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여름방학이 눈앞에 다가왔다. 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시달리는 어린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업에 앞서 시원한 휴식이다. 방학을 앞두고 부산에서 가까운 경북 경주시에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폭염 속에서 야외 여행은 생각하기조차 싫다. 다행히 이번 여행의 포인트는 실내 민간박물관이다.

■세계자동차박물관
뜨거운 햇빛을 피하려고 주차장 나무 그늘 아래에 차를 세우고 불과 30여m를 걸었는데도 온몸은 불덩이처럼 화끈거린다. 얼른 세계자동차박물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관람객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뜻밖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실제로 타고 다녔다는 검은색 벤츠 자동차다. 종류만 똑같은 게 아닌지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설명문을 읽어보니 그가 직접 이용한 1987년산 ‘벤츠 560’이 맞는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 일가 재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이 자동차도 매물로 나왔는데 경주 출신 기업가가 사들여 세계자동차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귀여운 빨간색 자동차가 나란히 서 있다. 그리스어로 ‘작고 예쁘다’는 뜻인 ‘칼리스타’다. 영국 팬더가 생산하던 차였는데 팬더가 1987년 쌍용자동차에 넘어가면서 이 자동차도 쌍용에서 만들게 됐다. 어두운 역사를 상징하는 전 전 대통령의 검은색 벤츠 옆에 선 칼리스타는 밝고 활기찬 민주화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여 이색적이다.

세계자동차박물관은 8년 전인 2017년 개관한 비교적 젊은 시설이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부터 클래식 자동차를 거쳐 경주용 자동차,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인 포니에 이르기까지 100여 대의 자동차를 볼 수 있어 어린이, 학생은 물론 성인 남성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박물관 1층은 클래식 자동차 전시공간이다. 마차처럼 보이는 세계 최초의 가솔린 엔진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전시실로 들어오는 관람객을 반갑게 맞는다. 설명문 중에 ‘말 없이 달리는 마차’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 자동차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두 발로 바퀴를 돌려야 달릴 수 있을 것 같거나, 제대로 달릴 수 있을지 의문까지 드는 모습이지만 자동차 역사에 전환점을 이룬 차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다시 한 번 눈길이 간다.

‘페이턴트 모터바겐’ 외에도 생전 처음 보는 초창기 자동차는 한두 대가 아니다. 1913년 미국 험프모빌에서 만든 ‘험포모빌20’, 쉐보레에서 생산한 ‘H3(1915년)’와 ‘슈페리어V’(1926년), 포드의 1929년 제품 ’모델A’ 등이 나란히 줄지어 선 모습은 황홀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면 눈은 더 휘둥그레진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벤츠의 ‘540K 바론’과 부가티의 ‘부가티 57’의 위용에 눈이 부시지 않을 수 없다. 부가티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가장 아름다운 차’로 불린 자동차였는데 명성만큼이나 외관이 아름답다. 바론은 아돌프 히틀러가 “가장 사랑하는 자동차”라고 했을 정도로 아끼던 차종이었다.

2층 전시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자동차도 두 대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생전 전국 산업시찰을 다닐 때 타고 다녔다는 크라이슬러의 ‘크라이슬러 뉴요커’와 그가 피살된 이후 장례식에서 영정 차량으로 사용된 올즈모빌의 ‘델타88로얄’이다. 단순히 그가 타고 다닌 자동차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장면을 잘 설명해주는 유물이라고 생각하면 그에게 비판적인 사람이라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2층에는 또 1987년 현대자동차가 만든 포니와 미니트럭 포니픽업은 물론 1956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한 재규어의 ‘D타입’,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운전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포르쉐의 ‘550스파이더’ 등 각종 자동차가 즐비하다.

