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유사〉는 도올 김용옥이 동학의 양대 경전의 하나인 〈용담유사〉를 해설한 책이다. “〈용담유사〉는 수운이라는 인간 그 자체다. 그것은 죽어 있는 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맥박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수운의 사상과 함께 절망 후회 걱정 불안 등도 거리낌 없이 표출된 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운 문학의 백미’가 있다고 한다. 동학 경전의 하나인 ‘용담유사’ 해설서 한글 가사로 ‘민중 동학’에 결정적 기여 “수운 최제우의 ‘사람이 곧 하느님’은 니체·마르크스 뛰어넘는 조선 사상” 〈동경대전〉이 한문으로 쓰였다면 〈용담유사〉는 순 한글의 4·4조 가사다. 한글이라는 데 함정이 있다. 다 알겠거니 하는데 그렇지 않다. 160년 전 한글을 오늘날 한글로 옮겨야 한다는 거다. 도올의 ‘한글 번역’은 그의 유니크한 호흡과 문장으로 풍부한 의도를 살리고 있다. 수운 최제우(1824~1864)는 예수에 맞먹는 공생애 3년 동안 자신의 삶이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극대도’를 온전히 인간세에 남기기 위한 고민 속에서 양대 동학 경전을 썼다. 그중 〈용담유사〉는 동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전국적 저력의 원천이었다. 한글 가사였기 때문에 동학이 민중의 것이
부산시가 최근 발간한 〈피란, 그때 그 사람들〉은 한국전쟁 피란민의 삶에 대한 530쪽의 구술채록집이다. 이미 부산발전연구원이 ‘부산학연구총서’로 각각 출간한 〈6·25 피란생활사-피란민의 삶과 기억〉(2016)이 9명, 〈6·25 피란민의 자전기록-부산의 기억과 삶〉(2017)이 2명의 생애를 채록한 것에 견줄 때 이번 자료집은 40명의 증언을 담았다. 총 용역비가 총 1억 5000만 원으로 상당하다. 이번 자료집은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부산시가 추진한 ‘피란수도 부산 구술채록 및 구술사 자료집 발간 연구 용역’의 최종 결과물이다. 용역은 부경대 구술채록사업단(총 12명, 연구책임자 채영희 교수)이 맡아 2020년 5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진행했다. 중간에 두 차례 시민강연회도 열었다. ‘피란, 그때 그 사람들’ 발간 부산시 구술 채록 용역 결과물 정착 과정·피란수도 기억 회고 안중근 의사 후손 증언도 포함 사업단은 20개월간 피란수도 부산을 체험한 구술자 62명을 직접 만나 증언을 수집했으며, 이 중 40명의 증언을 이번 자료집에 실었다. 1부에는 함경도(17명) 평안도(3명) 황해도(4명) 출신 피란민 24명의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언제나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실감으로 느낍니다.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작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단편소설·시 등 6개 부문 당선자 포부 심사위원·부산소설가협회장 등 참석 20일 오후 3시 부산일보사 10층 대강당에서 열린 2022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글쓰기 목표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두겠다”는 희곡 당선자 이도경(25·인천) 씨를 비롯한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분명한 목소리로 “삶을 보듬는 글쓰기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선자들은 코로나19가 아직 지속되고 있는 엄중한 상황 때문인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한결같이 강조했다. 이날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은 지난해엔 코로나 때문에 열리지 않아 2년 만에 개최된 것이었다. 단편소설 당선자 양기연(24·충남) 씨는 “세계를 넓혀가는 치열한 글쓰기를 하겠다”며 “제가 하는 일을 한 번도 반대하지 않으신 가족, 특히 할아버지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동화 당선자 지숙희(55·부산) 씨는 “혼자 하면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게 글쓰기다. 가족과 소중한 분들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섰다”며 “글쓰기를 제일 재미있어
