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노랗게 깊어가고 있다. 몸과 마음이 쉬면서 결실을 맺어야 할 계절이다. 오래전부터 차 구석에 처박혀 있던 여행안내 소책자가 눈에 띈다. ‘회동 수원지 이야기.’ 책자 맨 뒤쪽에 담긴 아름다운 글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산중 호수가 부른다. 힘들고 지친 길손들은 오라고. 걸어보면 안다. 물이 주는 편안함과 숲이 주는 위안이 얼마나 큰지를. 치유의 수원지로 당신을 초대한다.’ 시내 벗어나자마자 새로운 풍광 가득 황토 산책로 옆 아름드리 나무 펼쳐져 가파른 부엉산 정상엔 오륜대전망대 저수지·숲 둘러싼 풍경 감탄 자아내 ■회동수원지길 자동차는 중앙대로에서 벗어난다. 금정문화회관과 동래여고 사이 왕복 2차로 체육공원로를 천천히 달린다. 붐비던 시내에서 벗어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차창을 내린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차 안을 휘감아 돈다. 며칠 전만 해도 따뜻하던 바람이 지금은 제법 쌀쌀하다. 상현로를 따라간다. 한가로운 시골 풍경이 등장한다. 가끔 식당도 보이고 카페도 나타난다. 느긋한 주변 분위기에 마음은 편안해진다.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은 부산 금정구 선동 상현마을이다. 이 마을은 부산 갈맷길 중 하나인 회동수원지길의 시작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수많은 암자가 있다. 모두 제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중 몇몇 암자를 둘러보았다. 저마다 개성이 달랐고, 느낌도 달랐다. 하지만 어디에 가든 마음을 정화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가을 공기를 마시며 코로나19에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도 충분했다. □ 사명암 가을 푸른 하늘·하얀 구름 들어찬 연못 장관 푸른 소나무 숲길은 청정하고 따스하다. 차창으로 맑고 깨끗한 공기가 들어온다. 마스크를 벗고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가슴이 시원해진다. 통도 8경 중 하나인 ‘무풍한송(無風寒松)’이다. 꼿꼿하게 솟구치는 소나무, 땅에 드러누우려는 소나무 등 나무마다 자세가 다르다.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한쪽에 분홍색 코스모스가 피어 낯선 이를 반긴다. 꽃의 웃음이 환하고 즐거워 보인다. 통도사 암자 여행이 첫 목적지인 사명암이다. 계단을 몇 개 올라가자 아담한 크기의 연못이 나온다. 정자인 일승대와 무작정(無作停)이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연못에는 두 정자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어슬렁거리는 하얀 구름도 담겼다. 주변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여러 석상도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다. 한 여성 관람객이 정자에 앉아 느긋하게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편안
산 중턱 너른 평원의 푸른 풀밭에 때아닌 ‘은빛 눈꽃’이 탐스럽게 피어났다. 햇볕이 따스한 가을에 은빛 눈꽃이 무슨 말이냐고. 그럼, 파란 하늘을 느긋하게 떠다니는 양털 구름이 땅에 비친 하얀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경남 밀양시 단장면 재약산 사자평 가을 풍경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지나는 바람이 빙긋이 웃으며 권한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보시죠.” 얼음골 케이블카 이용 1시간 30분이면 도착 화전민 생계를 위해 억새밭 태워 땅 개간 2010년 밀양시 억새군락지 복원 사업 벌여 참나무 군락·억새밭 곳곳 황토 깔린 산책로 ■사자평 억새밭 가는 길 재약산 사자평 억새를 보러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에서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뒤 사자평으로 내려가는 길이 첫 번째다. 반대로 사명대사의 정기가 서린 표충사 뒷길을 타고 고사리분교 터를 지나 올라가는 길이 두 번째다. 얼음골 케이블카 상부승강장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가면 샘물산장이 나온다.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샘물산장 앞은 사거리다. 왼쪽으로 가면 울산으로 넘어가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천황산 사자봉에 이른다. 가운데 길을 택하면 사자평
