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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광주 찾은 리암 길릭, 광주시립미술관서 6월 27일까지 ‘워크 라이프 이펙트’전

“일과 삶 사이, 추상적 꿈의 공간 표현”
80년 5월 연상 ‘눈 속의 공장’
꼭 전시하고 싶었던 작품
지역 젊은 작가들과 대화 시간도

 

광주시립미술관 로비에는 유려한 곡선 형태의 알록달록한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사람들은 탁자 위에 걸터 앉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세계적인 설치미술 작가이자 관계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리암 길릭의 작품 ‘중용의 툴박스&광주 스툴’이다. 지난달 30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 참가한 리암 길릭은 녹색 탁자 위에 앉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광주시립미술관(6월27일까지)에서 열리는 리암 길릭전은 아시아권 미술관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그는 지난 15일 뉴욕을 떠나 한국에 도착했고 서울의 한옥에서 자가 격리를 마친 후 광주를 찾았다.
 

“자가격리를 하면서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을 제대로 경험했다. 요리도 하고, 책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었는데 19세기 문학의 속도가 자가격리 속도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았다.(웃음) 내가 사는 뉴욕과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조심하면서 일상을 이어가는 모습이 좋아 보이고, 그 모습들에서 위안도 받았다.”

리암 길릭은 전시 준비를 위해 지나 2019년 광주를 방문했었다. 미술관이 자리한 중외공원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마음에 담고, 전시장을 꼼꼼이 살펴 본 그는 당초 예정됐던 2020년 개인전을 준비했지만 코로나 19로 올해 2월말부터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전시작에는 그가 광주를 방문했을 당시 느꼈던 인상이 곳곳에 담겨 있다.
 

“대규모 전시를 현장에서 직접 세팅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다양한 메뉴얼을 가지고 100%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전통적인 방식보다 더 좋은 경험이었다. ‘이 전시는 우리 공동책임이다’는 점을 인식해 나와 미술관측 사람들이 성실하고, 꾸준하게 전시를 준비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워크 라이프 이펙트’가 주제인 이번 전시는 1~2전시실, 로비, 북라운지 등으로 확장돼 관람객들의 다양한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특징으로 일과 삶의 균형과 긴장, 도시의 다양한 풍경 등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오랜 역사 동안 예술가들이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과 방식을 조금은 알려줄 거라는 기대를 해왔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끊임없이 작업하며 그 방법들을 찾아가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고 그 갈등들을 이미지화하는 게 또 예술가다. 복잡한 도시 생활 속 형형색색의 그림자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게 내 작업 테마다. 경계가 모호해진 일과 삶 사이에서 우리는 방황한다. 그 모호함 사이에 일종의 추상적인 꿈의 공간을 만드는 게 내 작업이다.”

그는 ‘눈 속의 공장(우편 배달부의 시간)’은 꼭 선보이고 싶은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을 알린 노래 ‘그란돌라 빌라 모레나’가 자동연주되는 피아노가 놓인 작품은 각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의 유산을 떠올리게 하고, 우리에게는 자연스레 ‘오월 광주’를 소환한다.

“1980년의 어느 한 때의 명확한 행동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공간과 상황들에 관심이 많다. 예를 들면 당시, 침묵이 흐르고 있는 있는 어느 집의 풍경처럼. 아버지 쪽이 아일랜드 혈통인데 선조들이 겪었던, 또 그들로부터 들었던 아일랜드 역사가 내 작업의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 지속적인 투쟁도 의미있지만 그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큰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때로는 기억을 살려주고, 거기서 긴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누군가의 행동을 기록하는 건 의미있는 일이다.”

기존의 가벽이 제거된 전시실에는 두 개의 커다란 건축적 공간이 구축됐다. 환한 빛을 발하는 쇼윈도우 같은 공간 속으로 관람객들은 곧바로 들어갈 수 있고, 빙 돌아 ‘문’으로 진입할수도 있다.

“전시장 건물에 대한 3D 도면을 만든 후 공간 설치 작업을 진행했다. 내부 구조물이 다 들여다 보이는 건물 천정은 마치 인체의 장기처럼도 보인다. 공간의 내부와 외부가 도시와 맺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거리를 걸으며 만나는 건축물이나 가게 등이 전시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쇼윈도처럼 보이는 이 곳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 행위 자체가 예술적 요소가 된다.”

전시장에는 도심의 네온사인을 연상시키는, 복잡한 수식이 적힌 작품도 눈에 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출판한 학술논문이 제시한 공식을 적은 작품 ‘행복방정식’이다.

“사실, 행복을 알려준다는 수학방정식은 별 의미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 수학방정식을 보면서 행복에 대한 다른 사유를 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다. 딱 떨어지는 단순명료한 해결책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작품과 전시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리암 길릭은 31일에는 미술관에서 지역 청년작가들과 대화를 나눴으며 4월1일에는 조선대 미술대학에서 열린 ‘리암 길릭과 예비 작가들의 만남’에도 참여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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