부산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중 하나인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피란민 주거지’를 5일 자로 부산시의 첫 번째 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 이번 문화재 등록은 지난해 9월 관할 서구청이 등록 신청한 뒤 사전심의와 20일간의 등록예고를 거쳐 지난해 12월 23일 부산시 문화재위원회(기념물분과) 등록심의를 통과해 이뤄진 것이다.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피란민 주거지’는 서구 아미동 2가 229의 2 등 2필지의 토지와 상부 시설물들을 포함하는 문화재다. 지난해 6월 서구청에서는 이번 등록문화재를 포함한 일대의 9채를 한국전쟁 피란민들과 산업화시기 도시 서민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피란생활박물관’으로 조성해 역사 교육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피란민 주거지’는 ‘산 자의 주택’과 ‘죽은 자의 묘지’가 동거하는 역사적 공간이자,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생활상과 주거의 변화 양상이 잘 보존된 도시공간으로 부산 지역사에서 역사적․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비석주택’은 생존을 위해 일본인 공동묘지의 석축 위에 판자, 신문지, 원조물품 포장지, 루핑지 등을 사용해 지은 판잣집으로, 피란민의 긴박했던 삶과 전쟁 극복 의지를
“한국 호랑이는 살아 있다. 우리가 호랑이다.” 2022년 임인년 호랑이해의 화두다. 우리는 근현대의 시련과 좌절, 단절의 역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포효하고 있다. 근대에 우리는 나라를 잃고 비참하게 짓밟혔으나 동학과 3·1운동이 깨웠던 꿈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식민지 굴레를 벗어나자마자 참혹한 세계사적 전쟁을 겪었고, 4월 혁명의 이상주의는 쿠데타로 꺾이고 거듭된 폭압 체제에 의해 짓눌려졌으나 우리는 기어코 민주주의를 우리 힘으로 달성했다. 프랑스와 영국이 근대 혁명으로 빛난다면 식민지로 좌절한 우리는 스스로 성취한 민주주의 역사로 세계사에 우뚝 섰다. 우리가 호랑이라는 거다. 일제가 절멸시키려 했던 우리 호랑이 항일 현장 극동 러시아서 혈통 이어져 단군신화서 비롯된 동방의 ‘호랑이 나라’ 서울올림픽과 월드컵서 세계를 ‘호령’ 한반도 평화 통일과 국민 행복 위해 앞발 치켜들고 포효하고 있다 ‘어흥~’ 일제가 우리를 짓밟았던 상징적 사건 중 하나는 한국 호랑이의 절멸이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 호랑이 절멸 작전을 감행했다. 그런 가운데 1917년 야마모토 정호군(征虎軍, 호랑이 정복 군대)은 한반도를 들쑤신 뒤 “다이쇼 시대의 우리는 ‘일본 영토’ 내에서
‘울산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이 22일 보물로 지정됐다. 이 좌상은 신흥사 대웅전에 봉안된 대세지-관음보살좌상으로 구성된 아미타삼존상 중 본존상에 해당한다. 재질은 불석(佛石 또는 沸石, 규산염의 일종으로 흰색의 광물)이다. 이 불상의 발원문에 1649년 불석의 산지였던 어천(현재 포항 오천읍)에서 돌을 채석해 조성하고 배를 이용해 신흥사까지 옮겨온 사실이 밝혀져 있다. 당시 불석 불상의 제작지와 운반 경로를 구체적으로 밝힌 첫 번째 사례이다.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17세기 전반기 전국에 걸쳐 활동한 조각승 영색(英賾)이 경상도 지역에서 불석을 사용해 만든 것으로 현재까지 연대가 알려진 유일한 불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각승 영색은 ‘英賾’(영색) 또는 ‘英頤’(영이)라고도 쓰는데, 신흥사 불상은 그가 수조각승이 되어 양주 회암사 불상 다음, 두 번째로 제작한 불상이다. 본존인 아미타여래좌상은 짧은 목에 머리를 약간 숙인 결가부좌의 자세를 하고 있으며, 짧은 상반신에 비해 다리 간격이 넓고 무릎이 높은 편이어서 하체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비교적 넓적한 얼굴과 긴 눈썹, 작고 오뚝한 코, 눈꼬리가 올라간 긴 눈, 깊게 팬 입술 가장자리와 볼록하게
2022 〈부산일보〉 신춘문예는 우리가 전대미문의 시대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반영했다.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초유의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우리 삶의 돌파구, 우리 마음의 하소연을 글쓰기를 통해 쏟아냈다. 모두 6개 부문에 걸쳐 1410명이 총 3718편을 응모했는데 이는 지난해(943명 2551편)보다 50%가량 늘어난 수치였다. 코로나 때문에 응모 편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였다. 응모작들은 거의 전 장르에 걸쳐 코로나19 속에 갇힌 우리의 위중한 마음 상태를 표현하고 있었다. 시대의 신음이랄까. 힘겨운 시대의 내면을 호소하는 분투하는 글쓰기로 저 너머의 희망을 붙잡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는 거다. 