‘천황산 하늘정원을 이어주는 신비의 하늘길.’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사진)는 우리나라 최장 거리의 왕복식 케이블카다. 선로 길이는 무려 1.8㎞이며 상부승강장 높이는 1020m에 이른다. 케이블카 탑승 정원은 50명이다. 평일에는 하루 200여 명, 주말이나 휴일에는 하루 2000여 명이 몰린다고 한다. 이용 요금(왕복)은 성인 1만 2000원, 소인 9000원이다. 상부승강장에서 내려 하늘사랑 길(갑판 로드)을 따라 10여 분 정도 걸으면 전망대인 녹산대에 도착한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산내면 남명리 전경에 반하고 만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마치 알프스산맥의 시골 마을이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은 풍경이다. 백운산 백호바위의 이색적인 모습도 눈길을 끈다. 다른 케이블카처럼 고도를 오르며 경치를 보는 것 외에도 영남알프스의 봉우리인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백운산(885m) 운문산(1188m) 가지산(1240m) 능동산(982m) 신불산(1208m) 간월산(183m) 백운산(885m)의 능선 위에 올라설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처음에는 상부승강장에 내려 전망대까지 간 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가을이 코앞에 다가왔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하게 내리기도 했다. 곳곳에서는 코스모스 향기가 하늘거리고 있고, 성급한 잠자리는 서둘러 날갯짓을 시작했다. 가을 나들이에 나섰다. 복잡한 세상일에서 잠시 벗어나고 아직 조금 남아 있는 더위를 달래면서 가을의 풍류를 즐겨볼 수 있는 곳을 찾아갔다. 바로 경남 함양 화림동 계곡 정자다. 남강 가운데 버티고 자리 잡은 거연정 단청 없는 무채색 작고 아담한 군자정 화려한 동호정·유원지 같은 농월정 등 80여 개의 정자·누각 ‘정자의 고장’ 풍류 즐긴 조선시대 선비들 몰렸던 곳 ■정자의 고장 함양은 예로부터 산자수명한 곳으로 유명해 풍류를 즐기던 조선시대 선비들이 몰린 고장이다. 정치에서 손을 뗀 학자들이 자연을 벗 삼아 인생과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선비들은 이곳에 정자를 지어놓고 음풍농월하며 세월을 보냈다 해서 함양을 ‘정자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함양에는 정자와 누각이 무려 80여 개나 있다. 특히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는 정자가 몰려 있다. 과거에는 ‘여덟 개 연못에 여덟 개 정자가 있다’는 뜻으로 화림동 계곡을 ‘팔담팔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남덕유산에서 시작한 계곡 물줄기가 그만큼 좋기 때문이다. 실제로
긴 장마 끝에 무더운 날씨가 이어진다.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도 내렸다. 피서가 필요한데 코로나19도 다시 퍼지는 분위기다. 휴가는 시원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야외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으로 달려간다. 태조 6년 왜구의 침입 대비해 쌓은 성 직사각형 전체 면적 22만 3000㎡ 규모 전통가옥 등 주민 90여 가구 실제 거주 이순신 장군 살린 수령 400년 은행나무 가야금·대장간·자연 염색 등 이색 체험도 ■마음 푸근한 조선시대 읍성 너른 공원을 지나자 3·1독립운동 기념비가 나온다. 맞은편에는 고인돌공원이 보인다. 폭 3m 정도의 작은 해자가 흐르고 그 뒤로 성벽이 나타난다. 낙안읍성 성벽은 그다지 높지 않다. 4m 정도에 불과하다. 위압적이지 않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성 밖에 초가집 서너 채가 보인다. 빨래가 널려 있는 거로 봐서는 사람이 사는 모양이다. 성안으로 곧장 발걸음을 옮긴다. 한옥 형태의 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동문인 낙풍루다. 이곳에는 문이 세 개 있다. 낙풍루 외에 남문인 쌍청루와 서문이 있다. 낙안읍성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읍성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조선 태조 6년(1397년)
무더위가 시작됐다. 올여름에는 지난해보다 더 심한 폭염이 찾아올 거라고 한다. 더위가 찾아오면 때로는 시원한 탈출구가 필요하다. 그 탈출구 하나가 바다다.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찾아보면 다른 즐거움도 있다.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출발해 광안리 앞바다를 둘러보는 요트는 어떨까. 요즘 부산에 휴가를 즐기러 오는 외지인들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여름 무더위 이기는 시원한 ‘탈출구’ 수영만 요트경기장 방파제 지나 바다로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남해에 빠져 잔잔한 파도 느긋하게 즐기며 ‘힐링’ ■푸른 하늘과 바닷속으로 오전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다.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자동차 계기판에 찍힌 온도는 33도다. 하늘에 떠다니는 하얀 뭉게구름 뒤로 크게 화가 난 것 같은 뜨거운 태양이 잔뜩 열을 뿜어낸다. 지난 며칠간 부산을 시원하게 했던 장마 구름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태양이 심술을 부리는 것과 비례해 바다는 더 푸르러 보인다. 여름철 유럽인들의 휴양지인 그리스 애기나섬을 둘러싼 에게해의 쪽빛 바다가 생각난다. 마치 무더위에 지친 파란 하늘과 구름도 바다에 풍덩 빠져 열기를 식히는 듯하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계류장에는 많은 배가
