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니메이션으로 또한번 흥행을 일으킨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 싱그러운 초록빛 여름을 배경으로 왁자지껄한 물놀이를 그려낸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한데 모아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담아낸 가희·진주 작가의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까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작가들은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상을 잇달아 수상하며 한국 그림책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책 시장이 질적으로 성장하면서 독자층도 확대되는 추세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따스한 감성을 불어넣은 그림책이 어린아이뿐 아니라 성인과 고령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그림책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온라인에선 ‘그림책 좋아하세요?’ ‘힐링되는 그림책 모임’ 등 그림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성인들이 작성한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책 속 주인공의 연령대가 다양화된 것도 독자층 확대의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고양, 파주 등에서 30여년간 어린이전문서점 동화나라를 운영하며 그림책을 연구해온 정병규 대표는 “최근 성인이나 노인이 등장하는 그림책이 많아지고 있다”며 “삶과 죽음, 비정규직 노동자 등 어린아이보다는 어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메시지를 담은 책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림책은 한국에서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림책은 글과 이미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연속된 장면을 펼쳐내는 분야로, 문자와 시각 언어를 동시에 다루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도서 분류 체계인 십진분류법상 대개 ‘문학’의 하위 부류에 속한다.
그림책은 앞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미지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된 요소라는 점에서 문학과 구별되는데, 이런 특성이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그림책 시장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공식 통계도 전무하다. 한국 출판계를 대표하는 단체 중 하나인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출판납본통계에서도 그림책 시장 규모를 가늠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매해 발표하는 출판납본통계에는 신간의 발행종수, 평균 발행부수와 가격, 분야별 신간 발행 종수 등이 담긴다. 협회 관계자는 “그림책은 분류 코드가 없어 주로 유아동 서적으로 분류되고 있다”고 했다.
국내 대형서점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림책 대부분은 유아동 문학으로 분류된다. A서점 도서구매팀 관계자는 “인기 캐릭터가 그려진 책, 성인을 위한 메시지가 담긴 그림책이 모두 유아동 문학으로 집계된다”며 “사진을 비롯해 시각예술의 한 장르로 성장하고 있는 그림책의 현 트렌드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