작품 경향에서 희곡 시조 동화는 작품 수준이 높았다는 평이었다. 6개 부문 1410명 3718편 응모 지난해보다 50% 정도 늘어나 ‘코로나에 갇힌 삶’ 글로 녹여 내 희곡·시조·동화 작품 수준 높아 소설은 더 치열한 글쓰기 고민을 단편소설(233명 237편) 예심 심사위원들(소설가 나여경 이정임 배길남)은 “지금 시대를 드러내듯 유난히 자살 이야기가 많았는데 내 인생이 망가졌다거나, 아예 처음부터 ‘나 오늘 죽어야겠다’라고 시작하는 작품도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새 종정으로 추대된(부산일보 12월 14일 자 1·15면 보도) 영축통림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은 깨달음과 일상을 경계 짓지 않는다.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구분을 넘어섰고, 예술과 수행을 떼놓지 않는다. 스님은 지난해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리를 어떻게 탐구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그것을 따로 탐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변함없이 늘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잘 살펴 알게 되면 원래로 길이 있느니”라는 것이 스님의 법문이다. 나아가 스님은 내처 “진리를 일상생활에 별도로 접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평소 이를 알아채느냐, 못 알아채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38년째 성파시조문학상 주도 예술인, 문화인 스님으로 명성 팔만대장경 ‘십육만 도자’ 구현 “말과 행의 일치로 소임 다할 것” 스님은 이판과 사판의 경계도 아랑곳 않는다. 진리를 탐구하는 ‘이판’과 절집 살림을 맡는 ‘사판’의 경계를 스님이 오간 계기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한 10·27 법난이었다. 1960년 출가 이후 20년간 선방 수행을 하던 스님은 법난에 의해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선방을 나와야 했다. 총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이 소장품 도록으로 출간한 210여 쪽 〈대한제국기 의궤〉는 ‘아이러니하고 놀라운 신앙의 섭리’를 보여준다. 대한제국기 의궤 2건은 가장 극심한 천주교 박해자의 손자 부부가 천주교 신자가 됐다는 ‘역사적 반전’을 증명한다. 모진 박해자는 흥선대원군이고, 손자 부부는 의친왕 이강(1877~1955)과 의친왕비 김덕수(1881~1964)다. “할아버지가 많은 사람 죽여 속죄의 마음으로 천주교 귀의” 의친왕 입교 ‘반전 사연’ 담겨 의친왕 죽자 왕비가 의궤 기증 박해의 역사가 신앙으로 승화 조선에서 서학으로 받아들여져 동학의 탄생에도 영향을 준 천주교는 특히 참혹하고 아픈 순교 역사를 통해 토착화했다. 강토에 피로 새겨진 순교 역사는 의친왕 삶의 마지막 순간을 붙잡았다. 배일의 역사적 감각을 지녔던 의친왕은 1955년 “할아버지가 천주교인들을 많이 죽였으니 내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천주교에 귀의하겠다”며 의친왕비와 함께 천주교 신자가 됐다. 의친왕은 그 일주일 뒤 78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의친왕이 타계하자 의친왕비는 간직하던 의궤 2건 등의 유물을, 천주교 신앙을 맺은 통로였던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 기증해 오늘에 전하는 것이다. 의궤 2
〈가덕도 민속조사 보고서〉는 7권 총 245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가덕도 타임캡슐’이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이 사라지고 있는 가덕도 민속문화를 기록한 것이다. 1억 6000만 원의 예산을 들였다고 한다. 지난해 발간한 5권의 〈영도 민속조사 보고서〉에 이어 부산의 큰 섬에 대한 두 번째 보고서다. 가덕도는 1990년대 이후 부산항 신항 개발로 섬에서 육지로 변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 거가대교 완공, 2020년 가덕도 신공항 건설 구체화로 점점 커져가는 개발 압력을 받고 있다. 섬의 육지 변신과 신항·신공항 건설, 이 같은 ‘상전벽해’도 없을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가덕도 보고서’ 펴내 총 7권, 연구자 12명 주제별 분석 5개 법정동 민속 분야 6개월 현장 조사 시대 변화상 담은 방대한 ‘타임캡슐’ 하지만 그 상전벽해는 부산 근현대사를 우회한 것이었을 게다. 일본이 식민지 조선의 발판을 부산에 놓으면서 초량왜관을 중심으로 대단위 매축을 통해 부산항을 구축했다. 그러나 그것이 100년의 유효성을 다하면서 최적 대안지로 가덕도 일대가 택해진 것인데, 식민도시가 아니었더라면 애초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더 넓은 이 일대에 물류 대거점이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