부산 자갈치시장에서만 탈 수 있는 관광유람선이 있다. 2018년 8월 운항을 시작한 부산 남항유람선 자갈치 크루즈다. 인터넷에서는 단순히 자갈치 유람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도대교 인근 자갈치시장 위판장 앞 남항선착장을 출발해 암남공원을 거쳐 태종대까지 다녀오는 배다. 조금씩 더워지는 초여름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러 가본다. 깡깡이 마을·남부민 방파제·남항대교 영도흰여울마을·태종대·등대·생도… 바닷바람 맞으며 부산 앞바다 즐기기 ■느긋한 출항 준비 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선다. 비릿한 갯내가 시원한 바람에 실려 코끝을 자극한다. ‘여기가 바로 자갈치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자갈치해안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제1, 2구 잠수기수협과 자갈치시장 위판장 사이에 골목이 나타난다. 골목 끝 바닷가에 큰 배 한 척이 서 있다. 뱃머리에 ‘자갈치크루즈’라는 큰 글씨가 보인다. 배 앞에 여러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낚시를 즐기는 중이다. 물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데 고기를 잡아서 먹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자갈치 크루즈 오른편에는 자갈치시장 위판장과 신동아시장 등이 보인다. 바닷가 벤치에는 코로나19를 피해 봄 바닷바람을 즐기려는 시민들이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에 아담한 저수지가 있다. 신라 시대에 만들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자그마치 1000년을 넘었다. 저수지에는 수백 년 내력을 간직한 웅장한 이팝나무가 서 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이곳에는 사람이 몰린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저수지와 이팝나무의 조화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바람이 선선하던 봄날 밀양으로 달려갔다. 신라시대 만들어진 1000년 역사 저수지 봄 맞아 하얀 꽃 매달린 이팝나무 장관 2km 남짓 숲길·작은 고택 완재정 등 명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서 우수상 받기도 ■엿방 아이의 추억 50년이 다 된 옛일이다. 밀양에 유명한 엿방 세 곳이 있었다. 당시에는 재활용수집업체를 고물상이나 엿방이라고 불렀다. 한 엿방 주인에게 아들이 있었다. 아이는 호기심이 많았다. 어느 해 봄 날씨 따뜻한 일요일, 초등학교 1~2학년이던 아이는 고물 수집을 하러 나선 ‘송 씨’를 따라갔다. 한 살 많았지만 친구 같았던 송 씨 아들도 함께였다. 손수레에 설치한 엿판에 물통과 도시락도 얹었다. 때로는 걷다가 때로는 손수레에 올라타면서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여러 시간 걸었다. 아이는 처음 가보는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젊
자동차 드라이브를 겸해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다녀왔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 붙은 작은 섬 눌차도의 정거 마을이다. 마을로 이어지는 가덕해안로에서는 다른 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풍경을 즐기고, 마을에 도착해서는 독특한 벽화 골목을 느릿하게 감상할 수 있다. 바다 건너 부산신항 마주보고 있는 낡은 어촌마을이지만 분위기 독특 산토리니섬 떠오르는 푸른 벽화 가리비 껍데기로 만든 물고기 등 집집마다 바다 닮은 벽화 한가득 ■가덕해안로와 굴 양식장 눌차대교를 건넌 차는 성북, 선창 방향에서 빠져나간다. 잠시 내려가면 가덕도동행정복지센터가 나온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눌차, 선창 쪽으로 차를 돌린다. 임시로 만든 것 같은 다리 천가교를 지나면 눌차도다. 여기서부터는 가덕해안로다. 길을 쭉 따라가면 정거 마을까지 이어진다. 정거 마을이 끝이니 헷갈릴 일이 없다. 바다 건너편은 부산신항이다. 골리앗 타워는 물론 다양한 선적 장비들이 세워져 있다. 어촌 바닷가 바로 맞은편에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항구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가덕해안로를 따라 조개껍데기가 수없이 쌓여 있다. 신기해서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가리비 껍데기다. 한두 군데만 쌓여 있는 게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