■키덜트뮤지엄
세계자동차박물관 바로 앞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떠 만든 ‘보문콜로세움’이라는 건물이 있다. 1층에는 40~50대 이상 세대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린이, 학생에게는 30~40년 전 생활상을 알려주는 ‘키덜트뮤지엄’이라는 시설이 있다. 2개 층으로 이뤄진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니 전시된 물품은 정말 많다. 영사기, 전축, 라디오, 카세트플레이어 등 전자기기에서부터 스타워즈, 건담 등 캐릭터 인형, 자개 등 각종 고가구와 집기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공간이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둘러보면 정말 재미있는 시설이 될 수 있지만 아쉬움이 많다. 제대로 분류, 정리가 안 된 데다 세계자동차박물관과는 달리 스토리가 입혀지지 않은 게 치명적 약점이다. 각종 옛 물품을 그냥 쌓아놓은 느낌이다. 게다가 무더위인데도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약간 덥다.

■바니베어뮤지엄
인터넷에서 2021년 ‘리뉴얼 재개장’했다는 바니베어뮤지엄(박물관)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전국에 산재한 그저 그런 곰 인형 박물관이 아닐까 반신반의했다. 그러다 댓글 중에서 ‘예상 외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는 내용이 많은 데다 ‘실바니안 패밀리 한국지사 공식 인정, 테디베어와 합작한 시설’이라는 내용을 본 뒤 용기를 내어 자동차 머리를 돌렸다.
미리 결론부터 밝히자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한마디로 토끼, 곰 인형만 가득 쌓아놓은 시설이 아니라 이야기를 입힌 스토리 박물관이다. 한 일본 성인 방문객이 “스고이(대단하네)”라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전혀 과장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입구인 ‘유리 피라미드’를 모방한 것처럼 보이는 ‘미니 유리 피라미드’로 들어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입장권을 사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먼저 폴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들’을 패러디한 ‘타히티의 곰들’을 포함한 다양한 패러디 그림이 붙어 있다. 주인공은 물론 테디 베어다.
박물관 여행은 흥미로운 테디 베어 그림 앞과 높이 5m는 됨직한 초대형 보라색 토끼 앞에서 사진 한 장씩 찍는 것에서 시작한다. 주택가 골목처럼 이어지는 복도에는 테디 베어와 다양한 실바니안 패밀리 동물을 활용한 병원, 유치원, 학교, 시장 등 각종 포토존 공간이 마련돼 역시 사진 찍는 재미가 쏠쏠하다.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테디 베어 마차에서 인증샷을 찍고 지나가면 테디 베어를 이용해 박혁거세의 탄생과 첨성대, 석굴암, 불국사 경주의 역사와 유적지를 소개하는 ‘신라 여행’ 공간이 나온다. 곰 여왕, 곰 승려, 곰 석공, 곰 장군 등 다양한 테디 베어 캐릭터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카메라 셔터나 휴대폰 버튼을 누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만든다.

‘신라 여행’을 끝내면 ‘신비한 해저 여행’이 나온다. 테디 베어와 실바니안 패밀리 동물들을 활용해 해저와 우주, 북극을 묘사한 공간이다. 노란색, 파란색, 분홍색, 주황색 등 다양한 조명이 순환하는 가운데 휴식하는 곰 인어공주, 빙벽을 타는 곰 등반가, 유영하는 곰 우주인 등이 관람객의 미소를 자아낸다.
바니베어뮤지엄 탐험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에서는 20세기 미국 팝아트의 제왕이라는 앤디 워홀, 그래피티 예술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그림을 차용한 다양한 동물 인형이 전시돼 있다. 여기에 불운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과 ‘터미네이터’, ‘인크레더블’ 등 각종 영화 장면을 묘사한 인형,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닮은 인형까지 독특한 디자인이 끝없이 이어진다.

바니베어뮤지엄의 마지막 공간은 ‘타임머신 여행’이다. 1억 7000만 년 전 공룡이 살던 시대로 간 곰 인형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잔인한 육식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옆에서 탐험하는 곰, 선량한 초식 공룡 파라사우롤로푸스를 타고 다니는 곰, 하늘을 나는 공룡 케찰코아툴루스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등산하는 곰 등 다양한 장면을 묘사했다.

바니베어뮤지엄은 단순히 실바니안 패밀리와 테디 베어 인형만 나열하거나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만 전시한다면 실망스럽기 그지없을 시설에 스토리를 입혀 놀라운 변신을 일으킨 곳이다. 어린이는 물론 성인도 끝없이 이어지는 각종 인형의 이야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