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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물과 숲 어우러진 회동수원지 가을 산책 길, 우리 같이 걸을까요

부산 금정구 회동수원지

 

가을이 노랗게 깊어가고 있다. 몸과 마음이 쉬면서 결실을 맺어야 할 계절이다. 오래전부터 차 구석에 처박혀 있던 여행안내 소책자가 눈에 띈다. ‘회동 수원지 이야기.’ 책자 맨 뒤쪽에 담긴 아름다운 글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산중 호수가 부른다. 힘들고 지친 길손들은 오라고. 걸어보면 안다. 물이 주는 편안함과 숲이 주는 위안이 얼마나 큰지를. 치유의 수원지로 당신을 초대한다.’

 

시내 벗어나자마자 새로운 풍광 가득

황토 산책로 옆 아름드리 나무 펼쳐져

가파른 부엉산 정상엔 오륜대전망대

저수지·숲 둘러싼 풍경 감탄 자아내

 

■회동수원지길

 

자동차는 중앙대로에서 벗어난다. 금정문화회관과 동래여고 사이 왕복 2차로 체육공원로를 천천히 달린다. 붐비던 시내에서 벗어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차창을 내린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차 안을 휘감아 돈다. 며칠 전만 해도 따뜻하던 바람이 지금은 제법 쌀쌀하다.

 

상현로를 따라간다. 한가로운 시골 풍경이 등장한다. 가끔 식당도 보이고 카페도 나타난다. 느긋한 주변 분위기에 마음은 편안해진다.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은 부산 금정구 선동 상현마을이다.

 

이 마을은 부산 갈맷길 중 하나인 회동수원지길의 시작점이다. 이 길은 상현마을에서 시작해 오륜대~오륜본동마을~땅뫼산황토숲길로 이어진다. 2009년 부산갈맷길축제 ‘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았다.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넓은 저수지가 나타난다. 적당한 높이의 여러 봉우리가 저수지를 에워싸고 있다. 도로변에 세워진 목재 핸드레일을 잡고 저수지를 가만히 바라본다. 선선한 바람에 저수지는 가볍게 물살을 일렁이고 있다. 학으로 보이는 새 한 마리가 저수지 주변을 날아다닌다.

 

마음은 가벼워지고 눈은 시원해진다. 심신의 치유는 이제 시작이다. 저수지는 기본적으로 ‘S’자 모양이다. 그래서 어디에 가더라도 한눈에 저수지 전체 풍경을 볼 수는 없다. 대신 꼬불꼬불한 지형에 갇힌 저수지 풍경이 이색적이고 예뻐 보인다.

 

 

상현마을 앞 버스정류장 뒤에 등산객 차림을 한 신선 인형 네 개가 서 있다. 이곳이 회동수원지길 출발 지점이다. ‘선동(仙洞)’은 개울과 바위가 신기하게 생겨 옛날에 신선들이 지팡이를 꽂고 노닐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황토가 깔린 평화로운 길이 나타난다. 길 양옆으로는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은 흙길을 황금색으로 빛나게 만든다.

 

한 젊은 엄마가 어린 딸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왔다. 길에는 깔깔거리는 아기의 웃음이 가득하다. 금빛 나뭇잎도 웃음소리가 즐거운지 손뼉을 치며 자지러진다. 푸른 물이 가득 찬 저수지는 아기가 넘어지지 않도록 길을 옆에서 꼭 붙들고 따라간다.

 

길 끝에는 나무 덱으로 만든 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를 건너면 비로소 회동수원지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숲이 나타난다. 왼쪽으로는 저수지 물이 은빛으로 찰랑거리고, 오른쪽으로는 나무와 잡초가 우거진 숲이 상큼한 숨을 내쉬고 있다. 저수지와 숲이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도록 나무로 만든 난간이 둘 사이를 가로막는다.

 

숲에서 내려온 물이 줄기를 이뤄 저수지로 졸졸 흘러든다. 잠시 길에서 내려가 손을 씻는다. 아직 아주 차갑지는 않지만 시원하고 상큼한 물이다.

 

적지 않은 산책객이 길을 따라 걷고 있다. 모두 마스크를 잘 쓰고 있다. 이런 곳에 와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만 가끔 마스크를 얼굴에서 떼 본다.

 

길은 고불고불하다. 때로는 위로 올라갔다, 어떤 때는 아래로 내려간다. 여러 산악회에서 매어놓는 다양한 색의 리본이 나뭇가지에서 흔들리고 있다. ‘친구야 가자!’ 숲의 길이 끊어진 곳에는 다리가 놓여 있다. 곳곳에 휴식용 전망대도 설치돼 있다. 전망대 난간을 잡고 다시 저수지를 바라본다. 잠시 마스크를 벗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속이 시원하다.


 

 

 

■오륜대 전망대

 

수원지마을에 도착한다. 여러 종류의 식당과 카페가 영업하고 있다. 택시 기사들이 한 식당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왁자지껄하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 걱정이 된다.

 

마을 입구에 이정표가 보인다. 여러 방면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곳에서 저수지를 따라 왼쪽으로 길을 꺾는다. 부엉산 정상에 있는 오륜대전망대로 오를 생각이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니 부엉산이 나타난다. 산은 제법 가파르다. 거리가 400m라서 높거나 멀지는 않지만, 경사가 높다 보니 등산 초보에게는 걷기 쉽지 않은 길이다. 산으로 오르는 길에 감이 매달린 감나무가 보인다. 크기가 작은 걸로 봐서는 이른바 땡감인 모양이다.

 

걷고 쉬기를 10분 정도 반복하다 보니 전망대 덱이 보인다. 상현마을을 바라보는 덱도 있고, 오륜본동마을을 향하는 덱도 있다. 같은 저수지지만 풍경이 달라 양쪽에서 찍는 사진의 느낌은 다르다.

 

상현마을 쪽 전망대에서 저수지를 내려다본다. 방금 걸어온 코스가 발아래 놓여 있다. 낮은 산들이 저수지를 감싸고 있고, 산 너머로는 남산동 일대 아파트 단지들이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다. 상현마을 뒤로는 낮은 언덕이 보이고, 그 뒤로 선두구동이 나타난다. 평화롭고 평온하고 차분한 표정이다.

 

오른쪽으로는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마치 긴 강이 산 사이를 흘러가는 것 같다. 저수지를 따라 산책로가 천천히 펼쳐진다. 저수지 너머에는 계좌산 등 여러 산봉우리가 끝없이 이어져 있다.

 

오륜본동마을 쪽 저수지 풍경은 또 다르다. 바로 눈앞에 마을 전경이 펼쳐지고, 저수지가 마을을 세 방향에서 에워싸고 있다. 마을 앞에 우뚝 선 편백 숲이 마치 저수지의 기습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듯하다. 물론 착각이다. 멀리 해운대구 반송동이 보인다. 산허리를 잘라 들어선 아파트가 보기 흉하다.

 

여기서 더 걷고 싶으면 오륜본동마을로 내려가 땅뫼산황토숲길과 편백숲을 둘러보고, 저수지 길을 따라 계속 더 걸어 회동 댐까지 가면 된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몸이 허락하고 마음이 원하는 만큼만 걸으면 된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