편지·기록물 등 증거자료 토대로 이들을 희생자로 결정한 후 직권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이끌어 냈다.

 

다만, 수형인 가운에 일가족의 몰살 등으로 피해 진술을 해 줄 보증인마저 없는 경우에는 피해 진술·증언 등 재판의 기본요건을 갖추지 못해 재심 재판에서 각하 사유가 되면서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못했다.

 

한편, 제주4·3이 한창이던 1948년 12월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와 1949년 6~7월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도민은 2530명이다.

 

선고 내용을 보면 사형 384명, 무기징역 305명, 징역 20년 97명, 징역 15년 570명, 징역 7년 706명, 징역 5년 이하 466명, 미확인 2명 등이다.

 

당시 제주도에는 형무소(교도소)가 없어서 전국 15개 형무소에 분산 수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