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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바다를 닮은 느긋하고 잔잔한 이 마을…부산 눌차도 정거 마을

 

자동차 드라이브를 겸해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다녀왔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 붙은 작은 섬 눌차도의 정거 마을이다. 마을로 이어지는 가덕해안로에서는 다른 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풍경을 즐기고, 마을에 도착해서는 독특한 벽화 골목을 느릿하게 감상할 수 있다.


 

바다 건너 부산신항 마주보고 있는

낡은 어촌마을이지만 분위기 독특

산토리니섬 떠오르는 푸른 벽화

가리비 껍데기로 만든 물고기 등

집집마다 바다 닮은 벽화 한가득


 

■가덕해안로와 굴 양식장

 

눌차대교를 건넌 차는 성북, 선창 방향에서 빠져나간다. 잠시 내려가면 가덕도동행정복지센터가 나온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눌차, 선창 쪽으로 차를 돌린다. 임시로 만든 것 같은 다리 천가교를 지나면 눌차도다. 여기서부터는 가덕해안로다. 길을 쭉 따라가면 정거 마을까지 이어진다. 정거 마을이 끝이니 헷갈릴 일이 없다.

 

바다 건너편은 부산신항이다. 골리앗 타워는 물론 다양한 선적 장비들이 세워져 있다. 어촌 바닷가 바로 맞은편에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항구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가덕해안로를 따라 조개껍데기가 수없이 쌓여 있다. 신기해서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가리비 껍데기다. 한두 군데만 쌓여 있는 게 아니라 정거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빈 곳에는 가리비 껍데기뿐이다.

어촌 바닷길을 한참 달리다 보니 정거 마을 버스정류장 안내판이 나온다. 이곳이 마을버스 종점이다. 정류장 앞에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마을 주민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정류장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정류장 맞은편은 국수당이라는 낮은 산이다. 부산 갈맷길 코스 중 하나여서 트레킹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신기한 벽화 골목의 봄

 

정거 마을 앞바다는 파도가 심해 배가 잘 뒤집히는 곳이었다. 어민들은 이 지역에서 배를 몰 때는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이 동네 이름에 ‘머무를 정’을 붙여 정거 마을이 됐다.

 

정거 마을은 낡은 어촌 마을이지만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어촌 벽화 마을’이라고 한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알 수 없다. 벽화는 강서구청의 지원을 받아 정거 마을 주민들과 벽화 전문 회사가 만들었다고 한다.

 

바닷가 쪽에 밭이 보인다. 파릇파릇한 마늘이 자라고 있다. 대개 6월쯤 캔다고 하니 아직 수확하기는 이르다. 햇마늘은 크게 맵지 않고 싱싱한 맛이 일품이다.

 

그리스 산토리니섬의 푸른 지붕과 하얀 벽 같은 풍경을 담은 퍼즐 그림이 가장 먼저 낯선 이를 반겨준다. 벽화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노라니 에게해의 쪽빛 바다가 떠오른다. 맞은편 벽화는 매우 낡아 보인다. 시내를 흘러가는 개울과 인근 건물들을 담은 그림이다.

 

바닷가 마을을 묘사한 벽화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제주도 돌담길처럼 아랫부분을 돌로 쌓은 벽이 있다. 돌 위 벽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구름이 흘러 다닌다. 그 속에는 스머프가 살 것 같은 귀여운 집들이 그려져 있다. 작은 밭에서는 봄이 더 깊어지면 머리를 쑥 내밀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파란색 지붕을 얹고 파란 수조를 담은 벽이 나타난다. 흰색 바탕에 ‘1904 흐르는 섬 가덕도’라는 글씨가 담겨 있다. 일몰 때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뭍에 올라온 작은 배도 있다. 벽에는 낡은 목재 유리창이 달려 있다. 그림이 현실인지 유리창이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든 매우 몽환적인 분위기다.

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이 보인다. 그 앞에는 너른 공터가 있다. 한쪽 건물은 빈 것 같다. 벽에서는 학교에서 체육 수업 시간에 턱걸이하거나 줄다리기를 하는 어린이들이 깔깔 웃고 있다. 옆 건물 벽에서는 어로 도구를 손질하는 어부 옆에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어린이들의 놀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정거 마을이다. 마을 골목은 매우 좁다. 뒤에서 자동차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가스를 배달하는 미니 트럭이다. 큰 트럭은 들어갈 수 없다. 가스 트럭은 매우 신중하게 골목을 지나간다. 유리창과 문을 배경으로 어촌 마을 전경을 담은 그림이 가스 트럭을 바라보고 있다.

 

정거 마을에는 행인이 드물다. 가끔 지역 주민 한둘이 걸어갈 뿐이다. 여기에 풍경이 좋다고 소문난 덕에 사진을 찍으러 오는 관람객이 더러 있을 뿐이다. 한 주민이 지나간다. 그의 등 뒤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벽 속에서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다. 주민이 그림인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림인지 아리송하다. 이번에는 자전거를 탄 주민이 굴 양식장을 그린 바다 그림 곁을 지나간다. 저 주민도 때가 되면 그림처럼 굴을 수확하러 배를 몰고 나가지 않을까.

 

벽화는 이어진다. 의자에 앉아 어구를 고치는 어민, 언덕에서 바다를 향해 자리 잡은 귀여운 주택, 통통거리며 바다를 오가는 배와 갈매기, 노란색으로 그린 따뜻한 어촌 마을, 한없이 이어지는 낡은 집, 지붕들과 전봇대와 전선.

 

한 벽돌집 벽에 하얀색 나무가 서 있다. 배경은 연두색이다. 벽에는 가리비 껍데기를 붙여놓았다. 깨지고 부서진 가리비들은 벽에 붙어 깔깔거리며 환히 웃고 있다. 맞은편 하얀 벽에는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있다. 역시 가리비 껍데기로 만들었다. 머리부터 지느러미는 물론 꼬리까지 모두 가리비다. 나뭇가지의 부엉이도 가리비로 만들었다.

 

공터 벽 안에서는 어린이들이 낙서를 하고 있다. 두 녀석이 자동차며 집이며 꽃을 그린다. 들키면 혼날 것을 아는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다. 벽 한쪽에는 두 녀석이 벌써 사고를 친 낙서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골목 끝 푸른 바다

 

골목의 끝이 보인다. 그리고 바다가 나타난다. 뒤를 돌아보니 예쁜 얼굴을 한 골목이 밝은 미소로 손을 흔들고 있다. 골목길 바깥은 눌차도 끝부분이다. 방파제와 해안 길, 여러 채의 주택, 국수당으로 올라가는 트레킹 코스 입구가 있는 곳이다. 바닷가 전봇대 앞에 자전거 한 대가 서 있다. 전봇대는 바닷바람에 넘어질까 봐 여러 가닥의 줄에 꼭 매달려 있다. 곳곳에 간이 정박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작은 배 여러 척이 묶여 파도에 흔들린다. 정거 마을 바다는 잔잔하고, 하늘은 맑고 푸르다. 바람은 잔잔하게 불어 깊어가는 봄 향기를 퍼뜨린다.

 

바다 건너에는 섬이 보인다. 진우도다. 모래사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푸른 숲도 보인다. 섬 옆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한 주민의 집 마당에 낡은 그네가 달려 있다. 그네에 잠시 앉아 바다 냄새에 푹 빠져든다. 따뜻한 날씨에 잠이 온다.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일어난다. 이제 다시 걸어온 골목길로 돌아가 부산으로 귀가해야 할 참이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