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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수운 문학의 백미 ‘용담유사’ 동학혁명의 원천이었다

용담유사 / 도올 김용옥

 

 

〈용담유사〉는 도올 김용옥이 동학의 양대 경전의 하나인 〈용담유사〉를 해설한 책이다. “〈용담유사〉는 수운이라는 인간 그 자체다. 그것은 죽어 있는 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맥박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수운의 사상과 함께 절망 후회 걱정 불안 등도 거리낌 없이 표출된 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운 문학의 백미’가 있다고 한다.

 

동학 경전의 하나인 ‘용담유사’ 해설서

한글 가사로 ‘민중 동학’에 결정적 기여

“수운 최제우의 ‘사람이 곧 하느님’은

니체·마르크스 뛰어넘는 조선 사상”

 

〈동경대전〉이 한문으로 쓰였다면 〈용담유사〉는 순 한글의 4·4조 가사다. 한글이라는 데 함정이 있다. 다 알겠거니 하는데 그렇지 않다. 160년 전 한글을 오늘날 한글로 옮겨야 한다는 거다. 도올의 ‘한글 번역’은 그의 유니크한 호흡과 문장으로 풍부한 의도를 살리고 있다.

 

수운 최제우(1824~1864)는 예수에 맞먹는 공생애 3년 동안 자신의 삶이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극대도’를 온전히 인간세에 남기기 위한 고민 속에서 양대 동학 경전을 썼다. 그중 〈용담유사〉는 동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전국적 저력의 원천이었다. 한글 가사였기 때문에 동학이 민중의 것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종대왕의 위업이 민중의 위업으로 전환하는 데 4세기 반이 걸렸는데 그것은 탁월한 천재 수운의 전략으로 가능했다는 거다.

 

수운이 경주 용담을 떠난 것은 ‘거룡(去龍)’, 다시 돌아온 것은 ‘귀룡(歸龍)’이다. 〈용담유사〉는 1860~1863년 ‘거룡’과 ‘귀룡’의 교차 속에서 쓰인 8편 글이다. 경주 용담에서 무극대도를 체험한 뒤 쓴 2편과, 왜곡과 음해 속에서 전라도로 피신해 쓴 4편, 다시 경주 용담에 돌아와 죽음을 각오하면서 쓴 2편이다. 맨 먼저 쓴 2편 중 ‘용담가’는 종교 대각체험을 솔직 담백하게 쓴 지구상 전무후무한 글이고 ‘안심가’는 문학적 걸작이라고 한다.

 

전라도 피신은 수운의 실존적 고독을 동반한 것이자 동학운동의 계기로 발전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때 ‘교훈가’ ‘도수사’ ‘권학가’ ‘몽중노소문답가’ 4편을 썼다. 이들도 탁월한 문학 작품이었는데 수운은 작은 소절 하나에도 자기 인생 전체를 담았다고 한다. 이중 ‘몽중노소문답기’는 더 이상 유교 이념으로 바로 잡을 수 없는 조선사회에 대한 혁명을 선포한 ‘혁명의 노래’라고 한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마르크스가 분투하고 있었는데 우리 혁명가의 세계적 위상이 그렇게 맞먹는 위치에 있었다는 거다.

 

귀룡, 다시 용담에 돌아와 수운이 죽을 준비를 하며 쓴 것이 ‘도덕가’ ‘흥비가’, 2편이었다. ‘도덕가’를 쓴 뒤 해월 최시형을 후계자로 지목했고, 유언장에 해당하는 ‘흥비가’를 썼다. ‘흥비가’의 마지막 구절 ‘무궁한 이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를 통해 수운은 죽음을 암시하면서도 무궁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말했다. 이는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수운 사상의 핵심적 표현이라고 한다.

〈용담유사〉를 해설하면서 도올은 감탄을 토한다. 수운이 유교 경전들은 물론 사마천의 사기와 소동파의 후적벽부 등과 함께 중국과 조선의 역사를 한 줄로 꿰고 있기 때문이다. “수운 지식범위의 넓이와 자유자재로 시대를 초월하여 출전을 활용하는 능력에 경탄할 뿐이다.” 하지만 도올의 경탄은 더 깊은 데를 향한다. 그는 앞서 〈동경대전〉 주해 후에 대중 강론을 하면서 수운 사상에 대한 자신의 민감도가 새로운 도약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거다. 어떤 새로운 존재의 경지로 도약하는 그런 느낌의 복잡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경지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 수운을 직감으로 만났으며 〈용담유사〉의 춤추는 언어를 몸으로 새기는 데에 이르렀다는 거다.

 

그것이 동학인 것이다. 1894년 갑오년 30만 이상 조선의 민중들이 쓰러졌다. 당시 조선을 여행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그들을 ‘반란자들’이 아니라 ‘무장한 개혁자들’이라고 했다. ‘구구절절 옮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도올은 녹두장군 전봉준에게 동학혁명은 광적 영감이었을 거라고 한다. 그 영감의 원천은 수운의 최종적 결론인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거다.

 

이를 도올은 “인간이 신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모든 충족감을 천지대자연의 과정적 생명에 대한 외경심으로 확대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운은 신의 사망을 선고한 니체, 종교를 아편으로 간주한 마르크스·엥겔스보다 훨씬 고차원적이라는 거다. 서구의 혁명이 자유를 목표로 삼았다면 우리 동학은 평화를 갈구했다고 한다. 도올은 다시 〈용담유사〉를 통해 늠름한 조선 사상을 선포하고 있다. 도올 김용옥 지음/통나무/384쪽/2만 1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