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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우리 동네 즐기기] 通度寺(통도사) 암자에 스며든 가을 향기 찾아서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수많은 암자가 있다. 모두 제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중 몇몇 암자를 둘러보았다. 저마다 개성이 달랐고, 느낌도 달랐다. 하지만 어디에 가든 마음을 정화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가을 공기를 마시며 코로나19에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도 충분했다.

 

 

 

□ 사명암

 

가을 푸른 하늘·하얀 구름 들어찬 연못 장관

 

푸른 소나무 숲길은 청정하고 따스하다. 차창으로 맑고 깨끗한 공기가 들어온다. 마스크를 벗고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가슴이 시원해진다. 통도 8경 중 하나인 ‘무풍한송(無風寒松)’이다. 꼿꼿하게 솟구치는 소나무, 땅에 드러누우려는 소나무 등 나무마다 자세가 다르다.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한쪽에 분홍색 코스모스가 피어 낯선 이를 반긴다. 꽃의 웃음이 환하고 즐거워 보인다. 통도사 암자 여행이 첫 목적지인 사명암이다. 계단을 몇 개 올라가자 아담한 크기의 연못이 나온다.

 

정자인 일승대와 무작정(無作停)이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연못에는 두 정자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어슬렁거리는 하얀 구름도 담겼다. 주변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여러 석상도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다. 한 여성 관람객이 정자에 앉아 느긋하게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사명암’이라고 적힌 대문으로 들어간다. ‘극락보전’이 나타난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자그마한 정원을 돌아본다. 큰 감나무 한 그루가 극락보전 옆에서 가을 햇빛을 즐기고 있다. 아무도 감을 따지 않은 것인지 나무에는 주홍색으로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사명암 단청은 차분한 가을의 모습을 담고 있다. 화려한 색채를 안고 있으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눈을 현혹하지 않는다. 바람 소리에 ‘땡땡’ 하는 풍경 소리는 최고의 양념이다.

 

정원 한쪽에는 물이 퐁퐁 솟아나는 샘이 있다. 그 뒤로 짙은 갈색으로 잘 물든 단풍나무가 팔을 한껏 벌린 채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있다. 가끔 낙엽이 바람 따라 하늘로 날아간다. 정원 바닥에 깔린 작은 돌은 ‘자갈자갈’ 하며 단풍나무에게 낯선 나그네의 방문을 일러바친다.

 

정자에 앉아본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담은 연못이 차분히 눈을 감고 있다. 오른쪽 요사채 담장 아래에도 감나무 한 그루가 웃고 있다.

 

마른 나뭇가지 끝에 달린 주홍색 감들과 요사채 지붕 기와가 묘하게도 잘 어울린다. 따뜻한 손길과 달콤한 감, 그리고 조용한 바람이 사명당의 가을 모습이다. 이런 걸 한 폭의 그림이라고 하는 건가.

 

 

 

□ 서운암

 

산 아래 100여 종 야생화·수백 개 장독 가득

 

서운암 매점에서 고소한 커피 한 잔을 산다. 종이 잔을 들고 서운암을 천천히 돌아본다. 국수를 판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절에서 먹는 국수 맛이 별미일 거라는 생각에 올라가 보니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닫았다. 먼저 법당(삼천불전)에 들어간다. 남의 집을 찾으면 주인에게 인사부터 해야 한다. 삼천 개의 불상 앞에서 합장으로 마음을 정리한다.

 

서운암은 ‘들꽃축제’와 장독대로 유명하다. 스님들이 산에 야생화 100여 종을 뿌려놓아, 봄이 되면 아기자기하게 꽃을 피운다. 곳곳에 빨갛고 노란 꽃들이 피어 있다. 백일홍이다. 6월부터 피는 꽃이니 이제 질 때가 됐다. 그래도 가는 세월이 아쉬운지 꽃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벌개미취도 백일홍 주변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알록달록한 가을 단풍 사이에 짙은 갈색 장독 수백 개가 말없이 앉아 있다. 한참 무르익어가는 가을 햇살을 즐기는 것인가.

 

장독에 손을 대 보니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장독대는 가을 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반기는 것 같기도 하다.

 

된장이 익어가는 장독에서 구수한 냄새가 난다. 된장을 판매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다음에 와서 꼭 사 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장독대 뒤에는 벤치가 여러 개 설치돼 있다.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다. 선선한 바람과 찌르르 하며 울어대는 가을 풀벌레가 이야기 친구다.

 

서운암은 16만 도자대장경으로도 유명하다. 해인사의 대장경은 8만 1528장의 목판 양면인데 반해 도자대장경은 흙을 주재료로 단면 제작해 도판이 16만 3056장에 이른다.

 


 

□ 안양암

 

암자에서 바라보는 통도사 일출, 통도8경 중 하나

 

안양암은 자그마하고 조용한 암자다. 암자는 산 한쪽 구석에 조용하게 숨어 있다. 마치 누가 말이라고 걸까 저어하는 모양이다. 숲 사이로 통도사가 희미하게 보인다.

 

안양암 축대에 잠시 앉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정말 조용하다. 바람소리, 새소리, 그리고 가끔 풀벌레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침 처마 끝의 풍경도 입을 다물고 있다. 마음에, 그리고 영혼에 묻은 온갖 상념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이렇게 조용하게 한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으랴.

 

통도 8경 중에 ‘안양동대’라는 게 있다. 안양암에서 바라보는 통도사의 일출 경관이다. 청송당 옆 샛길로 2분 정도 걸으면 통도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냥 조용히 이곳에서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한참 뒤 안양암 아래로 이어지는 길로 내려간다. 햇살이 그쪽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돌로 쌓은 담이 안양암을 받치고 있다.

 

큰 나무에 달린 잎들은 조금씩 노랗게 변해가고 있다. 길에는 갈색으로 변한 나뭇잎들이 떨어져 바스락거린다. 낙엽을 깔고 바닥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눈을 간질인다. 여기도 조용하다. 그야말로 무념무상이다.

 

“까르르르.”

어린이 웃음소리가 들린다. 젊은 부부가 이제 두어 살 된 것 같은 아기를 데리고 내려온다. 아기의 웃음소리는 전혀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안양암의 무음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깊은 산속으로 퍼져나간다.

 

글·사진=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옥련암 약수 ‘장군수’ 놓쳐선 안 될 명水

 

백련암은 늦가을에 가면 최고의 절경을 볼 수 있다. 암자 높은 곳에 올라가 산을 내려다보면 정취가 흘러넘친다. 옥련암은 약수인 장군수로 유명하다. 반드시 약수를 한 모금 마셔야 한다. 장군수를 매일 마신 옥련암 스님들의 힘이 너무 세서 큰절의 스님들이 감히 당할 수 없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차를 몰고 약수를 뜨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극락암은 극락영지와 홍교의 풍경이 예쁜 곳이다. 가을 냄새가 아주 진하게 풍긴다. 아담한 물레방아와 작은 연못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인생샷’이 나올 수도 있다.

 

극락암 인근에 있는 비로암은 정말 작고 조용한 곳이다. 암자로 들어가는 길은 마치 산책로 같다. 암자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온종일 포근한 햇빛이 암자를 비춘다. 이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마치 세상살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여기에 한참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싶다.

 

통도사 여러 암자를 하루에 다 둘러보기는 쉽지 않다. 글로는 아주 쉽고 편안하게 다녀온 듯하지만, 어디까지나 일이었으니 하루 만에 소화할 수 있었다.

 

남태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